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목표는 더 나은 세상을 후대에 남기는 것!”
지구에 사는 모든 이에게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
2013년 3월 13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 교회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최초의 라틴 아메리카 출신 교황이자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은 가톨릭 교회의 최고 수장으로서 교황 즉위 후 10년 동안 세계 평화와 교회 일치 및 개혁을 위해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많은 사람을 만났으며, 다양한 연설과 담화를 발표했다. 이러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즉위 1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그간 그가 강조해 왔던 10가지 핵심 메시지를 정리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하는 희망의 기도》를 출간하게 되었다.
그동안 세상의 불합리한 부분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인류가 다양한 위기를 뛰어넘어 희망찬 미래로 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들어 보자. 교황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전하는 열 가지 요청을 살펴보면, 다가올 세계를 향해 어떻게 걸어 나가야 할지 알 수 있다. 그동안 눈을 감고 있던 현시대의 문제들을 이렇게 직시할 때 ‘희망의 순례자들’인 우리는 문제 해결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여러 주제와 관련된 우리 현실 진단에 상당히 많이 공감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작업을 시작하기만 하면 됩니다. 독일 시인 릴케는 새로운 일에 착수할 때 영감을 주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남겼습니다. “이제 눈으로 할 일은 끝났다. 이제 마음의 일을 시작하라. 네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그 일을.” 자, 이제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 열 가지 요청을 널리 알리는 일에 여러분도 저와 함께해 주시길 부탁합니다.
_ ‘들어가는 말’ 중에서
복잡한 현실을 마주하고
다가올 미래를 바라보는 희망의 여정
황폐해진 자연환경, 자유분방한 시장 중심 경제, 날마다 공동선에서 멀어지는 정치, 가장 취약한 이들을 점점 더 소외시키는 의료 시스템 등 현 인류 앞에는 갖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놓여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10주년을 기념하는 이 책에서는 인간이 벌인 세상의 모든 심각한 문제를 우리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고 전한다. 이 책은 총 10개 장으로 구성되어 학대 문화를 비롯하여 환경, 언론, 정치, 건강, 전쟁 문제를 다룰 뿐만 아니라 이주민과 난민, 여성 문제 등 교회 안에서 세상 끝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가 관심을 가져야 할 다양한 문제에 관해 짚고 넘어간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 인류가 한배를 타고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들을 반드시 해결해야 희망의 길로 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토록 전 세계적으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가득한 상황에서 왜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 수 있다. 이는 교황이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그가 종교와 국경의 경계를 넘어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도, 가난하고 존중받지 못하며 삶의 끝자락으로 밀려난 모든 이에게 진정성 있는 말과 행동으로 사랑과 평화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겸손하고도 열정적인 언행과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려는 의지는 한 사람이 보여 주는 작은 희망의 불꽃이 세상을 변화시킬 큰불을 반드시 일으키리라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하는 희망의 기도》에서 교황은 그동안 강조했던 열 가지 주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여러 가지 통계와 자료, 예술가나 사상가의 말을 인용할 뿐만 아니라 교회 교리와 역대 교황의 가르침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며 자신의 주장을 흥미롭고도 풍성하게 전개한다. 이를 통해 열 가지 요청에 담긴 이야기가 어렵고 나에게 상관없는 내용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점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미래를 향한 “희망의 순례자들”이 되길 빕니다. 아마 그 여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모든 실패와 성공은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인류는 자신이 물려받은 역사를 기억하고, 현재를 마주할 용기를 갖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키우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_본문 중에서
선한 의지를 지닌 모든 사람이
희망을 품고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아서
이 책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가톨릭 신자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언급한 요청 속에는 지난 10년간 지구에 사는 모든 이에게 그의 부탁이 닿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소외되고 배척받는 이들을 향한 위로와 애정을 포함해 정치 지도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사회 내 각자의 자리에서 실천해야 할 당부 역시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바라는 선한 의지를 지닌 모든 사람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건네는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옮긴 서울대교구 이재협 신부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사실은 우리 인류가 한 가족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성은 불화의 원인이 아니라 더 풍요로운 인류의 미래를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교황님은 우리에게 간곡히 전합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 만연한 비극을 초래한 이들도 인간이지만, 앞으로 맞이하게 될 미래, 새로운 세대가 살아갈 미래를 만들어 갈 힘을 지닌 이들 또한 우리 자신이라고 말이죠.”
이처럼 지구에 사는 모든 이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 이 순간에 희망을 품고 움직여야 한다. 우리에게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마주한 과제를 서둘러 해결하고 분명한 변화를 만들어 나갈 힘이 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전하는 열 가지 요청을 기억하며, 우리 모두 용기를 내어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청한다.
요한 바오로 1세 복자 교황님은 희망을 “모든 그리스도인이 의무적으로 견지해야 할 덕목”으로 정의했습니다. 저는 희망을 호소하는 이 아름다운 정의에 각 종교와 모든 신앙인의 경계를 초월해야 한다는 점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희망은 특정 종교에 대한 믿음 없이도 선의를 지닌 모든 이가 간직할 수 있는 덕목입니다.
_본문 중에서
책 속으로
우리는 “미성년자에 대한 성 학대의 상처는 안타깝지만 모든 문화와 사회의 역사 안에 만연한 현상이다.”라는 말을 하면서 이러한 범죄를 정당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교회 내 구성원에 의한 아동 학대는 단순히 끔찍한 범죄의 차원을 넘어 하느님께 해를 가하는 상처가 됩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범죄를 퇴치하고 발생한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동시에 겸허한 마음으로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어 그들의 치유 과정에 동행하는 일에도 집중해야 합니다. 나아가 교회라는 경계를 넘어 ‘돌봄의 문화’로 나아가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_20~21p. ‘1장 하느님의 이름으로, 교회 내에서 학대 문화가 근절되길 청합니다’ 중에서
지구는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탐욕의 시스템 아래서 살아왔습니다. 이 시스템은 수백만 인류를 삶의 끝자락으로 내몰았을 뿐 아니라, 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피해로 우리 공동의 집이자 어머니인 땅을 짓밟았습니다.
