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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죄인지 잘 모르겠어요.”

“즐기며 살다가 죽기 전에만 성사를 보면 되지 않나요?”

“아직 상대방을 용서하지 못했는데 고해성사를 볼 수 있나요?”

“계속 같은 죄를 짓는데, 성사 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하느님께 용서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고해성사’하면 떠오르는 마음속 질문들과 그 질문의 무게감은 예비 신자, 새 신자뿐 아니라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한 신자들도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고해성사와 관련한 물음표들은 때로 고해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주저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다양한 질문에 공감하며 격려의 자세로 답해준다. 방법론적인 것을 세세히 설명하기보다는, 본질적인 것을 편안하게 풀어 주는 데 중점을 두었다.


고해성사는 의무감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저자는 무엇보다 고해성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우리 정체성을 다시금 기억하고 회복하는 은총의 통로라는 점을 강조한다. 고해성사의 본질인 ‘하느님과의 만남’, 그리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성찰의 핵심임을 분명히 하면서, 고해성사의 은총으로 주님과 함께 변화된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열망을 우리 마음에 담아 준다.


책 속으로


고해성사의 근본적인 목표는 하느님 자녀로서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의 온전한 회복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것을 이 세상에서부터 누리기를 바라십니다. 지금 이 세상에 살 때부터 하느님 나라를 맛보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신다는 뜻입니다.

_18쪽


하느님의 모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모습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인간은 아름다움을 잃어버립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께서 창조하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고해성사는 하느님의 큰 계획 안에서 이런 병든 인간을 회복시켜 주고자 만드신 성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_23쪽


죄를 성찰할 때 핵심은, 하느님과 인간을 어떻게 대하고 있느냐입니다. 모든 죄에 하느님과 이웃이라는 이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십계명을 요약해서 우리에게 ‘사랑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결국 ‘사랑하지 않는 것’이 죄가 됩니다.

_65쪽


모든 사람은 유일한 존재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나의 이웃은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제대로 하는 성찰은, 하느님께 받은 모든 은총을 기억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충실히 했는지 반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동안 한 번도 고백하지 못한 죄를 알아차리게 되고, 좀 더 진실한 고백도 가능해집니다.

_76쪽


고해성사는 세상을 사는 동안 하느님 그리고 사람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고 살아가도록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큰 은총의 성사이며, 인간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기적의 성사입니다. 우리는 이 선물을 받기 위해 필요한 준비와 희생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_103쪽


우리는 모두 성인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지만, 아직 많은 유혹 한가운데 서있는 약한 인간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성사를 보고 나서도 겸손한 마음을 유지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주님의 도우심을 청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도움과 은총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설사 자신의 약함과 옛 삶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체험해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_169-170쪽









다시 하느님을 향하며


왜 고해성사를 봐야 하나요?


고해성사의 근본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고해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쉽게 떼지지 않아요


즐기며 살다가 죽기 전에만 성사를 보면 되지 않나요?


왜 굳이 사제에게 고백해야 하나요? 


오랫동안 냉담을 해서 고해성사 보는 것이 좀 두려워요


고해성사에 다섯 가지 단계가 있다던데요? 


고백을 준비하며


어떤 것이 죄인지 잘 모르겠어요


대죄와 소죄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요


성찰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중요한 성찰 주제는 무엇일까요?


성찰할 때 성령께서 어떻게 도와주시나요?


십계명을 잘 지키고 있는데, 그래도 성사를 봐야 하나요?


‘칠죄종’이 무엇인가요?


저는 좋은 지향이었는데, 상대방이 상처를 받았어요


선을 실천하지 않은 것도 죄가 되나요?


나의 권리를 침해하고 가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행동도 죄인가요?


나쁜 생각이 떠오를 때가 많아요


세례성사를 받기 전에 지었던 죄가 생각나면 고백해야 하나요?


돌아가신 분께 잘못했던 일이 뒤늦게 떠올라서 마음에 걸려요


주일미사에 빠졌을 때, 대송을 바치면 성사를 안 봐도 괜찮나요?


늘 비슷한 죄만 고백하는데, 성찰을 제대로 못한 걸까요?


죄책감과 뉘우침은 어떻게 다른가요?


뉘우치는 마음 없이 고해성사를 봐도 괜찮은가요?


아직 상대방을 용서하지 못했는데 고해성사를 볼 수 있나요?


고해성사를 통해 완전한 용서와 관계 회복이 가능할까요? 


고해실에서 하느님과 마주하고


죄를 어디까지 고백할지, 어떤 죄를 고백할지 어려워요


복잡한 상황 설명을 다 하지 않고, 죄만 고백해도 괜찮나요?


생각나는 죄만 고백하면 되는 건가요?


계속 같은 죄를 짓는데, 성사 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인간 앞에서 무릎 꿇고 죄를 고백하는 것이 내키지 않아요


너무 간단한 보속을 받으면 왠지 이래도 되나 싶어요


성사 때 받은 보속이 마음에 와닿지 않아요


보속에도 유효기간이 있나요?


신부님이 주신 보속을 다 바치지 못했어요


그래도 머뭇거리는 마음


하느님께 용서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성사를 봤는데도 마음이 무거워요


신부님이 무성의하게 성사를 주시는 것 같아서 고해하고 싶지가 않아졌어요


신부님이 저를 기억하시고 선입견을 가질까 봐 걱정돼요


면담 고해라는 것이 있나요?


정말로 고해의 비밀은 항상 지켜지나요?


성인들은 고해성사를 자주 보았다던데, 세심증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고해성사를 봐도 바로 용서와 치유가 되지 않아요


새롭게 결심해도, 옛 삶으로 되돌아가는 자신이 실망스러워요


행복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글쓴이 : 인만희 신부


Manuel Ezhaparampil​


글라렛선교수도회 사제이며, 1957년 인도의 케랄라에서 태어났다. 인도 교황청립 동방대학을 졸업한 뒤 1985년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본당 사도직과 수도원장직을 수행했다. 수도생활신학 전공으로 로마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마닐라의 성토마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 수도자신학원과 양성장교육원에서 강의했고,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영성 지도를 맡기도 했다. 사제 및 수도자들의 영적 지도와 피정 지도를 꾸준히 해왔고, 현재는 소속 수도회의 관구장 소임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예수 우리의 동반자 아시아 수도자 양성의 전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