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Charles de Foucauld, mon frère: Rencontres à thèmes
2022년 5월 15일 샤를 드 푸코(1858-1916)의 시성(諡聖)을 맞아 나온 이 선집은 그가 남긴 영적 기록과 편지를 겸손, 자비, 광야, 고독, 노동 등 열다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소개한다.
그로써 샤를의 정신과 그 마음의 약동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독자들은 여기 모아 놓은 글 속에서 그의 큰 특징인 불꽃 같은 사도적 열정을 암시하는 수많은 구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추천의 글>
“이 책에 소개된 샤를 드 푸코 성인의 글과 묵상과 기도는 그분이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동화되어 열정적으로 사셨는지를 아무 꾸밈이나 치장 없이 날것으로 보여 준다.”
_강우일 주교
예수의 작은 형제 샤를 드 푸코(1858-1916)의
시성(諡聖)을 맞아 나온 소박한 선집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을 사랑하길 원한다고 하는 신자는
부조리한 것을 꿈꾸는 셈입니다.”
_본문 중에서
샤를 드 푸코는 프랑스의 한 독실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오직 이성만을 좇아 신앙을 잃고 방황하다가, ‘나자렛 예수의 삶’에서, 곧 나자렛의 한 가난한 목수가 삼십 년 동안 이름 없이 살아간 삶에서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고, 그 삶을 따르고자 사하라사막으로 들어간 인물이다. 그는 이렇게 밝힌다. “‘세상에 불을 지르고’,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따르고 본받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가장 완벽한 곳, 복음적 완덕에 가장 적합한 곳, 성령의 영감과 가장 일치하는 곳, 예수님 자신이 가시리라고 생각되는 곳이리라. ‘가장 길 잃은 양’, 예수님의 ‘가장 병든 형제’, 제일 버림받은 이들, 목자를 제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가야 한다. … 북아프리카의 변방으로 가야 한다.”
샤를 드 푸코의 시성을 맞아 나온 이 작은 선집은 그가 남긴 영적 기록과 편지를 겸손, 사랑, 자비, 광야, 고독, 노동, 구원 등 그가 천착한 열다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소개한다. 그로써 샤를의 정신과 그 마음의 약동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독자들은 여기 모아 놓은 글 속에서 그의 큰 특징인 불꽃 같은 사도적 열정을 보여 주는 수많은 구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사상이 그의 생애와 더불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그 과정을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독자들은 이 책의 끝에 이르러 그가 뛰어난 수도승일 뿐 아니라, 불완전한 면도 함께 지닌 인물임을 알게 될 것이고, 이에 아주 인간적이며 친근한 ‘만인의 형제’를, ‘예수의 샤를 형제’를 만나게 될 것이다.
다만, 이 선집은 샤를 드 푸코의 문체와 우리 시대의 문화 사이에 가로놓인 간극을 인정하고, 오늘날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그의 글을 조금 다듬었다. 그의 문체에서 흔히 보이는 반복적 표현을 피하면서, 원문을 조금 가볍게 만들었다. 이는 다만 그가 살아간 생애와 보여 준 직관에 대해 독자들이 더 수월하게 다가가게 하려는 의도이며, 그의 글을 있는 그대로 접하고자 한다면 각주에 꼼꼼히 표기되어 있는 원문을 참조하기를 권유한다. 샤를 드 푸코의 시성을 맞은 이때, 그가 바친 ‘의탁의 기도’는 다시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아버지, 이 몸 당신께 바치오니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저를 어떻게 하시든지 감사드릴 뿐, 저는 무엇에나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들이겠습니다.”
