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평화신문」 기자로 일하며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은이가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 양육하는 과정에서 갖게 된 생각, 느낌, 행동을 기록한 일기다.
이 책은 새로운 생명이 자기 몸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느낀 순간부터 출산, 양육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3부로 엮었다. 1부‘안녕 평화야, 엄마 아빠에게 와줘서 고마워’에서는 임신한 순간부터 엄마라는 새로운 세상의 눈으로 보고 느끼고 깨달은 이야기를, 2부‘나는 바깥양반 남편은 안사람’에서는 육아휴직을 한 남편과 엄마이며 직장인으로 살아가며 체험한 이야기를, 3부‘토닥토닥, 참 수고했다’에서는 성장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을, 그리고 아이를 통해 새롭게 바라본 자신의 모습을 생생하고 진솔하게 담고 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생명의 소중함과 그 생명을 지키는 울타리인 가정 공동체가 처한 현실적 어려움이 고스란히 손에 잡힌다. 그리고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과 그 안에서 신비하게 작용하는 하느님의 사랑, 은총에 대한 감사함이 따듯하게 마음을 어루만진다. 이 과정을 겪어온 엄마들, 현재 치열하게 이 과정을 겪고 있을 엄마들, 그리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예비 엄마들에게 공감과 이해, 위로가 되는 에세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런 사랑을 받았고 주어야 하는 귀하고 신비한 존재라는 자긍심을 갖게 하는 책이다.
모성을 통해 만난 하느님 사랑
“하느님은 어쩜 이리도 예쁜 아기를 만들어 주셨을까. 세상에 소중한 건 다 공짜다. 남편이 선물처럼 내게 주어졌듯이 평화도 우리에게 선물처럼 뚝 떨어졌으니, 평화의 일용할 양식인 모유 역시 공짜로 샘솟고 있으니 말이다.”
_48쪽
“아기를 키울 수 있는 건 부모에게 주어진 은총이라고 했다. 한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을 이렇게 처음부터 볼 수 있는 게 기쁘면서도 감사하다. 물론 하루 중 많은 시간이 힘들고 버거워 투정을 부리는 일이 많지만.”
_102쪽
“인간으로서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의 신비를 경험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일뿐이었다. 엄마가 되고 나서 알았다, 내가 새로운 삶에 초대받았다는 사실을. 내게 닥친 이 새로운 삶은 내게 더 사랑할 것을 끊임없이 요청했다. 내가 더 사랑해야 자유로워질 수 있는 세계 였다. 많이 퍼주어야 그만큼 더 많이 차오르는 모유처럼…. 엄마가 되고 나서 나는 또 알았다, 자식에 대한 엄마의 사랑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잃어버리고도 더 주지 못해 애가 타는 밑도 끝도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_117쪽
“육아휴직 중인 남편을 유치원 엄마들 단톡방에 초대했다. ‘제가 복직하고 지성이 아빠가 전적으로 육아를 담당하게 됐어요. 저랑 연락이 안 될 때 급하게 물어볼 게 있을까 싶어 방에 초대했습니다. 잘 부탁해요.’ ‘지성 아버님! 은하수반 단톡방에 오심을 환영해요. 복직한 지성 어머님, 육아의 지성 아버님 모두 파이팅입니다.’ 이렇게 짜릿하고 흐뭇한 순간이 있을까.”
_126쪽
엄마가 되어가며 세상을 향해 열린 눈
“내가 생명을 품고 보니,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새롭게 보인다. 몸이 가벼웠던 시절, 지하철에서 살 부딪힐 정도의 거리에 있는 이웃과 단절한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디지털 세상에서만 시간을 보내던 나를 돌아보게 된다.”
_25쪽
“왜 아빠의 출근은 ‘일상’인데, 엄마의 출근에는 ‘일 욕심’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을까.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은 아빠의 성공은 가족적 가치가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른 엄마의 성공은 여전히 ‘독한 욕심’으로 읽힌다. 일하는 엄마는 워킹 맘이지만 일하는 아빠는 그냥 직장인이다.”
