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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부터 7, 8세기에 활동한 교회 지도자들을 우리는 교부敎父라 일컫는다.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 공동체가 주님의 뒤를 따르고 그분을 닮아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며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도록 가르치고 호소해 온 교부들의 가르침과 저자의 명쾌한 해설이 짝을 이룬 이 책은, 시대와 지역과 교파를 초월하여 오늘의 독자들을 감동과 교훈으로 인도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교부들의 사랑


우리에게 익숙한 가톨릭 사회교리는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문제들에 관하여 교황들 또는 국가나 대륙의 주교회의가 다양한 방식으로 응답한 것이다. 현대의 첫 사회 교서인 레오 13세 교황의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1891)에는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상황과 저개발국들의 비인간화에 관한 예리한 통찰과 따듯한 애정이 배어 있다.


그러나 사회교리를 현대 교황들의 특정 회칙이나 교황청 문헌 등에만 한정하는 것은 2천 년 그리스도교의 ‘거룩한 전통’(聖傳)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일이다. 비록 번듯한 짜임새는 없지만 교부 문헌에는 교부들이 살았던 시대 상황 속에서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시는 주님을 알아뵙고 그들과 연대하며 정의로운 사회를 일구기 위해 헌신했던 교부들의 치열한 성찰과 생생한 증언들이 담겨 있다.
동방 교회에서는 특히 대 바실리우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가 놀라우리만큼 강력하고 감동적인 가르침을 남겼고, 서방 교회의 암브로시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 대 그레고리우스도 이에 못지않다. 2천 년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가장 위대하다는 평판을 얻은 이 교부들은 사회문제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에서도 가장 탁월한 가르침과 본보기를 남겼는데, 이들 교부들의 사회적 가르침의 중심 주제는 인간 존엄과 가난한 이들의 권리, 재화의 보편적 목적과 분배 정의, 나눔과 환대의 의무, 연대와 공동선, 자비와 자선 등이다. 그 밖에도 다양한 사회생활의 원리가 방대한 교부 문헌 책갈피에 무궁무진 숨어 있다. 이는 갈라진 형제들도 공유해야 하는 그리스도교 공동 유산이며, 우리가 끊임없이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그리스도교 원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거룩한 전통은 오늘날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과 교리교육, 연설과 문헌뿐 아니라, 하느님 백성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몸짓과 표정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가장 오래된 교부 문헌 가운데 하나인 『디다케』에서부터 아우구스티누스와 대 그레고리우스에 이르기까지 주요 교부들의 사회교리 흔적과 증언을 시대순으로 정리하여 짧은 본문을 싣고 그에 대한 저자의 명쾌한 해설을 덧붙인 이 책이야말로 시대와 지역과 교파를 초월하여 오늘의 독자들에게 감동과 교훈을 안겨 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책 속에서

사회교리를 현대 교황들의 특정 회칙이나 교황청 문헌 등에만 한정하는 것은 2천 년 그리스도교의 ‘거룩한 전통’(聖傳)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일이다. 비록 번듯한 짜임새는 없지만 교부 문헌에는 교부들이 살았던 시대 상황 속에서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시는 주님을 알아뵙고, 그들과 연대하며 정의로운 사회를 일구기 위해 헌신했던 교부들의 치열한 성찰과 생생한 증언들이 담겨 있다.(16-17쪽)


『디다케』는 그리스도교 문헌 최초로 낙태를 살인이라고 규정하고 명시적으로 금지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처음부터 낙태를 살인이라 여기고 금지했음이 틀림없다. 인류 가운데 가장 연약한 인간,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 취급조차 받지 못한 채 처참하게 죽어 가는 미소한 태아도 하느님을 닮은 존엄한 인간이라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 선언이다.(25쪽)


나그네의 모습으로, 떠돌이의 모습으로, 난민과 이주민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마태 25,31-46)을 환대하기는커녕 거부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의 세계관에 머물러 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오심을 반대하는 것이 분명하다. 난민에 대한 환대는 교부들의 가르침에 바탕을 둔 그리스도교의 거룩한 전통이며, 그 성전聖傳은 오늘날까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전 세계 가톨릭교회 안에서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35쪽)

세상 만물은 하느님께서 빚어내셨으니 더불어 사용해야 하며, 하느님의 선물에서 어느 누구도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 가르침은 가톨릭 사회교리의 핵심 원리이다. 별빛과 달빛을 홀로 가질 수 없듯, 땅도 독점할 수 없고 밥도 독식할 수 없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생활 규범이다.(70쪽)


우리 신앙의 두 기둥은 성경과 성전聖傳이다. 외로운 떠돌이의 벗이 되어 주시고 가난한 나그네와 당신을 동일시하시는 주님의 성경 전통과, 가난과 전쟁에 떠밀린 난민과 외국인들을 주님처럼 맞아들이고 환대하는 교부 전통에 맞서서 난민 반대를 외치며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달고는 할 수 없는, 그리스도에 맞서는 행위이다. 난민들은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이기 때문이다(에페 2,19).(121쪽)


