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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가 왜 한 화백의 그림에 이렇게 몰두하는지 궁금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화백의 그림 “세수하는 성철 스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놀라움은 표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그림을 전공하지 않았고, 체계적인 공부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림을 좋아하긴 했어도 루오, 렘브란트, 고흐, 샤갈, 일리야 레핀 등 아주 한정된 취향 안에서였습니다. 한국 화가들에 대해서는 위 화가들과 같은 높고 깊은 정신성을 찾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저의 그림에 대한 방향성은 예술적 취향이나 탐미적 추구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수도생활의 한 부분이요, 방편이었기에 그림의 아름다움보다는 그 정신성에 먼저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면도 있습니다.

이런 저의 폭좁은 편견을 한 방에 깨준 것이 “세수하는 성철 스님” 그림이었습니다. 이런 정신세계를 이렇게 은유로 압축할 수 있는 화가, 그러면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예술성의 조화 앞에 조금 과장하면 넋을 잃었지요. 그렇지만 그 때 김 호석 화백의 이름도 처음 듣는 그야말로 그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저는 한 달에 한 번 그림에 대한 묵상 글을 써서 수도원 은인들에게 보내는 일을 맡고 있었고 화백의 그림을 그렇게 사용하기 위해 허락을 얻고자 백방으로 연락처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이 2년이나 걸렸습니다.

마침내 선출판사 김 윤태 사장님 덕분에 연락처를 얻고 첫 번째 전화 통화 후 화백은 제게 자신의 도록을 보내왔습니다. “황희 정승”, “마지막 농부” 등 250이 넘는 그림들 전체가 보는 것마다 제 영혼을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놀라웠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어떤 화가에게도 뒤지지 않을 놀라운 정신성과 표현력뿐만 아니라 그의 은유의 세계는 놀랍다는 말로도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황희 정승, 관음 두 가지 예만 들어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화백의 그림을 보면 볼수록 이보다 더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것을 함께 나눌까 합니다.

1. 이 시대의 그림자를 치유할 수 있는 정신을 화백의 작품들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돈, 발전을 향한 맹목성, 생명경시 등의 풍조가 만연한 이 시대의 세계관을 다시 보고 일으켜줄 수 있는 작품을 그리고 있습니다. 세월호, 5.18, 4.19, 6월 혁명, 정신대, 연약한 작은 동물, 몽골의 풍경, 가족화 등 이런 시대를 향한 화백의 절절한 사랑고백 같은 그림을 도록을 펼치면 페이지마다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이 정신은 구체적으로 “맑음”이라는 주제로 드러납니다. 어린아이들마저 아파트 평수로 친구를 규정짓고, 왕따를 시키는 세태 안에서 맑음은 수도자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듯 하지만, 역시 사람은 맑은 물 맑은 공기를 마셔야 생명이 건강하듯 정신 역시 맑은 기운을 받아야 합니다. 그의 그림들에서 이것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산소부족을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그는 현대에 갑자기 튀어나온 천재가 아니라 과거에 굳건하게 발을 디디고 있습니다. 그의 가계의 덕이 무엇보다 큰 부분이겠지만, 자신도 의식적으로 과거의 가치를 중시합니다. 많은 것들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사라져버린 한지를 살려내고, 그 한지에 역시 사라져버린 우리 초상화 기법인 배채법을 재현해낸 첫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붓, 물감 등 그림의 도구들에 대해서도 전통의 훌륭함을 살리고 직접 사용하고 필요한 이들에게는 무상으로 그 방법들을 나누어줍니다.

4.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현대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수묵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과거에 발을 딛되 현재의 역사적인 문제, 시대의 아픔, 그림자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림의 주제로 삼습니다. 그리고 이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탐구의 노력을 그치지 않는데, 그런 노력은 작품의 다양한 주제들로 드러납니다.
창작활동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영역의 다양성이 작품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온 존재를 바친 헌신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5. 이런 노력은 은유와 여백, 역설과 도치라는 화백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정신성은 놀라운 예술성을 띠고 나타납니다. 높은 정신을 표현할 때 자칫 빠질 수 있는 단지 어렵고 추상적인 경향에 치우지지 않고 그의 작품은 아름답습니다. 또한 시대를 표현하는 작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즉물적으로 포스터 같은 형식에 빠지지 않게 합니다.

