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무 시인의 시집 『즐거운 소란』이 시작시인선 0409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충남 부여 출생으로 1983년 『삶의 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섣달그믐』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시간의 그물』 『슬픔은 어깨로 운다』 『데스밸리에서 죽다』 등 12권의 시집과 『생의 변방에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 『집착으로부터의 도피』 『쉼표처럼 살고 싶다』 등 산문집 4권, 이 밖에도 연시집 『누군가 나를 울고 있다면』, 시선집 『길 위의 식사』 『얼굴』, 시평집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등을 저술한 바 있다. 문단으로부터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아 윤동주문학대상, 소월시문학상, 난고문학상, 편운문학상, 풀꽃문학상, 송수권시문학상, 유심작품상, 이육사문학상 등을 수상하면서 한국의 대표 서정 시인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시집 『즐거운 소란』에서 시인은 자연을 시의 소재로 빈번하게 사용하고, 묘사를 시의 중심 기법으로 구사하며, 일인칭 화자의 독백을 통해 시를 전개해 나간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서정시의 면모를 나타내지만, 그의 시는 기존의 서정시와는 완연히 다른 톤과 색깔을 지닌다. 부드럽고 완곡하며, 애상적이고 낭만적인 정서와 어법 등 서정시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특징들을 이재무의 시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나무와 꽃, 강과 호수, 강우와 강설과 계절의 변화 등 서정시에서 오랫동안 이어진 소재들을 시적 소재로 삼지만, 그의 시는 강인하고 우렁차며, 활기차고 현실지향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시인은 서정시에 대한 재래적 관념을 완전히 전복시켜 놓는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의 시를 기존의 독법으로 편안하게 읽는 한편 낯선 감각과 사유의 깊이를 만끽하게 된다. 그가 서정시의 오랜 부락에서 개척해 낸 영토는 무엇보다도 자연이라는 소재와 현실적인 삶의 가치들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킨 점에 있으며, 그는 그것을 시적 묘사를 통해 이루어 내고 있다. 해설을 쓴 고형진(고려대교수, 문학평론가)은 이번 시집에 대해 “무명화된 소재를 계산된 언어보다는 온몸으로 밀고 나가 독자들에게 시적 체험의 전율을 온몸으로 전해” 주며, “서정시의 교범을 우직하게 따르면서 말의 기교가 아니라 감정과 체험의 진정성으로 시와 정면 승부하”여 “부드럽고 유약한 감성으로 세상 저편의 세계를 노래하는 것으로만 여겼던 서정시”를 “현실적 삶의 리얼리티”와 “시인의 시적 체험”을 통해 “묵직한 감동”으로 변모하게끔 한다고 평했다. 아울러 추천사를 쓴 나태주 시인은 “인생과 자연에 대한 본질을 무섭도록 날카롭게 파헤쳐 그것을 시로 현현顯現해 보여 주고 있”으며, “오늘날 우리 시단에서 이렇게 솔직담백, 명쾌, 단순하게 시를 쓰는 시인은 이재무 한 사람밖에 없지 싶다.”라고 평했다.
이재무 시인은 오랜 시간 한국 서정시의 중심에 서서 일상의 경험적 진실성을 서정의 세계로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개결한 문채로 삶의 진솔한 모습과 세계에 대한 근원적 이치를 꿰뚫는 통찰력을 보여 왔다. 그의 시는 어렵게 에둘러 가지 않고 담백하고 담담하게 독자들에게 다가선다는 데 큰 매력이 있다. 더불어 성찰적 자기 고백의 형식을 통해 생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맑고 투명한 언어로 드러냄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근원적 존재에 대한 성찰을 수행하게끔 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처절한 자기반성과 치열한 운명 갱신 의지가 깃들어 있는 이번 시집을 통해 우리는 삶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시인의 소망을 읽어 낼 수 있다. 세속적·물질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존재의 본질에 천착하려는 시인의 시적 태동胎動은 깊은 울림과 함께 진한 여운을 남긴다. 생의 실존과 존재의 성화에 대해 감각적이고도 구체적 형상으로 노래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존재의 구원 가능성과 삶에 대한 예지叡智로 충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