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문헌으로 알아보는
가톨릭교회 성경 해석의 고유한 특징"
책 세계에서 부동의 베스트셀러는 성경이다. 해마다 다양한 성경 번역본과 관련 문헌이 쏟아지고 있다. 일반인에게 성경은 인류의 최고 지혜가 담긴 고전이지만,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에서는 근본 가르침을 담은 경전이다. 하지만 막상 성경을 읽으려 하면 워낙 고대 세계에서 만들어진 문헌이라 그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또 하느님의 계시라는 종교적 믿음 속에서 생성된 문헌이기에 그 특유의 표현과 의미를 파악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성경을 경전으로 삼는 종파마다 경전으로 인정하는 성경의 권수도 다르고 접근법과 해석의 관점도 상이하다. 그래서 성경을 그냥 읽다 보면 의미를 놓치거나 읽을 의욕을 잃는 경우가 잦다.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가톨릭교회는 처음부터 성경(현재의 구약성경)을 존중하고 보존하며 그 빛 속에서 새로운 성경(신약성경)을 결정하여 지켜왔다. 성경은 교회 생활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든든한 토대가 되어왔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가톨릭교회에서 성경은 마치 너무 귀해 금고에 깊이 넣어둔 보화처럼 읽힐 기회가 적었다. 그러다 20세기 중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가톨릭교회는 성경을 신자들에게 전면적으로 개방하고 교회의 모든 영역에서 탄탄한 바탕이요 기준으로 삼았다. 그 뒤 가톨릭교회에서 성경 공부와 연구, 사도직 활동은 폭발적으로 활성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가톨릭교회 나름의 원칙이 있는가?’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있다면, 그 원칙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지 않은 이들이나 성경을 일부 공유하는 유다교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공유하며 성경의 대부분을 함께 존중하는 개신교와는 또 어떤 차이를 보이는가? 이런 물음들은 가톨릭 신자들을 포함하여 성경을 진지하게 읽고자 하는 이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통찰을 열어줄 수 있다.
가톨릭교회에서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성서학자 안소근 수녀는 이런 물음에 응답하기 위해 교황청 성서위원회 문헌 <교회 안의 성서 해석>(1993)에 뒤이어 발표된 여러 교도권 문헌에서 가톨릭 성경 해석의 특징을 찾아가고자 한다. 그래서 근래의 문헌인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주님의 말씀>(2010)과 교황청 성서위원회에서 내놓은 <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2001), <성경과 도덕>(2008), <성경의 영감과 진리>(2014)를 중심으로, 가톨릭교회 성경 해석의 기본 전제들을 다시 확인하고 여기에서 나오는 결과들을 짚어본다.
이 책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성경 본문들의 뜻을 올바로 알아내기 위해서는 전체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과 신앙의 유비뿐만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성경 전체의 내용과 일체성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살아 있는 전통’, ‘신앙의 유비’, ‘성경 전체의 일체성’ 등의 표현이 어렵게 다가온다. 사실 어느 것이든 종교 기관의 공식 문헌을 읽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 종교의 기본 정신을 기반으로 한 특유의 표현들이 건조한 문체로 압축해서 담겨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딱딱한 종교 문헌을 읽을 때에는 해당 문헌의 핵심을 짚어주고 찾아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유능한 길잡이가 큰 도움을 준다.
교회 문헌을 읽는 일은 일종의 ‘난코스’ 탐험이다. 하지만 힘들고 어려워도 유능한 가이드와 함께한다면 그 코스에만 있는 특유의 전망을 접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남다른 기쁨과 보람을 거두며 몸과 정신을 단련할 수 있다. 뛰어난 안내인이 이끄는 이 책은 이천 년 이어온 가톨릭교회의 성경 해석 정신을 밝히고 실제 예를 다양하게 담은 교회 문헌 네 권을 풀어 소개한다. 그 여정에서 독자는 폭넓은 통찰과 함께, 마치 딱딱한 게 껍질을 벗기고 부드러운 속살을 맛보듯 궁금해하던 성경의 어려운 구절들까지 새롭게 보게 되는 기쁨을 얻을 것이다.
책 속에서
근대의 성경 연구는, 인간 저자의 말을 이해하는 데에 치중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계시 헌장> 12항에서 말한 뒷부분, 곧 “성령을 통해 쓰인 성경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는 점을 놓치는 경우가 없지 않았습니다. _10쪽
성경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신자들 사이의 거리가 멀어질 때, 신자들의 성경 독서는 기초가 흔들릴 위험이 있습니다.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다 보면 기준점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말씀>은 이러한 거리를 극복하려 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지금도 교회 공동체 안에 ‘살아 있음’(히브 4,12 참조)을 확인하려 합니다. _21-22쪽
그리스도의 육화 이전에 창조와 구약의 역사를 통해서도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에게 들려온다는 점은 <계시 헌장>과 <말씀>에서 똑같이 드러나지만, 그 말씀이 바로 한처음에 계셨고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며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강조하는 것은 <말씀>의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여기에서는 창조 안에서, 또 구약의 역사 안에서 인간을 향하신 그 하느님의 말씀이 바로 마지막 때에 사람이 되신 그 말씀임을 분명하게 강조합니다. _28쪽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후에 베네딕토 16세)은 <유다 민족>의 머리말에서 유다인 학살을 기억하며, “그리스도인들은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들이 이스라엘 성경의 합법적 상속자라고 아무 문제 없이 주장할 수 있는가? 곧 그리스도인들은 이 성경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해석을 계속해서 내놓을 권리가 있는가, 아니면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에 비추어 월권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주장을 존경과 겸손으로 철회하여야 하는가”라고 묻습니다. … 사실 사람들은 유다인들이 자신들의 성경을 이해하지 못해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쉽게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유다인들의 구약 해석은 틀렸고 그리스도인들만이 구약성경을 올바로 알아듣는다는 것입니다. 어떻든, 그러한 시각은 유다인들에 대한 배척으로 쉽게 연결됩니다. _75-76쪽
현대인들은 성경에 들어 있는 계명들을 보면서 두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계명들이 인간을 얽어매는 속박이 아닌가 하는 질문입니다. … 두 번째 질문은, 설령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성경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실천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해도, 성경이 과연 지금 우리 시대에 알맞은 삶의 지침을 제시해줄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 성경은 분명 이러한 현대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성경이 삶의 규범으로서 가치를 보전할 수 있을까요? 내 삶에서 만나게 되는 복잡다단한 순간들에, 그 ‘낡은’ 성경은 과연 어떤 가르침을 줄 수 있을까요? _132쪽
성경이 ‘진리’를 담고 있다고 말하는데, 이런 본문들은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까요? … 교황청 성서위원회는 이러한 요청에 응답하여 관련된 여러 문제를 논의했고, 2014년에 <성경의 영감과 진리>(이하 <영감>)를 발표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성경의 성격과 교회의 삶을 위한 성경의 의미에 아주 훌륭하게 응답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서론 1항)이었습니다. _192쪽
“성령을 통해 쓰인 성경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하기 때문에, 성경 본문들의 뜻을 올바로 알아내기 위해서는 전체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과 신앙의 유비뿐만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성경 전체의 내용과 일체성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읽어온 문헌들은, 여러 방법으로 이 원칙들을 성경 해석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_2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