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흙을 만지기 전에
이 책은 신학자를 위한 논문이 아니다. 전문 용어에 익숙한 이들만을 위한 책도 아니다. 먼저 몸으로 세계의 온도를 느껴 본 사람들을 위해 쓴 글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몸 신학’이 단순한 교리 용어가 아니라, 존재가 세계와 접촉하는 방식임을 어렴풋이 깨달은 이들을 향한 책이다. 신학 공부가 깊지 않아도 좋다. 몸과 일상이 하느님의 숨결에서 멀지 않다는 미세한 감각 하나면 충분하다. 이 책은 그 감각에 형태를 주고, 조용한 목소리를 부여할 것이다.
이 책의 중심에는 예수회 사상가 윌리엄 린치William F. Lynch가 있다. 그는 상상력을 실재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로 보았다. 참된 상상력은 건너뛰지 않는다. 흙의 냄새, 살의 무게, 시간의 저항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통과한다. 그 길 끝에서 하느님을 만난다고 그는 믿었다. 린치는 이를 ‘유비적 상상력’이라 불렀다. 그 반대편에는 현실의 층위를 회피하고 추상의 높이로 도약하려는 ‘아폴론적 상상력’이 있다. 그는 이 비행을 경계했다. 실재를 통과하지 않는 날갯짓은 결국 제자리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책 전반에 이 두 상상력은 끊임없이 얼굴을 드러낸다. 이것은 반복을 위한 반복이 아니다. 생각의 결을 바꾸기 위한 반복이다. 은유는 한 번 불리고 사라지는 상징이 아니다. 삶의 다른 밤과 아침에서 다시 만날 때, 그것은 더 깊은 색을 띤다. 이 책은 알고리즘, 전례, 얼굴, 화면처럼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룬다. 그러나 독자는 매번 같은 좌표 위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 되풀이 속에서 개념은 관념에서 떨어져 나와 감각의 궤도로 내려온다.
이 책의 또 다른 기둥은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몸 신학이다. 그는 몸을 영혼의 감옥이 아니라 하느님이 살러 온 성소聖所로 선언했다. 린치가 상상력의 길을 말했다면, 요한 바오로 2세는 그 길이 시작되는 자리가 몸임을 말했다. 두 사람은 만난 적이 없지만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이 책은 그 두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함께 들여다보려는 시도다.
이 책은 실천 목록을 내놓지 않는다. 지시와 명령에 주저한다. 대신,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각자의 삶은 하나의 진흙밭이다. 그 진흙으로 무엇을 빚어낼지는 오직 그 삶의 손에 달려 있다. 내가 건네고 싶은 것은 ‘처방’이 아니라 ‘눈’이다. 평범한 일상을 성소로 읽어 내는 눈, 낮고 어두운 자리에서 하느님의 흔적을 더듬어 찾는 눈이다.
책은 네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1부는 디지털 시대가 우리의 감각을 어떻게 납작하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실재에서 어떻게 멀어졌는지를 진단한다. 2부는 린치의 상상력 신학을 따라 실재의 두께로 돌아가는 길을 모색한다. 3부는 육화 신학이 어떻게 일상의 미학으로 변화하는지를 보여 준다. 4부는 디지털 문명 속에서도 유비적 상상력이 다시 걸음을 뗄 수 있음을 밝힌다. 그 마지막 자리에서 린치는 로마노 과르디니Romano Guardini와 만난다. 각 장은 따로 읽을 수 있지만, 처음부터 따라가면 사유는 한층 더 깊고 단단해진다.
마지막으로, 서두르지 않기를 바란다. 빠른 독서는 우리가 함께 비판하려는 속도의 문화와 닮아 있다. 느리게 읽자. 진흙을 손에 쥐고 천천히 빚듯이 문장을 더듬자. 그러면 어느 순간, 한 문장이 당신의 어제와 오늘을 가리키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순간이야말로 이 책이 건네고 싶은 전부다.

목차

지은이 : 김상용 신부
전주교구 신부, 광주가톨릭대학교 윤리신학 교수. 저서로 Laffectio maritalis nella definizione del matrimonio(2014), 역서로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사랑』(2007: Angelo Scola, Uomo-donna. Il caso serio dellamore, 200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