<책 속에서>
예수님을 본받아 생각에서 겸손하자. 우리 자신이 가난한 죄인임을 인정하자. 끝자리에 머물면서 말과 행동에서 겸손하자. 겸손은 진리이니, 겸손으로 우리 신랑이신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자! 사랑하는 우리 주님이 그토록 깊이 받아들인 비천함 속으로 사라지자. 그분처럼 끝자리에 머물자. 노동자의 자리에, 섬기러 오신 마리아의 아들의 자리에 머물자. 우리 스스로 가장 작은 이, 가장 낮은 이가 되자. 끝자리에 머물면서,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뜻이 불러올 모든 모욕을 사랑으로 행복하게 껴안자. (31쪽)
토착민을 어떻게 동등한 형제로 대할까? 그들이 나에게 다가오게 하자. 특히 군인들을 고용하지 않도록 하자. 군인들은 그들을 나에게서 멀어지게 할 뿐이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시간 내기를 아까워하지 말자. 그들과 접촉하거나 그들의 옷에 닿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들의 불결함이나 이를 두려워하지 말자. 이가 내 몸에 옮으면 제의에 옮겨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털어 낼 것.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친밀하게 사셨듯이 토착민들과 친밀한 관계 안에서 살 것. 무엇보다도 그들 안에서 언제나 예수님을 보자. 그들을 다만 평등과 우애로써 대할 뿐 아니라, 나의 신앙이 요구하는 겸손과 존중과 사랑과 헌신으로 대할 것. (84-85쪽)
하느님의 은총을 받으려면 광야를 지나야 하고 거기 머물러야 합니다. 우리는 광야에서 비로소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이 아닌 것을 모두 자신에게서 털어 냅니다. 오직 하느님께 온전히 자리를 내드리기 위해 우리 영혼이라는 작은 집을 완전히 비우게 되는 거지요. 히브리인들도 광야를 지났고, 모세도 사명을 받기 전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성 바오로도 다마스쿠스 체험 이후 아라비아로 가서 삼 년 동안 지냈고, 성 히에로니무스와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도 광야에서 활동 준비를 했습니다. 광야는 필수적인 것이며, 은총의 때입니다. 광야는 열매를 맺기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할 기간입니다. … 하느님은 이 고독 속에서, 당신과 단둘이 사는 이 삶 속에서, 당신과 일치를 이루며 홀로 살고자 모든 피조물을 잊는 이 영혼의 깊은 잠심 속에서, 당신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드리는 영혼에게 당신 자신을 다 주십니다. (166-167쪽)
추천의 글
서문
이 책에 대하여
복자 샤를 드 푸코(1858-1916)
겸손
아름다움
기쁨
하나인 사랑
형제
자비
기도
신심
십자가의 길
성체성사
나자렛
광야
고독
노동
구원
결론을 갈음하여
출간 후기
의탁의 기도
인용 도서
글쓴이 : 샤를 드 푸코(Charles de foucauld)
1858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한 독실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여섯 살이 채 되기도 전에 몇 개월 사이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잃고 고아로 자라고, 사춘기를 지나며 신앙을 잃는다. 1876년, 생시르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간 뒤, 아프리카 알제리와 튀니지로 파병되어 복무하다가 군을 떠나고, 당시 유럽인에게 금지된 땅인 모로코를 2년 동안 탐험한다. 1886년, 그곳에서 사막의 고독과 무슬림의 신앙에 깊은 감명을 받고 파리로 돌아온 그는 하느님의 존재를 물으며 거듭 기도를 바친 끝에 결국 회심한다.
그때부터 그는 온 삶을 하느님께 바친다. 예루살렘 성지로 순례를 떠난 그는 ‘나자렛 예수’의 삶, 곧 가난한 일꾼의 삶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깨닫는다. 1890년, 트라피스트회에 들어가 수도승 생활을 시작하고, 1897년에는 나자렛 클라라회에 이름 없는 일꾼으로 들어가 숨어 산다. 1901년, 그는 사제 서품을 받고 알제리 사하라사막으로 떠나 유목민들 가운데서 그들의 친구요 형제로 살아가다, 1916년 그의 은수처에 갑작스레 들이닥친 강도들에게 살해당한다.
옮긴이: 조안나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리옹 가톨릭대학교 부설 종교학 사목 연구소에서 기초 신학 과정을 마쳤다. 현재 번역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하느님의 오두막집』, 『지하철을 타신 하느님』, 『사하라의 불꽃』, 『당신의 잔 속에 담긴 희망』, 『평화 안에 머물러라』, 『성령 안에 머물러라』, 『그곳에 빛이 있었다』, 『깊고 다정한 만남』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