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에 사로잡힌 이들, 부마자!
부마와 부마자에 대한 모든 것
1973년에 나온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엑소시스트>라는 공포 영화가 있다. 이 영화를 보면 주인공의 딸이 악령에 들리는데, 몸이 뒤집힌 상태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등 악령 들린 장면이 소름 끼칠 정도로 잘 묘사되어 있다.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인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한 <콘스탄틴>에도 악령 들린 여성의 모습이 나오고, <검은 사제들>, <사자>와 같은 우리나라 구마 영화에도 악령 들린 이가 나온다. 이렇게 대중 매체를 통해 악령에 사로잡힌 이, 즉 부마자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이와 같이 부마와 구마를 다루는 영화나 소설을 접하다 보면, 궁금증이 하나 생긴다. 악령에 사로잡힌 이들이 눈이 뒤집히거나 공중에 뜨는 등 이상 행동을 보이는 것이 과연 사실일까? 단순히 대중 매체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극적으로 표현한 것일까, 아니면 실제로 부마된 이들이 보이는 행동인 것일까? 그 의문을 풀어 줄 책이 바로 여기 있다. 이 책은 부마와 부마자에 대해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부마에 대한 여러 사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책
먼저 이 책에서는 부마에 대한 여러 사례들을 다루고 있다. 유명한 부마 사례인 프랑스 루됭에서 일어난, 우르술라회 수녀들의 집단 부마 사례부터 발레 아오스타에서 있었던 악마 재판, 정신 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악마와 계약한 화가의 사례 등이 나온다. 이 사례들을 통해 악령에 들린 이들의 특징과 악령에 들린 상황을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이들에 대해 어떤 구마 의식이 치러졌으며, 어떤 식으로 이 사건들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이 사건들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알 수 있다. 저자는 이 사례들을 종교적으로나 비종교적인 시각이 아닌, 즉 어느 쪽으로 편중된 시각이 아닌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기에, 이 책을 읽는 이들도 객관적인 눈으로 이러한 부마 사례들을 흥미롭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심도 있게 만나는
다양한 부마의 세계
그동안 악마와 구마와 관련된 도서들은 여럿 나왔다. 그중 《악령에 사로잡히다》는 그 점정을 찍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악마, 부마, 구마에 대한 모든 것을 망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인 마시모 첸티니는 인류학자로서, 학자답게 이러한 주제들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는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시기부터 이어져 온 부마와 구마의 흐름과 함께 가톨릭에서 행하는 구마 의식에 대해서 이야기해 준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샤먼들이 부마되는 샤머니즘, 늑대 인간과 같이 동물혼에 부마된 이들, 좀비, 심령술사 등 여러 문화권에서 볼 수 있는 부마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우리가 대중 매체로 접해 왔던 이러한 부마 현상들을 다양한 참고 문헌에서 가져온 사례로 설명하고 있어, 신뢰성을 높여 준다. 그리하여 이 책을 통해 부마가 오래전부터 우리 인류 문화 안에서 볼 수 있는 현상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히 악령에 사로잡힌 것으로 여길 수 있는 부마를 여러 방면으로 살펴보기에, 가톨릭 신자는 물론, 관련된 주제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부마에 대한 시야를 넓힘으로써 인문학적인 지식도 쌓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퇴마사가 확인하듯이, 현대 사회에서도 악마나 사악한 영혼의 피해자가 되는 일이 있다. 과연 이 현상은 사실일까, 암시일까? 아니면 미신일까, 질병일까?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 이 책에서는 부마가 무엇인지 쉽게 이해하기 위한 틀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 책은 기존의 관례와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부마와 부마자들을 심도 깊게 살펴보는 자리가 될 것이다.
_ ‘들어가는 글’ 중에서
책 속으로
그랑디에 신부는 이 기회를 통해 신뢰를 얻으려고 했지만, 잘못된 판단이었다. 수녀들의 반발은 유죄 선고나 다름없었다. 모든 사람들은 그를 처벌하는 것만이 이 비극적 사건을 매듭 짓는 유일한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사제는 두 악마 아스모데우스, 레비아탄과 맺은 피의 협약서를 앞에 두고 고문을 받았다. 그리하여 궁지에 몰린 사제는 변론의 기회도 없이 사탄의 숭배자라고 자백했고 화형을 당했다.
그 이후에도 구마 의식은 계속되었다. 특히 잔에게 집중되었는데, 쉬랭 신부가 다가가면 발악하고 독설을 퍼부었다. “저주받아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 마리아와 천상의 군단!”
_24p 제1부 제1장 집단의 부마 중에서
바실리스크의 이름은 그리스어로 작은 왕을 뜻하는 바실리스코스basilìskos에서 유래한다. 이는 바실리스크가 지닌 왕관 무늬와 관련된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마왕이 악마들의 왕인 것처럼 …… 바실리스크는 뱀들의 왕이다.”라고 지적했다. 놀랍게도 로에로 부인은 ‘뱀들의 왕’을 보았고, 그 길로 곧장 퇴마사를 찾아갔다. 한편 루치펠은 그녀의 입을 통해 바실리스크를 설명했다. “바실리스크는 신의 명령으로 악마에 의해 생겨났고, 암탉이 낳아 한달을 품어 태어난다. …… 그리고 나라 전체를 몰살한다. 과거에 전쟁, 역병, 기근의 재앙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여자가 화덕 위의 성모에게 바친 기도로 신의 분노가 가라앉았다. 여자가 그 장소에서 기도하는 동안 …… 신은 바실리스크로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렸다는 소리를 들었다.”
