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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단상 시리즈를 내며

옹이진 마음의 틈새로 스며드는 빛


 인도의 어느 물지게꾼에게는 두 개의 항아리가 있었다.

하나는 아주 온전했지만, 다른 하나는 옆면에 작은 금이 간 깨진 항아리였다.

온전한 항아리는 매일 가득 담긴 물을 주인에게 전달하며 기세등등했지만, 깨진 항아리는 길을 오는 동안 물을 절반이나 흘려버려 늘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뿐이었다. 어느 날, 깨진 항아리가 주인에게 사과했다.

“주인님, 항아리가 조금 깨져 생긴 금 때문에 물을 낭비하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자 주인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집으로 오는 길목을 보았느냐? 온전한 항아리 쪽 길은 메말라 있지만, 네가 지나온 길가에는 예쁜 꽃들이 피어 있단다. 나는 네가 물을 흘릴 것을 알고 미리 꽃씨를 뿌려 두었지. 그 꽃들은 바로 네 틈새로 흐른 물을 먹고 자란 것이란다.”

우리는 완벽하고 화려한 삶만을 성공이라 부르지만, 하느님께서는 때로 우리 마음의 갈라진 틈새와 ‘옹이진 상처’를 통해 은총의 물줄기를 흘려보내신다. 내가 부족함을 인정하고 낮아질 때, 비로소 그 틈으로 이웃을 향한 사랑의 꽃이 피어난다. 부족함도 은총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참으로 분주하고 시끄러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손안의 작은 기기인 모바일 폰을 통해 온 세상의 소식이 쉼 없이 쏟아지고, 더 많이 채우고 더 높이 올라가는 것만이 성공이라 믿으며 앞만 보고 달려간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풍요 속의 빈곤처럼 우리 마음의 갈증은 더 깊어만 가고, 정작 내 곁에 있는 이웃의 숨소리조차 듣지 못한 채 고립되어 가기도 한다.

이 책은 그 분주한 걸음, 부족하고 나약한 걸음을 잠시 멈추고, 우리 삶의 근본적인 물음 앞에 서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에서 시작되었다. 지난 수년간 사목 현장과 강론대 위에서 신자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 그리고 우리 곁을 떠나 별이 되신 큰 목자들의 고귀한 생애를 되새기며, 우리가 잊고 살았던 ‘사랑의 본질’을 한 편 한 편의 수필로 엮어보았다.

이 책에 담긴 묵상과 기도글은 거창한 신학적 담론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일상의 옹이진 틈새로 스며드는 작은 햇살 같은 이야기들이다. 욕심쟁이와 원숭이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손에 쥔 ‘움켜쥔 욕망’을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깨진 체를 기도로 붙였던 성인의 일화를 통해 분열된 세상을 치유하는 화해의 영성을 묵상해 본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톨스토이가 말한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소중한 사람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며,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바로 앞에 있는 사람에게 지체 없이 ‘사랑을 행하는 것’이라는 그 평범한 진리 속에 하느님의 나라가 현존한다.

이 작고 보잘것없는 글들이 독자 여러분의 고단한 삶에 작은 쉼표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비어 있는 그릇에만 새 물을 담을 수 있듯이,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음속에 쌓인 시기와 질투, 미움의 찌꺼기들을 잠시 비워내고, 그 빈자리에 하늘의 평화와 위로가 가득 채워지기를, 또 평화의 항구를 향해 걷는 모든 순례자에게 주님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빈다.

끝으로, 여전히 구도에 목말라하며 주님을 찾고 있는 저의 글을 아름다운 책으로 엮어주신 하상출판사 사장 이재현 신부님과 출판사 관계자분들, 그리고 「월간 꿈CUM」 우광호 대표님께 감사드린다.



2026년 7월 1일

이용훈

목차


신학단상 시리즈를 내며

옹이진 마음의 틈새로 스며드는 빛


제 1 부 은총의 숲, 그 부르심의 길 위에서

멈추어야 비로소 보이는 하늘의 보화 : 그리스도인의 삶

나눌수록 깊어지는 샘물 :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인생이라는 병에 담아야 할 가장 귀한 것들 : 비움과 사랑

천상의 양식 : 성체현시와 성시간

참된 자비의 얼굴 : 정의와 평화

마르지 않는 샘물, 그 큰 그늘 아래서 : 소신학교 스승님

이름 없는 정원사의 노래 : 스승님

민심의 바다 : 신자 정치인들에게

민심의 바다에 띄운 양심의 돛배 : 공직자 피정

세상의 주인에서 하늘의 관리자로 : 경제인

마음의 거울을 닦아 별이 되는 시간 : 꾸르실료

정직한 땀방울이 일구는 하늘 정원 : 농부

씨앗 속에 담긴 우주, 그 부르심 : 사제와 수도자

새벽을 부르는 첫 번째 파동 : 청년

부부라는 이름의 거울 : 가정

낮은 곳에 임하는 하느님의 역사 : 노동자

세상을 짜는 무명의 실타래 : 교회

약함 속에 핀 가장 강인한 꽃 : 당신은 하느님의 기적


제 2 부 세상의 밭에 핀 야생화

스스로 설계도를 읽어 낸 사람들 : 진리가 일군 거룩한 땅

세상이라는 밭을 일구는 일꾼들 : 평신도

폐허 위에서 시작된 기적 : 나눔으로 일군 생명의 역사

빈 가방에 담아가는 유산 : 추석 명절

봄날의 꽃잎 속에 핀 기도 : 부모님

보이지 않는 뿌리 : 모든 존재 안에 깃든 고귀한 빛

물질의 시대에 켜는 정신의 등불 : 원불교 대각개교절(大覺開敎節)

혐오의 시대를 건너는 양심의 등불 : 교회의 참된 자리

낮은 곳으로 흐르는 사랑 : 프라도 사제회

일상의 돌을 깎아 하늘의 성전을 짓는 마음 : 세상속으로 파견된 백성

당나귀와 나그네 : 말씀과 성사를 통한 그리스도인의 쇄신

눈물로 씻어낸 자리에 피어나는 평화의 꽃 : 한반도의 평화

빈 껍데기의 고백을 넘어, 참된 나를 만나는 길 :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기억의 창고에서 꺼낸 우정 : 소신학교 동창생

틈새를 메우는 사랑, 함께 걷는 평화의 길 : 레오 14세 교황님

죽음 너머의 세계 : 위령성월

진리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용기 : 정의의 신발


제 3 부 사람, 그리고 기억

깨진 그릇을 다시 붙이는 기적

낮은 곳을 향하는 낡은 구두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지혜

푸른 눈의 한국인, 그가 남긴 초대

비워냄으로써 커지는 빛

항구를 떠난 배가 만나는 찬란한 바다

늦게 피어 더 찬란한 영혼의 꽃

가장 소중한 시간은 바로 ‘지금’

연필 한 자루


신학단상Ⅱ권을 마치며

섭리의 숲을 지나며​


지은이 :  이용훈 주교


1979년 3월 가톨릭대학교 졸업 및 사제 수품


1988년 이탈리아 성 알폰소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1988년~2003년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총장 역임


2003년 5월 14일 주교 수품


2009년 3월 30일 ~ 현재 천주교 수원교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