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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들이 지난 30년 한국문학에 대한 나의 증언이자 발언이고, 추억이다”

문학의 포화 한가운데서 30년,

그가 읽고 듣고 마침내 찬양하여 기록한 것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생애 첫 비평에세이!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속 주인공은 왜 페스트와 싸우는 동시에 그 싸움의 기록자가 되었는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는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사실만이라도 말해두기 위하여”. 이 문장을 호명한 저자는 ‘문학은 발언이며 증언이며 추억’이라는 신념을 보탠다. 30년간 <한겨레>의 문학전문기자로서, 문학의 포화 한가운데서, 그는 무엇을 읽고 보고 듣고 말하고, “찬양하여” 기록했을까.

당대의 가장 치밀한 목소리로서 그가 목도한 문학의 다채로운 표정들은 취재 수첩에 꼼꼼히 남았다. 이는 동일한 일을 평생 수행한 한 직업인의 경건한 기록이자 그 자체로 한국문학과 출판의 세밀한 역사다. 장편소설 전성시대로 베스트셀러가 부각했던 1990년대,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테제와 한국 문학상에 대한 비판, 이른바 미래파라는 젊은 시인들이 등장한 2000년대, 표절 논란, 절필 선언, 세월호, 원로 문인들의 연이은 별세 등으로 흘러온 2010년대, 기후위기와 펜데믹의 공세 속 새로운 흐름이 감지된 2020년대. 그가 수첩에 빼곡하게 적은 한국문학과 출판의 흐름들을 따라가다 보면 문학계 안팎의 지도가 선명하다.

1부에서는 박완서, 황석영 등 한국문학사 안에 족적이 뚜렷한 작가와 작품론을 실었다. 2부에서는 신경숙 표절 문제와 노벨문학상에 관한 일침, 한국 문단의 장편소설로의 진화 촉구,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 드리운 역사 문제 등 시대의 첨예한 쟁점과 인물들을 다루었다. 3부와 4부는 <한겨레>에 실었던 칼럼과 서평을 선별해 엮었다. 5부에서는 김소진부터 조세희까지, 한 시대를 열고 닫았던 작가들의 부고 기사들을 한데 모았다. 각 부 별면으로 황현산, 최인훈, 김종철, 정유정의 인터뷰를 배치했으며, 부록으로는 한국 언론 사상 최초로 북한의 문인들을 취재한 연재물 <북에서 만난 작가들>을 수록했다.

기자로서 묵묵히 그리고 켜켜이 써온 30년 동안의 글들을 엮은 《이야기는 오래 산다》에는 작가와 작품, 출판과 사회의 지형도가 선연하다. 풍부한 문학 읽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충실한 문학 수업기이자, 문학이 호위한 세계와 문화를 촘촘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면에서는 날카로운 시대 비평기라고 할 만하다.


최재봉 기자는 기자 인생의 대부분을 문학 담당으로 살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존재가 또렷해졌다. 이 책은 문학에 애정이 깊고, 직업인으로서도 긴 시간 성실했던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이 책에 실린 많은 작가들은 자신이 해야만 했던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이다. 최재봉 기자도 그 일,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하는 그 일을 해냈다._정혜윤(CBS PD, 《삶의 발명》저자)


1990년대에서 2020년대까지,

서평과 칼럼, 인터뷰와 부고 기사로 읽는 한국문학 총결산


1992년 <한겨레>의 문학 담당 기자가 된 이래 서른 해 넘게 현역으로 활동해온 저자는 그 시간들을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었다고 회고한다. 작가와 문학의 사회적 지위가 막강했던 시절이 생생한 그에게 한국문학은 어떻게 가름될까. 문학의 융성과 쇠퇴를 현장에서 체감한 이로서, 그 면면을 기록해야 한다는 기자로서의 의무감 또한 있었음을 이 책은 짐작케 한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걸출한 작품을 남겼으나 끝내 침묵하다가 타계한 조세희 선생과의 인연, 한국문학계의 따사로운 어른 박완서 선생 추모의 글, <한겨레> 기자 출신 소설가 김소진의 작품에 나타난 기자들의 모습까지 세세히 일별한다는 점이 그렇다. 또한 요절한 시인 진이정의 유고 시집론, 지난한 역사를 해원하는 형식으로서 문학적 의미를 조명한 황석영의 《손님》론, 안도현의 시선집에 수록한 해설까지, 작가와 작품에 대한 본격적인 비평을 선보인다.