_80-81p 제1부 제5장 주변의 부마자들 중에서
문화와 부마의 상관관계가 입증되는 증후군의 또 다른 예시로 피블락토크pibloktoq를 들 수 있다. 북극 히스테리로도 알려진 이 증후군은 이누이트족에서 나타난다. 우울감과 은둔과 같은 전조 현상이 있는 이 병적 유형은 인간과 개에게 갑작스럽게 발병한다. 사회에서 분리되려는 경향은 이후 발작 증상을 동반한 흥분 상태로 접어들다가 다시 정상 상태로 돌아오면서 끝이 난다.
일반적으로 이 증후군에 걸린 사람은 처음에 손뼉으로 장단을 맞추며 나지막하게 노래를 한다. 그러다 네 발로 걷거나 개처럼 짖는 등 통제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면서 증상은 기이하게 변한다. 소리치고 옷을 찢고 울부짖고 욕설을 퍼붓고 어떤 경우는 대변을 먹기도 한다. 정처 없이 눈밭을 달리는데, 추운 날씨에도 얇은 옷을 입고 질주하다가 기력이 다하고 나서야 멈춘다. 그리고 차가운 물에 빠져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_110p 제2부 제1장 다양한 문화 속의 부마 중에서
스투버는 악마에게 받은 허리띠를 차고 있을 때, 온갖 잔학한 짓을 선동하는 늑대-악마의 영혼에 사로잡혔다. “그는 강력하고 원기가 넘쳤으며, 끝없이 먹잇감을 갈망했다. 크고 깊은 눈은 빛살처럼 번뜩거렸고, 떡 벌린 커다란 입은 뾰족하고 예리한 이빨로 가득했다. 거대한 몸집에 다리도 엄청나게 컸다. …… 악마가 그에게 허락한 형체는 욕망을 채우기에 적절했고, 야만과 피로 이끌리는 본능과 잘 들어맞았다. 따라서 그 기이하고 상징적인 선물을 기쁘게 여기며 극도로 혐오스럽고 포악한 범죄에 뛰어들었다.”
악령이 들린 늑대 인간은 피로 얼룩진 광기의 흔적을 남겼다. 그 지역 주민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사상자가 계속해서 나왔기에, 이제는 무기와 남자를 대거 동원하지 않고는 아무도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 하지 않았다. …… 여러 차례 주민들은 들판에 뿌려진 희생자의 팔다리를 목격했고,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_219p 제3부 제1장 애니미즘 문화 중에서
들어가는 글 부마_시대를 초월한 미스터리
1부 악령에 사로잡힌 이들
1. 집단의 부마
_루됭의 악마 들린 수녀들
2. 악마 재판
_발레 다오스타의 이시메 사건
3. 예술 속의 부마
_샤르코의 히스테리 연구
4. 프로이트, 악마와 우울증 화가
_크리스토프 하이즈만의 사례
5. 주변의 부마자들
_최근에 일어난 부마와 구마 사건
2부 부마란 무엇인가
1. 다양한 문화 속의 부마
_악령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2. 악마가 등장할 때
_부마자, 부마와 구마
3. 부마일까, 아닐까
_부마의 정신 병리학적 의미
4. 퇴마사일까, 정신과 의사일까
_부마와 정신·신경적 장애
3부 다양한 부마의 세계
1. 애니미즘 문화
_동물혼의 부마자들
2. 영혼의 부마
_마쿰바, 부두교 의식과 좀비
3. 신앙과 미신 사이의 구마
_타란티즘, 뇌전증, 치료 의식
4. 심령주의
_영매와 심령술사
지은이 마시모 첸티니
1955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났다. 토리노 대학의 문학·철학부에서 문화 인류학을 전공했다. 그는 미시적 관점에서 문화와 역사, 종교와 신화를 연구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토리노 대학에서 문화 인류학을 강의하며, 여러 대학과 국내외 박물관 및 연구소와 협력하고, 이탈리아 주요 일간지와 잡지에 기고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마법. 범죄, 이단과 악마 숭배Stregoneria. malefici, eresia e culto del diavolo》, 《범죄학La criminologia》, 《전염병. 역사, 신화와 과학Le epidemie. storia, mito e scienza》, 《적그리스도의 귀환Il ritorno dell’Anticristo》, 《잃어버린 세계. 환상의 장소로 떠나는 여행Mondi perduti. Viaggio nei luoghi della fantasia》, 《성스러운 범죄Sacri crimini》 등이 있다
옮긴이 김희정
1973년 경북 상주 출생. 대구가톨릭대학교 이탈리아어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움베르토 에코의 《가재걸음》과 《적을 만들다》, 조르조 바사니의 《금테 안경》을 비롯해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돈의 발명》 등 다양한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