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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월」, 「동백나무」, 「즐거운 편지」를 차례로 발표하며 등단한 황동규는 묶어낸 시집마다 특유의 감수성과 지성이 함께 숨 쉬는 시의 진경은 물론 ‘거듭남의 미학’으로 스스로의 시적 갱신을 궁구하며 한국 서정시의 새로운 현재를 증거해왔다. 시집 『봄비를 맞다』는 쉼 없는 시적 자아와의 긴장과 대화 속에서 일궈낸 삶의 깨달음을 시로 형상화해온 시력(詩歷) 66년의 그가 미수(米壽)를 두 해 앞두고 펴낸 열여덟번째 시집이다.


전례 없는 팬데믹의 공포가 엄습했던 2020년 가을의 복판에 전작 『오늘 하루만이라도』가 선보였으니 근 4년 만에 다시 새 시집으로 독자들을 찾은 셈이다. 전작에 이어 이번 시집 역시 그간 꾸준히 쓰고 발표한 시 59편과 함께 시 편편의 주요한 처소(處所)이자 생의 후반 이십 년 가까이 시인의 발걸음과 감각을 붙잡아두고 진한 즐거움을 안겨준 공간에 대한 소회를 담은 산문(「사당3동 별곡」) 한 편을 더했다.


이번 시집에서 황동규는 녹록지 않은 노년의 삶을 이어가는 노정에도 여전히 시적 자아와 현실 속 자아가 주고받는 대화를 포기하지 않고 생의 의미와 시의 운명을 함께 묻고 답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걸으리,/ 가다 서다 하는 내 걸음 참고 함께 걷다/ 길이 이제 그만 바닥을 지울 때까지”(「그날 저녁」), “다시 눕혀”지더라도 “늙음의 바닥을 짚고 일어나”(「시인의 말」) 이어가는 것이 자신의 삶임을 명료하게 의식하는 그의 시는 누구나 열망하나 쉬이 넘볼 수 없는 여유와 온기와 다감함 역시 잊지 않는다.


“끄트머리가 확 돋보이는 시”(「사월 어느 날」)를 향한 한결같은 열정과 함께, 삶에 대한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긍정의 진술이 가닿는 환한 깨달음, “그렇다, 지금을 반기며 사는 것”(「겨울나기」)이란 시인의 다짐을 거듭 곱씹게 되는 이유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오색빛으로 | 히아신스 | 단 사과 | 겨울나기 | 흩날리는 눈발 | 봄비를 맞다 | 이 한생 | 마음 기차게 당긴 곳 | 야트막한 담장 | 사월 어느 날 | 불타는 은행나무 | 터키 에베소에서 만난 젊은이 | 시인 삶의 돌쩌귀 | 바가텔 5 | 몰운대 그 나무


2부

여드레 만에 | 참새의 죽음 | 나갈까 말까? | 어떤 9월 | 건성건성 | 옥상 텃밭 | 코로나 파편들 | 서달산 문답 | 외롭다? | 눈물 | 바닥을 향하여 | 삼세번 | 2022년 2월 24일(목) | 지문 | 해파랑길


3부

비바람 친 후 | 서울 소식 | 담쟁이넝쿨 | 백 나라 다녀온 후배 | 생각을 멈추다 | 조각달 | 속되게 즐기기 | 어떤 동짓날 | 슬픈 여우 | 까치 | 병원을 노래하다 | 호야꽃 | 그리움을 그리워 말게 | 그날 저녁


4부

홍천군 내면 펜션의 하룻밤 | 태안 큰 노을 | 꽃 울타리 | 해시계 | 흑갈색 점 하나 | 그 바다 | 혼불 | 혼불 2 | 묘비명 | 「나는 자연인이다」 | 길 잃은 새 | 한밤에 깨어 | 싸락눈 | 속이 빈 나무 | 뒤풀이 자리에서


산문 / 사당3동 별곡 · 황동규

해설 / 환한 깨달음을 향하여 · 장경렬


글쓴이 :  황동규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영문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고, 영국 에든버러 대학 등에서 수학했다. 1958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어떤 개인 날』 『풍장』『악어를 조심하라고?』 『외계인』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꽃의 고요』 『겨울밤 0시 5분』 『사는 기쁨』 『연옥의 봄』 『오늘 하루만이라도』 등의 시집을 펴냈다. 현대문학상 · 이산문학상 · 대산문학상 · 미당문학상 · 호암예술상 등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