유럽어에 (암묵적으로) 한정되어 번역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는 노벨문학상 비판론, 신경숙 표절 사태를 통해 드러난 문단 카르텔, 역사의식으로 포장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역사허무주의에 대한 일침 등 핵심 쟁점에 관한 글들도 문제적이다.

시간순으로 정렬한 칼럼과 서평을 통해서는 역사와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살필 수 있다. 평양에서 열린 남북민족작가회의 풍경, 비폭력을 외친 시인을 진압하는 세태, 코로나 시대의 문학, 기후위기 시대, 오토픽션 논란으로 촉발된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 등이 그것이다. 김소진의 첫 소설집부터 김연수, 김애란, 한강, 최은영을 거쳐 김초엽의 신작까지, 한국문학의 거듭된 성취를 가늠해볼 장을 제공한다.

특히 별면 인터뷰와 문인들의 부고 기사는 그 자체로 한국문학사의 큰 줄기를 대변한다. 박경리, 이청준, 박완서, 최인호, 최인훈, 허수경, 김지하 등의 부고는 한 시대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엄숙하고 비장한 문학적 풍경들이다. 그 풍경을 조감함으로써 “그가 멈춘 곳에서, 그를 잃고서, 그러나 그와 함께” 새롭게 시작될 한국문학의 미래 또한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김소진 문학은 어디까지나 생성 중이었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고아떤 뺑덕어멈》 《자전거 도둑》 등 세 권의 단편집, 장편 《장석조네 사람들》과 《양파》, 콩트집 《바람 부는 쪽으로 가라》, 장편동화 《열한 살의 푸른 바다》로 갈무리된, 그리고 반쪽짜리 장편 《동물원》을 남겨둔 그의 문학은 미완의 상태에서 급정거했다. 작가로서 그가 성취한 바는 앞으로 성취할 바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점입가경, 그의 이야기는 바야흐로 흥미진진한 본론으로 접어들 참이었다. 그는 독자와 더불어 90년대를 넘어 21세기로 나아가야 했다.

그가 멈춘 곳에서, 그를 잃고서, 그러나 그와 함께, 세기말의 한국 소설은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_김소진의 부고, 333쪽


인간은 이야기의 우주 속에 태어나 살아간다

문학의 본령을 꿰뚫는 한 기자의 묵직한 통찰


저자는 1988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2022년 정년퇴직을 하기까지, 신문사가 유일한 직장이자 평생직장이었다. 문학의 영토 안에서 작가와 독자를 잇는 가교인 기자로서의 본분에 사력을 다했을 것이다. 추문과 비아냥 속에서 한국문학이 길을 잃었을 때도 우리는 왜 소설을 쓰고 읽어야 하는지 작고한 평론가 김현의 말을 되새기면서 끝까지 지켜보았을 것이다. “이 세계는 과연 살 만한 세계인가, 우리는 그런 질문을 던지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224쪽). 소설은 비록 더럽고 비참한 상황을 그리더라도 그 안에는 유토피아를 향한 소망이 오롯이 간직되어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문학과 문학이 향해야 하는 바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굳건했던 한 기자의 묵직하고도 날카로운 통찰이 《이야기는 오래 산다》에 남아 독자에게 면면히 이어지길 바라본다.


이 책에서도 소개한 나의 스승 도정일 선생의 인문 에세이에 따르면, 인간이란 이야기의 우주 속에 태어나 살아가는 동물, “이야기하는 원숭이”다. 이야기는 의미 없는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고, 그런 이야기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문학이다. 문학사가 쓰이기 전에도 문학은 엄연히 존재해왔다. 내가 문학 기자를 하기 전에도 면면히 이어졌듯이, 나의 퇴직 이후에도 이야기는, 문학은 오래도록 살아갈 것이다. 이 책이 문학의 그런 유구한 생명력에 대한 하나의 증거가 되기를 바란다. _‘책머리에’에서

목차


책머리에

들어가는 글 문학으로, 문학을, 문학과 30년


1부 | 작가와 작품 | 그 손가락이 가리킨 것은

오랜 침묵의 뿌리 ―조세희, 《하얀 저고리》

그 손가락이 가리킨 것은 ―박완서 선생 추모의 글

기자가 쓴 소설들, 소설가가 그린 기자들 ―김소진의 소설에 대하여

진이정을 괴롭힌 ‘세 허씨’는 누구? ―진이정,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지난한 역사를 해원하는 형식으로서의 문학 ―황석영, 《손님》

