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앞에서 우리도 욥처럼 고개를 들자
삶을 뒤흔드는 고통 앞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고 결코 환영할 수도 없는 고통, 바람이 한순간 잦아들 듯 그저 그렇게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우리는 엎드리고 있지 않는가.
우리가 고통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때, 우리 삶이 고통으로 점철하는 것임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이미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고통을 통해 우리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고 깊어진다는 사실, 이웃에게도 손을 내밀 수 있는 창조적 고통이 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수용, 애도의 과정 등을 허용해야 한다. 탄원의 시편을 읋으며 우리의 고통을 하느님 앞에 갖다 놓거나, 당신 아들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봐야 헀던 성모님을 찾아가 위로를 받을 수도 있다. 특히 고통의 이유를 끊임없이 찾던 욥에게 하느님이 내리신 지침, 창조 세계를 돌아보라고 하시는 말씀은 우리가 들어도 참 엉뚱하고 그 방향이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욥은 창조 세계 앞에 섬으로써 하느님의 현존과 사랑을 체험하고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진다. 고통이 신비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 책이 지닌 큰 힘은 우리가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도록 그 지름길을 일러주고 위로와 힘이 되도록 조용히 다가오는 저자의 목소리이다. 고통에 대한 전반적인 성찰이나 이론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고통에 직면하는 우리에게 요긴한 책이다. 참 고맙고 따뜻한 책이다.
책 속으로
내 인생에 운명처럼 벌어진 역경을 내가 결연한 자세로 껴안으면, 그 역경은 더 이상 내 삶을 무너뜨리는 비극이 아니라, 내 삶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고 나를 이끌어 가는 창조적 힘이 되는 것이다.
_56쪽
우리의 인생을 궁극적으로 결정짓는 요소는 사건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다.
_68쪽
자연은 인간에게 생명력을 부여한다. 하느님은 혹시나 당신의 자녀 누군가가 삶의 고통 앞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거나 방구석에서 울고 있다면, 그렇게만 하지 말고 분연히 밖으로 나가라고 하신다. 당신이 창조하신 세계를 보면서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을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창세기에서 하느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보시니 좋았다고 하셨는데 이제 다시 그것을 욥에게 상기시켜 주시는 것이다.
_121쪽
욥도 하느님을 만남으로써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졌다. 특별히 욥은 생명 세계를 창조하시고 그 세계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을 만남으로써 그분의 온전하고 무한한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내적 힘을 갖게 된다.
_127쪽
창조 세계를 통해서 하느님의 현존을 깨달으면, 환경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지만 살아갈 수 있는 내적 힘을 갖게 된다. 기쁨을 보존하면서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내적 힘과 통찰력을 갖게 된다.
_136쪽
우리는 하느님의 창조 세계 안에서 영원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어찌 지금 이 자리에서 삶의 기쁨과 경이를 누릴 수 없다는 말인가!
_141쪽
이야기를 시작하며
1부 고통, 삶의 실재
고통에 대한 종교들의 태도
현실을 직시할 때
2부 고진감래
고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환경이 삶을 결정하는가?
3부 고통의 용광로에서 작품이 되기 위하여
고통을 안고 갈 수 있다면
고통을 적극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하느님의 뜻을 찾아서
4부 애도의 시간
대뜸 하느님의 뜻이라고
정해진 틀과 기간은 없다
요긴한 도움
5부 하느님의 창조 세계가 주는 위로
하느님의 초대
청산과 창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이야기를 마치며
미주
글쓴이 : 송봉모 신부
예수회 신부.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원에서 교수 자격증을 받고,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에서 신약주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약 과목을 오랫동안 가르쳤으며 지금은 예수회 서강공동체 원장으로 봉사하면서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지은 책에 성서와 인간 시리즈, 성서 인물 시리즈, 요한복음산책 시리즈, 예수 시리즈와 「미움이 그친 바로 그 순간」,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민을 위한 The Lord Calls My Name, Wounds and Forgiveness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