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인생을 읽어 주는
십자가의 길 묵상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철학 교수이자 가톨릭교리신학원 원장인 저자가 평생 묵상하며 걸어온 길을 마음으로 나누는 ‘십자가의 길’ 영성 묵상집이다. 김형주, 김혜림 두 화백의 작품이 감동을 더한다.
십자가의 길을 이토록 깊게도 묵상할 수 있는지, 그 깊이와 아름다움이 놀랍기만 한 책이다. 어떤 모습으로든 자기 인생길을 소명 삼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특별한 사랑의 체험을 나눠 줄 것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소명으로 받은 삐뚤빼뚤 자기 인생길을 십자가의 길인 듯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누군가를 가슴에 떠올리며 ….”
- 글쓴이의 「헌정」 중에서
십자가의 길
고독한 사랑의 길에 대한 묵상집
십자가의 길 기도를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다. 묵주 기도처럼 한자리에 앉아서 하는 기도가 아닌, 성당이나 야외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처를 돌면서 바치는 기도이면서, 기도를 바치는 시기가 주로 주님의 부활을 기다리며 수난을 기리는 사순 시기에 주로 집중해 있어, 죽음을 향해 걸으셨던 예수님을 따라 아픔을 묵상하고 기도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 기도가 갖는 의미는 다른 기도에 비해 결코 부족하다거나 얕지 않다. 장소나 시간에 제한되어 있지도 않다. 십자가의 길은 말 그대로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음을 향해 걸으셨던 길이고, 그 길을 함께 걷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더 나아가 부활의 삶에 함께 참여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유로 십자가의 길 기도는 14세기에 체계화된 이후, 영적 순례에 기꺼이 동참하고자 한 많은 이들이 즐겨 바치던 기도였다. 이 책은 조용한 곳에 혼자 앉아 책에 나와 있는 십자가의 길 각 처 조각을 보며 십자가의 길 기도를 소리 내어 읽어 봐도 좋을 기도 묵상집이다.
말과 글로 바치는
한 철학자의 고독한 고백
전前 천주교 주교회의 복음화위원장 이병호 주교는 이 책의 ‘추천의 글’에 다음과 같이 남겼다.
“눈꽃 서리. 대여섯 살 때쯤이었을까? 초겨울, 집 밖에서 놀다가 우연히 울타리 근처에서 본 그 놀라운 모습을 그대로 가져다가 엄마에게 보이려고 손을 대는 순간, 소리도 없이 무너져 내리던 때의 그 허무함이란. 그런데도 때로는 그것을 잡아 내는 일을 기적처럼 하고 있는 이들이 세상에는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감격, 그 기쁨. 그런데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손을 대지 않고 그 일을 하는 이들. 그럼 그들은 무엇으로, 어떻게 그것을 집어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일까?”
십자가의 길 여정에서 예수님께서 겪으셨을 수난과 고통을 김진태 신부는 『십자가의 길 고독한 사랑의 길』에서 때로는 예수님의 말로, 때로는 군중 속에 숨어 버린 그리스도인의 말로, 때로는 키레네 사람 시몬의 말로, 때로는 이천 년 후 자신의 말로 독자에게 전해 준다.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입으로 읊조리는 기도문이 아닌, 삶을 움켜쥔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선명한 감정의 글로써.
철학과 신학으로
예수님을 묵상하는 열네 곳의 기도처
철학 교수이자 교리 신학원 원장으로 재직 중인 저자는 신학생 시절 동료 신학생과 십자가의 길을 하며 나누었던 묵상을 누군가의 묵상에 도움이 되고 삶에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세상에 내놓는다. 강산이 네 번 변하고도 남을 시간, 철학과 신학으로 살았던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묻혀 있던 묵상은 깊은 숙성의 시간을 거친 향기로 오늘의 독자에게 감동을 전한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노老철학자의 기도는 십자가의 길 열네 기도처를 따라가며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한다. 기도는 돌아가신 예수님을 무덤에 모심을 묵상하며 끝나지만, 저자의 글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아직은 스산한, 찬바람 부는 정원을 거닐며 삶과 죽음의 경계가 멀지 않음을 묵상한다. 내 몸을 맞고 떨어져 뒹구는 바람의 주검이 죽음처럼 보이는 까만 땅에서 색으로 가득 찬 생명으로 세상을 채울 것임을 아는 겸손한 기다림을 묵상한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부활의 영광과 기쁨으로 우리에게 올 것을 아는 이는 그래서 추운 겨울을 이겨 낼 수 있다.
“내 몸에 걸려 떨어진 바람들의 주검이 대지의 생명을 잉태하는 숨들과 섞여 있습니다. 하느님, 이 계절에 저희는 그래서, 삶의 모든 갈등과 고통 속에서지만, ‘타는 목마 름으로’, 그러나 ‘열기에 찬 조바심을 넘어’ 겸손하게 기다립니다. 그리하여 기도 안에서 영원을 받아 누립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과 동형同形이기를 꿈꾸면서요.”
책 속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소명으로 받은 삐뚤빼뚤 자기 인생길을 십자가의 길인 듯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누군가를 가슴에 떠올리며 ….
_헌사, 5쪽
몸, 마음, 영으로 이루어졌다는 세 겹 인간. ‘하나이신 분 앞에 홀로 서서’(사목헌장 16항 참조) 말을 주고받으며, 그 깊은 샘에서 길어 올린 말, 글. 그래서 다른 이에게도 같은 울림을 일으키는 그 힘.
_추천의 글, 9쪽
예수님, 나의 주님, 지금 이 시간에는, 오직 주님의 사랑의 길을 본받으려는 것이 제 모든 목적이게 해 주시고, 이 목적을 위해 일체의 잡념을 떨쳐 버리게 해 주소서.
_기도를 시작하며, 13쪽
무관심한 제 언어가 정직이기에 주님께 대한 사형 선고는 정당합니다. 안주하는 제 마음이 생명이기에 주님께 대한 사형 선고는 정당합니다. 성장과 발전의 추구가 제 사랑이기에 주님께 대한 사형 선고는 정당합니다.
_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18쪽
십자가의 길, 고독한 사랑의 길! ‘혼자’를 연상시키는 고독과 ‘함께’를 연상시키는 사랑이 십자가의 길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주님이 보여 주시는 사랑의 길은 고독해야만 진실한 사랑의 길이라 하십니까? 지독한 고독과 지극한 사랑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_제9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55쪽
사랑과 죽음. 그것은 어쩌면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생각도 해 본다. 사랑 속에서 이미 영원을 체험한 탓일까? 사랑 속에서 무한히, 무한정하게 ‘세상에 속함’을 뛰어넘은 탓일까? 살고 싶다는 절규나, 살아야 한다는 부르짖음은 어쩌면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다는 원초적 외침과 동일한 까닭일까?
_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69쪽
하오니 주님, 연약하여 이렇게 방황하지만, 미완성과 불충실의 꼬리표를 늘 숙명처럼 달고 다니지만, 사랑이 부재하고 주님이 부재하는 듯한 외로운 이 시간에도 저희가 충실한 사랑에 변함없이 몸 바치게 해 주소서.
_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78쪽
내 몸에 걸려 떨어진 바람들의 주검이 대지의 생명을 잉태하는 숨들과 섞여 있습니다. 하느님, 이 계절에 저희는 그래서, 삶의 모든 갈등과 고통 속에서지만, ‘타는 목마름으로’, 그러나 ‘열기에 찬 조바심을 넘어’ 겸손하게 기다립니다. 그리하여 기도 안에서 영원을 받아 누립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과 동형同形이기를 꿈꾸면서요.
_기도를 마치며, 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