우주로 사라지는 흰 운명의 길 ―김지하, 《흰 그늘의 길》

전봉준의 혁명에서 금강송의 나라로 ―안도현,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인터뷰 1 보이는 것 너머에 다른 세계가 있다 ―황현산


2부 | 쟁점과 인물 |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하기

반세기의 의연함 ―〈현대문학〉 600호에 부쳐

한국 소설, 장편으로 진화하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하기―노벨문학상 생각

나는 왜 《악평》을 번역했나 ―앙드레 버나드·빌 헨더슨, 《악평》

신경숙 표절의 기원과 행로 그리고 파장

유미리의 한국어

역사의식으로 포장된 하루키의 역사허무주의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인터뷰 2 결국 평생 한 가지 노래를 ―최인훈


3부 | 칼럼 | 살 만한 세계

남북 ‘침묵의 영토’ 메운 백두산 소녀의 미소

비폭력 외친 시인을 짓밟다니

‘혀’ 표절 논란의 진실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2017년 가을 창춘에서

《화산도》 완독기

김윤식 선생의 편지

문학관을 생각하며 옛날 잡지를

먼지의 시학

벌레에 관한 몇 가지 생각

박태순의 눈과 발

코로나 시대의 문학

소설을 생각한다

먼저 온 미래

옛글을 읽으며

인터뷰 3 인간의 힘을 믿는다는 것 ―김종철


4부 | 서평 | 이야기는 오래 산다

박완서 문학의 원점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곡절 깊고 신산스러운 삶의 풍경 ―김소진,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대화는 왜 중요한가 ―이윤기, 《뿌리와 날개》

소설, 법 혹은 소, 설법 ―박상륭, 《소설법》

말할 수 없고 알 수 없으나 ―김연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이제 아이는 스스로 이야기하려 한다 ―김애란, 《달려라, 아비》

저물어 스러지는 것들 ―김훈, 《강산무진》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아름답게 말하는 일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서정의 계급성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인간은 무엇인가 ―한강, 《소년이 온다》

이제 꿈이 시작되는 건가요? ―배수아, 《뱀과 물》

조문하듯 시를 쓴다 ―이산하, 《악의 평범성》

한 실천적 인문학자의 믿음 ―도정일, 《시대로부터, 시대에 맞서서, 시대를 위하여》 《만인의 인문학》 《공주는 어디에 있는가》 《보이지 않는 가위손》

다시 일어설 사랑의 힘 ―최은영, 《밝은 밤》

다른 감각의 존재들 ―김초엽, 《방금 떠나온 세계》

죽음하다의 세계 ―김혜순,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오래 품어온 사람과 사랑과 회한과 ―조용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윤회하는 사랑 ―진은영,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인터뷰 4 나를 통해 세상을 불타오르게 하라 ―정유정


5부 | 부고 | 그가 멈춘 곳에서, 그를 잃고서, 그러나 그와 함께

김소진

박경리

이청준

박완서

최인호

최인훈

황현산

허수경

김지하

최일남

조세희


| 부록 | 북에서 만난 작가들

벽초 홍명희의 손자, 남한 문학상을 받다 ―소설가 홍석중 1

통일 문학의 첫 줄 쓰겠다 ―소설가 홍석중 2

남에 두고 온 어머니, 시로 녹여낸 사모곡 ―시인 오영재

경쾌한 문체로 남녀사랑 ‘금기’ 깨다 ―소설가 남대현

북쪽 인상 바꾼 탁월한 성취 ―소설가 백남룡

시로 그리는 사상과 감정, 남쪽과는 다른 진화 ―시인 박세옥·리호근


글쓴이  : 최재봉
1961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영문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1992년부터 한겨레신문 문학 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이야기는 오래 산다》 《동해, 시가 빛나는 바다》 《그 작가, 그 공간》 《언젠가 그대가 머물 시간들》 《거울나라의 작가들》 《간이역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 한국문학의 공간 탐사》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지구를 위한 비가》 《프로이트의 카우치, 스콧의 엉덩이, 브론테의 무덤》 《악평: 퇴짜 맞은 명저들》 《제목은 뭐로 하지?》 《에리히 프롬, 마르크스를 말하다》 《클레피, 희망의 기록》 《에드거 스노 자서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