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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동안 책과 영화를 통한 선교 활동에 몸 바쳐 온 베네딕도회 임인덕 세바스티안 신부의 평전.



서슬 퍼런 유신 시대와 광주 민주화 운동을 겪으면서 이 땅의 신자들이 새로운 세상과 가치관에 눈뜨게 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매체를 동원해 하느님 말씀을 전파하고자 그는 두려움 없이 나아갔다. 벽안의 노신부가 들려주는 희망과 자유의 메시지, 그리고 그의 열정 어린 생애에 귀 기울여 보자.




‘하인리히’에서 ‘세바스티안’으로,

그리고 다시 ‘임인덕’으로 변모해 가는

어느 독일인 신부의 로드무비 반세기!




1966월 7월의 어느 날 푸른 눈의 독일 청년이 인천항에 내렸다.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주변을 둘러보던 청년은 잠시 후 허기를 느낀 듯 자그마한 식당으로 들어간다. 불쑥 등장한 외국인을 보고 식당 주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데, 이에 아랑곳없이 청년은 호기 있게 “라이스!” 하고 외친다. 그러자 주인은 용케도 알아듣고 불고기 백반을 청년 앞에 내왔다. 청년은 망설임 없이 수저를 사용해 불고기 백반을 입속에 밀어 넣기 시작한다. 오호라, 맛이 괜찮은 모양이다. 이내 밥그릇을 말끔히 비우더니 청년은 꽤 흡족한 얼굴이 되었다.



하인리히 세바스티안 로틀러. 그는 이제 막 한국에 도착한 독일인 신부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본 한국 음식이 이토록 꿀맛이니 앞으로 펼쳐질 선교사로서의 삶도 이 밥맛만  같기를 기도하고 있는 참이다. 그로부터 46년을 그는 이 땅에서 임인덕 신부로 살았다. 고향과 가족을 떠나 지구 건너편 한국의 소읍 왜관에 살면서 매 순간순간 자신을 부르시는 주님의 소리에 응답했다. 그의 몸과 마음을 도구 삼아 그분이 이 땅에서 이루려 한 것은 정녕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인터뷰 전문작가 권은정이 수개월에 걸쳐 임인덕 신부와 주변 인물을 인터뷰하고 자료를 조사하여 임 신부의 삶과 인품을 재구성해 낸 평전이다. 사실 임인덕 신부는 평전을 쓰기 몹시 힘든 상대였다. 자기 자신에 대해 무엇이든 죄다 털어놓아도 모자랄 판에 그는 자기 자랑처럼 비치는 이야기는 좀처럼 하려 들지 않았다. 자기가 이런 책의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을 끝까지 마뜩지 않아 했다.



저자는 수차례 임 세바스티안 신부의 육성을 들으며 그의 꿈과 뜻을 가늠했고, 남겨진 기록과 자료를 들추며 그가 한 일을 추적했고, 그를 아는 많은 사람의 기억을 좇아 그의 삶과 인품을 재구성하려 애썼다. 그러나 기록은 드러난 사실의 기록일 뿐이라는 한계가 있었고, 세인들의 기억과 평판은 그들의 눈으로 해석된 것이라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었으며, 임 신부는 자신의 ‘공’과 ‘덕’을 드러내는 일에 끝까지 인색하고 무심했다.



임 신부에 대한 기억은 결국 기억하는 이들의 의식에 투영된 임 신부일 뿐, 임 신부 스스로가 생각하는 임 신부는 아닐 터이다. 게다가 자신도 모르는 임 신부의 참모습, 그 깊숙한 심연에 자리한 내면의 자아는 어차피 우리 모두에게 수수께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수십 년을 임 신부와 더불어 살고 있는 수도 형제들과, 함께 일한 동료들은 그에 대해 ‘뭔가’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 ‘뭔가’는 사랑이 깊을수록 더 잘 보였고, 사람들마다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외적 ‘성취’만으로 임 신부를 재단하려는 사람들의 인상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교회와 사회에 기여한 업적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풍요로운 것이었으나, 드러난 것을 통해 드러나지 않은 것을 볼 줄 아는 혜안 없이는 임 신부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피하기 어렵다. 온전한 그림이야 어차피 사람의 몫이 아닐 터이다.


