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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읽은 책들을

우리가 다시 읽다


이 책은 영화학자 이윤영과 문화연구자 이상길의 서평 모음집이다. 두 사람은 1980년대 후반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으며 프랑스 유학을 다녀왔고 지금은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학문 세계에서 그 정도의 겹침은 그저 스침에 지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두 학자는 오랫동안 교유를 이어오며 공동번역 작업도 했다.


두 사람이 2021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생각, 시대를 바꾸다’라는 주제로 『출판문화』에 매달 번갈아 가며 연재한 서평을 중심으로 23편의 글을 모았다. 연재된 시기가 코로나19 ‘대격리 시대’의 중심부를 지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적 교류가 끊긴 그 시대, 과장하자면 이제까지의 문명이 종언을 고하는 것은 아닌가 싶던 과민한 시기에 두 명의 학자는 ‘우리를 키운 책들’을 다시 마주한 것이다. 마치 바둑의 대국을 하듯, 두 사람이 한 권씩의 책을 내밀며 서로의 의중을 담은 ‘수’가 수놓은 듯 짜여진 것이 이 서평집이다.


책 제목인 ‘우리를 읽은 책들’은 이윤영이 쓴 서문에서 그 의미와 기원을 잘 알 수 있다. 어떤 책들은 내가 찾아서 읽기 전에 나를 찾아온다. 흔히 상업적으로 떠드는 ‘이 시대의 필독서’ 같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어느 시기, 우리를 찾아와 “우리와 함께 살면서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며 우리 자신의 일부가 된 책들.”


아마도 1980~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지금의 중장년들. 이 책의 목차에서 그 시절 대학가 서점에서 얼핏 제목이라도 익힌 책들을 떠올린다면, 그 책들은 설령 내가 펼쳐 읽지 않았어도 그 시대의 나를 읽은 책들이다. 그 시대의 지적 자장을 통과한 모든 이들에게 이 서평집은 ‘젊은 날의 나’로 향하는 단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의할 필요가 있다. ‘젊은 날’이 그저 ‘지난날’일까. 책과 사상의 생명력은 길다. “세계를 보는 법을 바꿔 놓아서 시대의 이정표가 된 책들”, 그래서 “우리를 키웠다고 할 수 있는 책들”은 쉽게 늙지 않는다. 내가 젊은 날, 제목만 읽고 지나친 책들이 여전히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충동하기도 한다.


‘우리를 읽은 책들’이 이 책에 담은 23권에 그칠 리가 없다. 당신을 읽은 책들은 더 많고 또 다를 것이다. 어쨌거나 다시 읽기. 시대를 넘어 세대를 거쳐 다시 읽고, 또 읽어야만 하는 책들이 있다. 이 서평집이 당신을 새롭게 충동하기를. 당신을 읽은 책들을 찾아 아직 젊은 당신과 다시 만나기를.

목차


서문

읽기, 살아가기, 쓰기 (이윤영)


1부 이윤영이 다시 읽다


섬뜩한 적의와 미적인 세계인식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한국적 정체성의 속살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서울, 1960년대, 반시대적 고찰

-김수영, 『김수영 전집 2: 산문』


의뢰(인) 없는 변호(인)

-조영래, 『전태일 평전』


이승과 저승 사이의 풍경

-박상륭, 『죽음의 한 연구』


서울을 이해하기 위하여

-손정목,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서울 격동의 50년과 나의 증언 1~5』


가난에 대해 말한다는 것의 무게

-조은, 『사당동 더하기 25: 가난에 대한 스물다섯 해의 기록』


『화산도』를 읽어야 하는 이유

-김석범, 『화산도』


『무소유』를 읽는다는 것

-법정, 『무소유』


깨끗한 우리 말 표현을 찾아서

-이오덕, 『우리 글 바로 쓰기 1~5』


김윤식의 이광수

-김윤식, 『이광수와 그의 시대』


2부 이상길이 다시 읽다


‘문화연구적’ 시선의 발명

-리처드 호가트, 『교양의 효용』


지식인을 묻다

-장 폴 사르트르, 『지식인을 위한 변명』


기술, 문화, 역사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자본주의 사회의 일상 비판

-앙리 르페브르, 『현대세계의 일상성』


‘연기’로서의 삶

-어빙 고프먼, 『자아연출의 사회학』


권력에 대해 말하기

-미셸 푸코, 『권력과 지식-미셸 푸코와의 대담』


자본주의의 부적응자들을 위한 변론

-피에르 부르디외, 『자본주의의 아비투스-알제리의 모순』


그들이 ‘문명인’이 되기까지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문명화 과정 I, II』


너무 많이 말한 사나이

-카를로 진즈부르그, 『치즈와 구더기-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


죽음과 소녀

-롤랑 바르트, 『밝은 방』


‘매트릭스’에서 살고 죽다

-장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하이브리드 세계의 ‘방법서설’

-브뤼노 라투르,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


후기

침묵과 우정의 공간 (이상길)

글쓴이 :   이윤영
영화학자.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화 전공 교수.
「덧쓰기 예술, 몽타주, 멜랑콜리: 장-뤽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클로즈업〉과 영화적 (재)구성의 시학」, “Lieux et imaginaires dans le cinema d’auteur coreen” 같은 논문을 쓰고, 로베르 브레송(Robert Bresson)의 『시네마토그라프에 대한 노트』, 『사유 속의 영화: 영화 이론 선집』, 다니엘 아라스(Daniel Arasse)의 『디테일: 가까이에서 본 미술사를 위하여』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글쓴이 : 이상길
문화연구자.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미디어문화연구 전공 교수.
『아틀라스의 발-포스트식민 상황에서 부르디외 읽기』(2018), 『상징권력과 문화-부르디외의 이론과 비평』(2020), 『라디오, 연극, 키네마-식민지 지식인 최승일의 삶과 생각』(2022) 같은 책들을 썼고, 피에르 부르디외, 미셸 푸코, 폴 벤느, 디디에 에리봉, 찰스 테일러 같은 외국 저자들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예술 책에 관한 잡지 연재 글들을 모아 『책장을 번지다, 예술을 읽다』(공저, 2021)를 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