필요 이상의 것을 소유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며, 여분의 것을 돌려주는 것은 자선 행위이기 이전에 정의의 행위라는 이 탁월한 통찰은 암브로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 대 그레고리우스 같은 위대한 교부들이 공유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 69항). 아직 가난한 주인에게 돌려주지 못한 채 무겁게 짊어지고 다니는 남의 재산은 무엇이며, 제 몫을 지니지 못한 가난한 라자로가 내 집 문 앞에서 죽어 가고 있지 않은지 살피는 일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132쪽)


돈이 우상이 된 이 세상에서 부자들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많은 사람이 돈 버는 일에 매달려 한평생을 쏟아붓지만, 부자의 꿈을 이루는 사람은 드물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참으로 부자가 되는 길을 알려 준다. 진짜 부자는 누구인가? 한마디로 “돈 많은 사람이 아니라, 돈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한 소쿠리 밥과 한 표주박 물로도 감사하고 기뻐하며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는데도, 탐욕스레 돈을 긁어모으면서 만족할 줄도 나눌 줄도 모르는 이들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비참한 가난뱅이라는 것이다.(136쪽)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가난한 사람들을 선별하는 ‘헛일’ 대신, 모든 이를 위한 보편적 재화를 넉넉히 배당받을 권리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우선으로 돌려주라고 독려한다. “우리가 남의 삶을 조사하려 들면, 아무에게도 자비를 베풀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런 시의적절치 못한 참견질에 가로막혀서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고 아무런 도움도 얻지 못하며,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없고 헛일이 될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간청합니다. 이런 부적절한 호기심을 멀리 떨쳐 내고, 필요한 모든 이에게 베푸십시오. 넉넉히 베푸십시오”(『자선』 26).(139쪽)


“사회사목은 ‘철로 만든 철’과 같은 동의어 반복이다. 모든 사목 활동은 사회적이기 때문이다.” 이제민 신부의 탁월한 통찰이다. 그렇다면 사회교리는 어떤가? 사회교리는 수많은 장엄 교리들 가운데 갓 태어난 막둥이 교의나 거대한 신학 체계 속에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신학 이론이 아니다. 그리스도교 교리는 그 자체로 사회적이다. 복음은 세상 한가운데서 당신 백성을 목숨 바쳐 돌보시는 하느님 사랑의 선포이기 때문이다. 사회교리는 지금 여기에서 치열하게 성찰하고 해석하는 복음이며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삶의 원리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회교리 그 자체”라는 놀라운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가톨릭 사회교리를 현대 교황과 교회의 공식 문헌 몇 편으로 한정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기도 하다.(188쪽)









추천의 글    
들어가는 말


1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교부들의 사랑
2 공동 소유
3 가장 연약한 인간
4 참회해야 하는 부자들
5 그리스도인의 생활 원리
6 연대와 환대
7 성체성사의 사회적 특성
8 로마 교회의 자선 전통
9 초기 그리스도교 인권 선언
10 나그네 교회
11 어떤 부자가 구원받는가
12 꼭 필요한 것에 관하여
13 전쟁과 평화
14 양심적 병역 거부
15 돈이라는 우상
16 재화의 공공성
17 죄를 없애는 자선
18 가난한 이들이 교회의 보물!
19 인간의 조건
20 그리스도교 최초의 사형폐지론
21 사랑의 신도시
22 나누지 않는 것은 도둑질
23 사유재산과 사회적 책임
24 살인하지 말라는 뜻
25 황금 숭배
26 눈물로 눈물 닦기
27 보라, 사람이다!
28 경배해야 할 가난한 이들
29 모든 이를 위한 모든 재화
30 난민에 대한 사랑
31 이자놀이의 죄악
32 자비와 선행의 힘
33 나누지 않는 것은 도둑질
34 진짜 부자
35 조건 없는 자선
36 연극 같은 인생
37-1 살 제대와 돌 제대
37-2 홀로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님
38 사유재산권의 한계
39 가난한 나봇 이야기
40 가난한 노동자의 존엄
41-1 나는 인간이다!
41-2 자녀 교육
41-3 고난의 현장에서 거행하는 미사
42 왜 나를 박해하느냐
43 자비와 자선
44 배부른 교회에게
45 정의의 의무
46 예수님의 사회교리


교부 문헌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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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최원오


광주가톨릭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로마 아우구스티누스 대학에서 교부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산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일했으며,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다. 『내가 사랑한 교부들』(분도출판사 2005, 공저), 『종교 간의 대화』(현암사 2009, 공저), 『교부들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분도출판사 2017, 공저)를 지었고, 포시디우스의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분도출판사 2008, 공역주), 아우구스티누스의 『요한 서간 강해』(분도출판사 2011, 공역주), 『교부들의 성경 주해 - 마르코 복음서』(분도출판사 2011), 암브로시우스의 『나봇 이야기』(분도출판사 2012)와 『토빗 이야기』(분도출판사 2016), 오리게네스의 『원리론』(아카넷 2014, 공역주), 키프리아누스의 『선행과 자선 · 인내의 유익 · 시기와 질투』(분도출판사 2018),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의 『참회에 관한 설교』(분도출판사 2019, 해제), 『성 아우구스티누스』(분도출판사 2015, 공역), 『교부와 만나다』(비아출판사 2019, 공역)를 우리말로 옮겼고, 『교부 문헌 용례집』(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4)을 함께 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