욕심과 탐욕에 기반한 사회 경제적 패러다임 또한 소비와 낭비의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을 약탈하는 문화에 협력했습니다. 오직 소수만을 위한 통제되지 않는 소비주의 문화에 대한 대가로 많은 이들이 변방으로 쫓겨났고, 자연환경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위협적인 공격이 이뤄졌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우리 공동의 집 지구를 보호하고 지킬 것을 청합니다. 모든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지만 지금이라도 즉시 필요한 행동을 시작한다면 우리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_39~40p. ‘2장 하느님의 이름으로, 우리 공동의 집을 보호할 것을 청합니다’ 중에서
우리 교회는 사회의 다른 모든 분야 또한 그러하듯 이 가상 공간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도록 초대받았습니다. 이 가상 세계가 아직은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있고 신비롭게 감춰져 있는 듯 보입니다. 밖으로 나가는 교회가 돼야 한다는 가르침은 이 가상 세계를 향해서도 발걸음을 내딛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디지털 세상은 우리 공동체와 가족이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비트bit로 구성된 환경 속에서도 그들을 만나러 다가갑시다. 이는 미사를 ‘틱톡’으로 생중계하거나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온라인에서 퍼뜨리기 위해 ‘밈’으로 만들자는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상 세계가 완전히 이질적인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한 새로운 언어를 찾을 수 있습니다. 복음이 전하는 “세상 끝까지”에는 이제 디지털 세상도 포함됩니다. 그곳에서도 우리는 가장 불행한 이들을 잊지 않으면서 자비, 애정, 기쁨을 전할 수 있습니다.
_74p. ‘3장 하느님의 이름으로, 거짓 뉴스에 맞서고 혐오의 악순환을 끊는 언론이 되길 청합니다’ 중에서
많은 사람이 정치인들에게 점점 거리감을 느끼는 현상 또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거리감을 느낄수록, 사람들은 정치인들이 시민들의 공동선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돌보는 데 더욱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정치인들이 고귀한 소명인 올바른 정치를 복구하기 위해 행동하길 촉구합니다. 올바른 정치에 대한 신용을 잃고, 자극적 선동이 계속되고, 올바른 토론 문화가 빈곤해지면, 사회의 여러 주역들 사이의 대화가 단절되는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날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양극화로 치달을 우려가 있습니다.
양극화 극복을 위해 우리가 가진 ‘해독제’는 무엇일까요? 대화, 대화, 언제나 대화입니다. 다른 사람을 알아가기 위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누군가를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가 기여할 수 있는 바를 볼 수 없습니다.
_86p. ‘4장 하느님의 이름으로, 공동선에 헌신하는 정치를 청합니다’ 중에서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가능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의지와 도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핵무기가 인류 생존에 가하는 위협을 생각하면 반드시 그 길을 찾아야 합니다.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일입니다. 대화, 존중, 신뢰보다 더 안전한 지름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습니다. 대화, 존중, 신뢰만이 인류의 평화롭고 형제애적 공존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런 종류의 무기 생산을 위해 계속해서 자원을 낭비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_117p. ‘5장 하느님의 이름으로, 전쟁의 광기를 멈추길 청합니다’ 중에서
더 나은 일자리, 더 나은 삶의 환경을 찾기 위해 떠나는 이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이들이 그저 살아남기 위해, 평화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도록 강요받습니다.
오늘날 이주민의 현실 안에는 헤로데 임금 통치 시기에 피난처를 찾기 위해 도망쳐야 했던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숫자나 통계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인 그들 각자의 얼굴에서 우리는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갇힌 예수님의 얼굴을 발견합니다(마태 25,31-46 참조). 저는 이주민들이 받아들여지기를 하느님의 이름으로 청합니다.
_125p. ‘6장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주민과 난민에게 문이 열리길 청합니다’ 중에서
저는 2013년 교황으로 가진 첫 기자 회견에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성모님이신 마리아는 사도들, 주교들, 사제들, 부제들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이 정의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유효하며, 우리가 어떻게 성모님의 그 높은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지 성찰할 것을 요청합니다. 곧 교회 내에서 보다 확실하게 여성을 위한 자리를 확대하는 동시에 여성들의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여성의 방식과 특성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그저 여성을 전시하고자 하는 유혹을 피해야 합니다.
여성의 섬세한 감각이 존중받아야 합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그 어떤 형태의 폭력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구타, 살해, 인신매매, 성 착취 및 노동 착취는 여성의 존엄에 위협을 가하고, 사회를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범죄입니다.
_152~153p. ‘7장 하느님의 이름으로, 사회 내에서 여성의 참여가 장려되고 촉진되길 청합니다’ 중에서
성경은 하느님께서 노아에게 인류가 사라질 위험을 피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방주에 오르라고 말씀하신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날 위험은 그 당시보다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전쟁, 전염병, 경제 위기와 환경 위기는 세상을 뒤흔드는 폭풍우 치는 바다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또한 이 위험은 우리를 기다리는 거대한 도전에 맞서기 위해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인 형제애의 배에 모두 함께 올라탈 것을 요청합니다. 과장 없이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형제애는 우리의 미래를 이끌 유일한 운송 수단입니다. 만약 우리가 미래를 원한다면 말이죠.
_218p. ‘10장 하느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조장하는 일에 하느님의 이름이 사용되지 않길 청합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