_133쪽
“‘낙태의 비범죄화’, ‘낙태죄 전면 폐지’가 흔한 구호로 거리에 나뒹구는 시절이다. 낙태 자유화를 향한 구호는 어느 때나 있었다. 임신과 출산, 모유수유, 양육 그리고 가사 노동 등 줄줄이 따라오는, 한 생명을 길러내기 위해 헌신하는 일들이 여성에게만 온전히 기울지 않았다면, 남성에게도 적절히 자연스럽게 분배된 과업이었다면 모체에서 생명을 잃는 태아는 그리 많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남성의 일이었다면 진작에 국가의 일이 되었겠지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인지.”
_242-243쪽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갈 데가 있어서 층간소음을 안 만드는 일’과 ‘갈 곳이 없어 층간소음을 만드는 일’에 대해 생각해 봤다. 코로나 시대의 층간소음이 갈 곳이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나뉘는 일이었나. … 우리 집의 조용한 기본값과 아이 없이 부부 둘이서 사는 그 집의 조용한 기본값은 애당초 그 값이 다른 거였다.”
_256-257쪽
아이를 통해 만난 자신과 자아 성숙
“수만 번 도마 위에 칼질하고, 수만 번 국수를 삶고, 수만 번 쌀을 씻고 밥을 안친 엄마. 부엌은 왜 늘 엄마가 있어야 하는 당연한 곳이라고 생각했을까. 엄마가 되어 부엌에 서보니 엄마의 마음이 내 안에 출렁인다.”
_103쪽
“내 목소리 톤이 굵고 낮아졌다. 엄마의 변명, ‘절대 화는 내지 않았다. 다만 웃지 않았을 뿐.’ 그런데 첫째가 운다. ‘예쁘게 말해야지, 왜 화를 내? 엄마 때문에 힘들어서 같이 못 살겠어. 오늘 두 번이나 화내고! 그럼 나 엄마 배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응?’ ‘배 속으로 다시 들어온다고? 내가 원하는 건데?’ 하며 우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 눈물이 그치질 않는다. 지성이가 울면서 말한다. ‘얼굴 쓰다듬어 줘. 웃으면서 더 많이 사랑해 줄게 하고 말해줘. 더 예쁘게 웃어.’ 그 어떤 영화감독도 이보다 더하진 않으리. 온갖 열연 끝에 아이 마음은 눈 녹듯 편안해졌다. 내 평생 ‘사랑 표현하기’를 이렇게 연습시키는 감독은 없을 것 같다.”
_156쪽
“결혼이란 걸 하고 나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의 결은 내가 소유하고 소비해 온 삶의 형태를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성과 중심적이고, 효율 중심적이며, 경제적이고, 의미 있어야 하는 자본주의의 산물과 맞닿은 것이었다면 지금은 그 반대의 삶으로 넘어온 느낌이다. 잠을 자는 것조차 의미 있어야 했던 젊은 날의 습성을 모조리 빼앗겼다고 해야 할까. 지금은 비록 ‘한 줌의 잠이라도 잘 수 있다면’으로 바뀌었지만.”
_223쪽
자녀 양육과 신앙교육
“문득 지성이에게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임신부터 출산, 그리고 폭풍같이 들이닥치는 육아까지 이 과정을 다시 밟을 수 있겠냐고 물으면 대답이 빨리 나오지 않지만, 지성이에게 가장 큰 선물은 동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_100쪽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아기에게 세례를 받게 하는 부모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유아세례를 통해 지성이가 하느님을 알아보는 지혜로운 눈을 선물받았다고 믿는다. 지성이의 유아세례는 하느님의 선물로 받은 자녀를 하느님 뜻대로 하느님 안에서 기르겠다는 굳은 약속이다.”
_105-106쪽
“아이들이 다툴 때 … 어떤 실의 끄트머리를 잡고 풀어야 하는지는 삶의 가치관과 맞물려 있어 가르쳐 주기가 늘 조심스럽다. 아이와의 시시콜콜한 에피소드를 잘 알고 있는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 우리가 어렸을 때 친구랑 다퉈서 외로우면 엄마는 예수님한테 친구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했잖아. 그걸 지성이한테 알려줘. 난 엄마가 그렇게 말해준 게 힘이 되었거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엉킨 관계의 실타래를 풀어나갈 때 신앙이 있다면 그보다 귀한 중심이 어디 있을까 싶다. 교복 주머니에 들어있던 작은 1단 나무 묵주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