 


임인덕 신부, 독일 이름 하인리히 세바스티안 로틀러.



그는 1935년 9월 22일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의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요제프는 철도청 전기 기술자였는데 성미가 대쪽 같았다. 엄혹한 나치 치하에서도 입 바른 소리를 곧잘 해서 아내의 가슴을 졸이게 만들더니 급기야 작은 마을로 좌천되어 간 덕분에 하인리히와 형제들은 아름다운 시골 마을에서 유년을 보냈다. 독실한 신자였던 양친은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아이들에게 신앙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다만 행동으로 보여 주며 하느님이 늘 함께하고 계심을 일깨워 줄 뿐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수업 시간에 당시 나치 총통 히틀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어린 하인리히는 평소 아버지에게서 듣던 말을 그대로 옮겨 “히틀러는 전쟁을 일으킨 나쁜 놈, 깡패”라고 말하는 바람에 선생과 부모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부모에게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신부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대학에 입학한 다음 우연히 베네딕도회 사제를 만난 뒤로는 선교사로 활동하는 수도 사제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다. 전후 독일의 젊은이들은 스스로 변화와 혁신의 주체가 되어 제3세계로 진출을 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아프리카나 남미, 아시아에 있는 가난한 나라로 가서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고자 했다.



하인리히는 ‘안으로는 수도자, 밖으로는 선교사’라는 정신을 따르는 베네딕도회가 자신에게 맞춤한 것 같았다. 그의 남동생 빌리마저 선교사가 되어 아프리카로 떠나게 되는 바람에 가족들은 큰 이별의 아픔을 감수해야 했다.



하인리히는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성 베네딕도회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에 입회하여 세바스티안이라는 수도명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수련기 시절, 한국에 파견되었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독일로 송환된 선배 사제를 만나면서 한국을 알게 되었고, 이후 대학 시절에 만난 한국 유학생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받아 마침내 당시로서는 아직 무지의 땅이자 미지의 나라였던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다. 1965년 4월 사제서품을 받은 하인리히는 그해 가을 가족의 눈물을 뒤로 한 채 선교 활동의 여정에 오른다. 우선 미국에서 약 1년간 영어를 공부한 다음, 1966년 7월 인천과 부산항을 거쳐 마침내 한국에 입국하여 왜관수도원에 도착한다.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넘었어도 한국은 여전히 가난한 나라였다. 그는 현지 적응이라는 선교사의 기본 덕목에 충실하여 처음부터 잘 먹고 잘 잤다.

도착하자마자 2년은 서울 정동에서 한국말을 공부했다. 그때 ‘우니타스’라는 모임을 통해 한국 젊은이들과 만나 한국 사회의 실정에 처음 눈뜨게 된다.



