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의 성인, 전장의 그리스도
에밀 카폰 신부!
처참하고 피비린내 나는 전투 가운데 카폰 신부로부터 너무나 큰 감동을 받은 병사들은 그를 ‘전장의 그리스도’라고 불렀고, 냉혹한 공산군 수용소에서 감격한 동료 포로들 역시 그를 ‘성인’이라고 불렀다.
─ 위치토 교구, 마크 K. 캐럴 주교
2021년 봄, ‘6·25 전쟁의 성인’, ‘전장의 그리스도’라고 불린 신부의 유해가 발견되어 70년 만에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미군 군종 신부로 참전했다 벽동 포로수용소에서 숨진 에밀 J. 카폰 신부의 이야기다. 카폰 신부는 군대에 신부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말을 들고 자원입대하였다. 군인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자신의 소명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병사들과 함께 생활하며 몸소 믿음을 전하고 사랑을 베풀었다.
마찬가지로 6·25 전쟁을 겪은 고故 정진석 추기경에게는 카폰 신부가 더욱 각별했다. 카폰 신부의 이야기를 담은 《종군 신부 카폰》을 직접 번역했기 때문이다. 매일 카폰 신부의 시복과 시성을 위해 기도하던 그는 생전에 병상에서 카폰 신부의 유해가 수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종군 신부 카폰》이 새로 출간되어 신자들에게 널리 알려지기를 바랐다. 정진석 추기경은 병상에서도 추천사를 쓰고 수정 사항을 전달하는 등 적극적으로 작업하였으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 책을 많은 이들에게 전하기 위해 애썼다.
6·25 전쟁 당시 저는 여러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때마다 죽음에서 구해 주신 하느님의 뜻을 생각했습니다. 이후 미군 통역관으로 복무하면서 카폰 신부님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먼 이국땅에서 오시어 군종 신부로 6·25 전쟁에 참여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하느님 곁으로 가신 에밀 카폰 신부님. 저는 이 책을 번역하던 신학생 때부터 카폰 신부님의 몫까지 두 배로 충실한 사제가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오늘도, 병상에서 카폰 신부님의 시복 시성을 위한 기도를 바칩니다.
─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
카폰 신부를 직접 만난 이들이 전하는
그의 신앙과 삶
한여름 무더운 날에도 병사들은 언제든지 낙동강 방죽에 오면 지프차 앞머리에 차려 놓은 간소한 제대를 볼 수 있었습니다.
─ 본문 중에서
《종군 신부 카폰》에서는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낸 적도 없고 신앙을 강요한 적도 없으며 항상 겸손하게 살아가는 카폰 신부의 모습이 드러난다. 묵묵히 신앙생활을 하는 그에게 감화되어 많은 이들이 신앙을 가졌고, 잊었던 신앙을 되찾았다. 특히 전투 중에도 매일 기도하고 미사를 드리는 모습을 본 병사들은 카폰 신부를 진정한 하느님의 사람이라고 부르며 어려움 속에서도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믿음을 키워 나가는 모습도 보인다. 병사들에게 카폰 신부는 사목하는 신부이자, 함께 전투하는 전우였다. 그는 실제로도 마지막까지 부상병을 돌보며 남아 있다 포로가 되었고, 결국 포로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이 책은 이런 카폰 신부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카폰 신부를 직접 만난 이들이 보낸 편지와 그들의 증언을 담고 있다.
이번 개정판은 시대가 지나 어색해진 표현을 수정하였고, 오래 간직하기 좋도록 더욱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출간했다. 또한 카폰 신부가 소속되어 있던 미국 캔자스주 위치토 교구와 협력하여 위치토 교구에서 보내 준 추천사와 카폰 신부에 관한 많은 사진들이 수록되었다. 그래서 이 책을 보면 카폰 신부의 삶을 더욱 생생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지옥 같은 전쟁 속에서도
거룩하게 빛나는 성인이 있었다
카폰 신부는 전쟁에서 보여 준 영웅적인 모습을 인정받아 많은 무공 훈장을 받았다. 교황청에서는 이러한 카폰 신부의 덕행을 높이 사 ‘하느님의 종’으로 선언하였으며 성인으로 인정받는 다음 단계인 기적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 카폰 신부의 사후 62년이 지난 2013년에는 대통령이 군인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명예 훈장까지 받았다. 그러고는 2021년, 하와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던 신원 미상 참전 용사 유해에서 카폰 신부의 유해가 확인되었다. 이후 미국 위치토 교구에서는 6·25 전쟁 때 동료를 부축하고 한파 속을 걸어 포로수용소로 가던 카폰 신부의 모습을 동상으로 제작하는 등 카폰 신부를 기리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더욱 활발하게 그의 시복 시성을 위한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6·25 전쟁이 끝난 지 약 70여 년이 지난 지금, 전쟁의 포화는 잦아들었다. 그러나 아직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휴전국이다. 카폰 신부는 외국인이라 우리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전쟁의 두려움 속에서 살지 않는 이유는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폰 신부님이 성인이냐고요? 제게는 물론 성인입니다. 만일 하늘나라에 편지를 보낼 수 있다면 저는 이렇게 쓸 겁니다. ‘저 높은 하늘에 계신 위대한 성직자, 위대한 병사, 위대한 당신에게 감사드립니다. 신부님, 당신이야말로 하늘나라에 가실 분입니다. 당신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 본문 중에서
역자의 말 … 7
인사말 … 9
개정판을 펴내며 … 10
추천사–카폰 신부를 아시나요? … 14
추천사–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 19
머리말 … 25
제1장 소년 시절 … 30
제2장 신학생 시절 … 46
제3장 영원한 사제 … 68
제4장 착한 목자 … 76
제5장 하느님의 병사가 되고자 … 83
제6장 미얀마와 인도 … 91
제7장 다시 대학으로 … 101
제8장 다시 군복을 입고 … 112
제9장 일본 … 126
제10장 전투 전날 … 145
제11장 저항 없는 포로 … 163
제12장 메이요 중위의 회고 … 178
제13장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 … 197
제14장 성스러운 모습 … 220
제15장 가시철망을 쓴 그리스도 … 230
제16장 훈장 … 239
제17장 추도 미사 … 249
제18장 찬사 … 257
제19장 동방 박사들이 오다 … 274
부록–카폰 신부의 약력 … 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