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사
‘서울대교구 설정 200주년 자료 총서’의 첫 발걸음
한국교회사연구소는 오는 2031년 서울대교구 설정 200주년을 맞아 교구사 집필에 필요한 기초 자료집을 발간하고자 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서울대교구의 역사는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이기에 자료 수집 및 연구의 범위를 가늠하기도 쉽지 않고, 처음 세운 계획대로 일을 진행해 나가는 데에도 전문 인력, 예산 등 여러 가지 변수로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그럼에도 꼭 해야 하는 작업이기에 우선 정리된 기초 자료를 중심으로 서울대교구 설정 200주년 자료들을 총서로 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책을 시작으로 연구소는 향후 교구사 집필을 위한 기초 자료집을 순차적으로 간행할 것입니다. 이번에 간행하는 『한기근 바오로 신부 서한집』은 그 자료 총서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기근(韓基根, 바오로) 신부님의 서한은 「뮈텔 문서」로 분류되어 있으며, 2012년 연구소에서 간행하는 월간지 『교회와 역사』에 「사목 서한으로 읽는 한국 교회사」라는 꼭지로 연재되었습니다. 사목 서한은 사목 활동을 하는 신부들이 지역 교회의 책임자인 주교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사목 서한의 사료적 가치는 본당 현황이나 사목 현장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해주며, 시대 상황과 성직자-신자 사이의 관계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이번 자료 총서는 이미 연재된 한기근 신부님 서한의 판독과 번역을 재검토하고 교회사 이해에 필요한 각주를 충실히 달았으며, 신부님이 남기신 「로마 여행일기」를 같이 묶었습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부록에 실은 윤선자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신부님의 여행기는 “비그리스도교 문화권인 한국 천주교회의 성직자가 기록한 첫 그리스도교 성지 순례기”입니다.
한기근 신부님은 페낭 신학교에서 유학하다 돌아와 부엉골과 용산 신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사제품을 받아 한국인으로서는 7번째 사제가 되셨습니다. 신부님은 하느님이 주신 재능을 그분의 뜻대로 잘 쓰신 분입니다. 외국어와 한문 실력이 그 누구보다 뛰어나셨기에 출판 사업을 담당하면서 4복음서의 온전한 번역서인 『사사성경』과 그림이 들어 있는 교리서인 『요리강령』, 또 개신교와의 교리 논쟁이 들어가 있는 『예수진교사패』 등 라틴어·프랑스어·한문 등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책으로 남기셨습니다.
이번 자료 총서는 서울대교구 설정 200주년 자료집이기도 하지만 근·현대 한국 교회사 연구에 필요한 자료입니다. 이를 계기로 서울대교구사의 집필에 꼭 필요한 한국 근·현대 천주교회사 연구가 더 활성화되기를 기대합니다.
한 권의 책을 낼 때마다 많은 분의 얼굴을 떠올리게 됩니다. 매일 연구소에 출근하시어 라틴어 서한을 번역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시는 김상균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연구소를 위해 큰 힘과 버팀목이 되어 주시는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님과 재단 이사장 손희송 주교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끝으로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연구소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힘을 모아주는 직원들과 연구소가 출간한 자료들을 읽고 연구하고 격려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재)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조한건 프란치스코 신부
글쓴이 : 한기근 신부
1868년 8월 4일(혹은 1867년 7월 12일) 경기도 양지에서 태어난 한기근 바오로 신부는 종현학당에서 공부하다가 1884년 2월 7일 말레이시아 페낭으로 유학을 떠났으나, 토혈증으로 12월 10일 귀국하고 말았다. 건강 회복 후 여주 부엉골 예수성심신학교에 들어가 공부하였고, 1887년 학교가 서울 용산으로 이전한 뒤에도 학업을 계속하였다. 1897년 12월 18일 약현 성당에서 뮈텔 주교에게 사제 서품을 받고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교수로 임명되었다.
1899~1900년에는 병인박해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 조사 청원자를 겸임하였고, 1902년 2월에는 황해도 황주(黃州) 본당 초대 주임이 되었다. 본당 사목 중에도 번역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사사성경』 간행에 큰 몫을 담당하였다. 이때 한글 띄어쓰기와 보조 부호 사용 원칙인 「우리말 띄어쓰기의 원칙」을 작성하였는데, 출판물에 띄어쓰기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당시 상황에서 이러한 연구는 국문학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성과였다.
1913년 5월 10일 경향잡지사 제3대 발행인 겸 성서 활판소를 담당하였고, 1925년 로마에서 거행된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79위 시복식에 성직자 대표로 참석한 뒤 이탈리아·프랑스·팔레스티나 성지를 순례하면서 「로마 여행일기」를 『경향잡지』에 연재하였다. 1937년 경향잡지사 발행인을 그만두고 성서활판소 일만 전념하다가 1939년 10월 21일 명동 성모병원에서 천식으로 선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