성주본당과 점촌본당에서 1년 남짓 본당 사목을 경험하면서 착하고 가난한 한국의 신자들을 만난다. 하지만 임 신부의 본당 사목 기간은 그것이 전부였다. 1969년 11월 이후로는 마오로 기숙사 사감을 지내다가 1971년부터 분도출판사를 맡으면서 그의 사목 활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그는 1971년부터 1993년까지 20여 년간 분도출판사 사장신부로 일하면서 400여 종의 책을 출간했다. 책을 만드는 임 신부의 마음가짐은 단순했다. 사람을 선한 방향으로 인도하는 책,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 주는 책을 만들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당시는 암울한 70년대였다. 시대의 징표를 읽어 나가겠노라 천명하며 출간하기 시작한 책들은 당시 정부를 불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성난 70년대』를 필두로 『현실에 도전하는 성서』, 『정의에 목마른 소리』로 이어지는 70년대 대표 도서들은 당시 한국 사회에 새로운 시각과 문제의식을 제기했으며, 1977년 출간된 『해방신학』에 이르러 정점을 찍는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즈의 『해방신학』은 당시 이 나라의 학생과 지식인들의 사회의식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가난한 민중이 스스로 일하여 빵을 만들게 하자는 내용이 담긴 책이었지만, 정부에서는 이 책을 공산주의 사상을 선동하는 책으로 여겨 전량 폐기하도록 종용했고, 임 신부는 책을 모두 수도원 다락방에 숨겨 놓고 비밀리에 전국으로 유통시켰다. 그렇다고 임 신부가 시대상을 반영하는 책만 펴낸 것은 아니다. 신자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분도소책’ 시리즈를 기획했고, 『꽃들에게 희망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 등으로 대표되는 ‘분도우화’ 시리즈와 이해인 수녀의 시집은 일반 독자들의 열렬한 반향을 이끌어 냈다.



아울러 신학과 성경 관련 서적 출간도 면면히 이어졌다. 스힐레벡스, 그닐카, 슈나켄부르크, 로핑크, 예레미아스, 라너 같은 신학자들의 책을 우리말로 옮겨 펴냄으로써 이 땅의 신학생들이 학문의 단비를 흠뻑 맛보게 해 주었고, 오랜 시간 유수한 성서학자들과 고민하고 노력한 끝에 그리스어 원전에서 최초로 성경을 번역하여 『200주년 신약성서』라는 노작을 세상에 선보였다.

신학 책 출간에 대한 임 신부의 열정과 집념은 ‘신학 총서’, ‘아시아 신학 총서’, ‘사목 총서’, ‘종교학 총서’, ‘교부 문헌 총서’를 발간함으로써 꽃을 피웠다.











1. 오, 나의 하인리히

아버지는 나치가 싫었다│밀텐베르크 시절│꼬마 하인리히│죽어도 할 말은 한다│저 사람, 깡패잖아요│알렉시오 아저씨│뻐꾸기 날아간다│김나지움│율리우스 되프너 주교│뷔르츠부르크 대학│어머니의 눈물




2. 선교사를 꿈꾸며

수도생활│사제서품│첫 미사│세바스티안도 가고, 빌리도 가고│미국에 잠시 들러│워싱턴 베어 호│인천에 들러│한국말 공부│우니타스




3. 본당과 기숙사

성주본당│점촌본당│두봉 주교│마오로 기숙사




4. 책 속에 혼을 담아

책을 만드시오│성난 70년대, 현실에 도전하다│분도소책│정의에 목마른 소리│영업의 선봉에 서다│200주년 신약성서│한국 사회에 아파하다│해방신학│위험한 출판사│한스 큉│김지하│분도우화│이해인 신드롬│신학에의 초대│총서의 시대│만남과 헤어짐, 김윤주와 정한교│소소한 변화│오르비스 북스│친절한 사장신부




5. 영화도 복음이다

영화로 사목하기│첫 상영│「우리의 생활」│사진작가 최민식│바우어 영사기│안동 영화 클럽│권정생│캠퍼스의 숨바꼭질│임 신부의 영사기는 쉬지 않는다│허창수 신부




6. ‘나쁜’ 수도자

교통사고│빌리 신부│삼청동공소│왜관의 기적│모든 손님을 그리스도처럼│거룩한 고집│



▪에필로그

▪작가의 말

▪임인덕 신부 연보

▪화보


글쓴이 : 권은정



저술가, 번역가, 전문 인터뷰어. 대학과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영국과 독일에서 한국 언론사의 현지 통신원을 지냈다. 저서로는 『젠틀맨 만들기』, 『그 사람이 아름답다』, 『아름다운 왕따들』, 『착한 기업 이야기』가 있고, 가톨릭 관련 번역서로는 『상처 입은 관계의 치유』, 『붉은 새의 선물』, 『삶의 대화』, 『시몬느 베이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