6. 이번 제주 전시회 작품들에서는 이제 그는 눈에 보이는 세계 저 너머 것마저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거의 종교화라 할 수 있겠지요.
그는 이런 작품세계를 위해 혹은 작품 이전에 자신의 삶을 최소한으로 축소합니다. 담배, 술을 멀리하는 것은 물론 먹을 것, 입을 것, 소유물,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거의 수도자적 삶을 추구합니다. 방만한 삶은 높은 정신성을 추구하는데 방해가 됨을 파악하고 있기에 그는 의식적으로 이런 삶을 추구합니다.

그의 이러한 예술의 태도는 다음 한 마디로 축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그린 모든 작품들도 내 삶이라는 것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예술을 세상에 대한 헌신이라고 망설임 없이 이야기합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걸고 그림에 자신을 투신합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감상하는 데는 그만한 열정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목차
[프롤로그]

장요세파 수녀,
수묵화가 김호석 화백의
40년 작가노트를 엿보다

함께 가는 길
사랑
어휴 이뻐
단잠
도약
어때 시원하지
느낌
포로
꽃눈
토요 미스터리 극장
미운 일곱 살
리모컨 전쟁이 끝난 뒤
탈주전야
최초의 아르바이트
내음으로 기억되다
손 가시
절정
하늘에 눕다
나무꾼 대선사
위기
초상화
초선(招仙)
또 다른 삶
시선의 바깥
관음
황희 정승
물질
시선의 바깥 2
분노를 삭이며
어미 닭
돈 돈
꼬리의 뼈
관중 의식
자강불식

순망치한
이매망량-물귀신 밤귀신
민초
늘어진 줄
하늘 낚시
입 주기
생성
부처님 젖 1, 2
헌화가
분홍빛 웃음
있는 그대로

내게 가장 낯선 나
텅 비어있는 나

마지막 선물
월문
그늘 위의 그늘
지효 스님, 성철 스님
검은 성철 스님
세수하는 성철 스님
마지막 기억
스투파
소가 웃다
염소
허공을 흔드는 두 위엄
지나가니 새것이 되었다
칼눈
해 뜨는 곳에서 해지는 곳까지
안간힘

어느 가난한 암자에 사시는 서생
길고 긴 잠
서(鼠) 1
서(鼠) 2
덫 1, 2
꽃뱀
벌레

파리 목숨
탁주에 발을 씻다
먹파리
한밤의 소
그림자에 덧칠하다
나는 너다
아포토시스
이성의 법정에 세우다
겨울 매미
기는 장사, 나는 장사를 잡다
달빛도 부끄러워
통일을 꿈꾸다
마지막 농부의 얼굴
눈인사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
똥꽃
개죽음
서울 2001 여름, 서울 2001 가을
아직 오지 않은 공포

법의 한가운데서
늑대의 춤
180도가 넘는 삼각형
신체 없는 정신은 가능한가
두 개의 눈
잘못된 선택, 올바른 선택
콩 심은 데 콩 난다(?)
팥 심은 데 팥 난다(?)
익숙함의 두려움
뒤를 보다
하늘을 가르다
논오리
죽음, 또 다른 삶
선비 초상
조(祖)
나무꾼 선사
선비정신 1
선비정신 2
선비정신 3
공간소외
구원
굴비
노인
아현동
자화상

장요세파 수녀,
수묵화가 김호석 화백의
삶을 엿보다

화가의 삶
종이-기본을 이야기하다
흑백의 세계
먹의 공간 속으로
젖은 붓질 마른 붓질
왜 수묵화인가?
여백이 빚어지는 틈
미완성 수묵화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남는 마지막 것
작품 이전과 마주하다
김호석 그림과의 만남
김호석 현상
[김호석 수묵화, 보다]展에 앞서

[에필로그]
글쓴이 :  장 요세파 수녀
 
일본 홋카이도의 트라피스트 여자수도원에 입회. 현 창원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봉쇄수녀원에서 수도 중이다. 지은 책으로 시집 『바람 따라 눕고 바람 따라 일어서며』와 그림 에세이 『수녀님, 서툰 그림읽기』, 『수녀님, 화백의 안경을 빌려 쓰다』가 있다. 트라피스트 봉쇄수녀원은 11세기 프랑스에서 창설된 ‘시토회(Ordo Cisterciensium Strictioris Observantiae)’ 소속으로, 새벽 3시 30분 기상해 밤 8시 불이 꺼질 때까지 기도와 독서, 노동으로 수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