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 대한 여덟 가지 질문과 토론
「신학대전」은 교부들의 그리스도교 사상을 종합한 대작이며 토마스 아퀴나스 사상의 백미이다. 이중 자연법주의의 측면과 실정법주의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찰한 제2부 1편(제90문-제97문)을 번역한 「신학대전28권-법」이 우리말·라틴어 대조본으로 나왔다.
우리말 「신학대전」은 1985년 당시 서강대 철학과 교수였던 정의채 몬시뇰이 제1권을 번역한 이래 지금까지 나온 28권까지 이재룡 신부, 윤종국 신부, 김춘오 신부, 김율 교수, 이상섭 교수, 김정국 신부, 이진남 교수가 번역에 참여했다. 이번에 나온 28권은 강원대학교 철학과 이진남 교수가 옮겼다.
‘법’를 다루는 28권은 법에 대한 8가지 질문(제90-제97문)을 제시하며 지상(紙上) 토론을 벌인다.
첫째 질문 제90문은 ‘법의 본질에 대하여’를 물으며 법을 ‘공동선을 위해 공동체를 책임지는 자에 의해 공포된 이성의 명령’으로 정의한다. 이 정의에는 ‘공동선’이라는 목적과 ‘이성의 명령’이라는 법의 본성이 드러나 있다.
91문에서는 ‘법의 종류에 대하여’라는 제목 아래 영원법, 자연법, 인정법, 신법 등을 다루며 법의 체계를 제시한다.
92문은 ‘법의 효력에 대하여’ 말하며 다음의 질문을 제기한다.
1. 법의 효력은 인간을 선하게 만드는가?
2. 법학자가 말한 바와 같이 법의 효력은 명령하고 금지하고 허가하고 처벌하는 것인가?
_71쪽
이에 대해 토마스 아퀴나스는 “덕이 사람을 내적으로 선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법은 외부에서 사람을 덕으로 인도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아울러 “명령, 금지, 허용, 처벌에 대해서는 선한 것은 명령하고, 악한 것은 금지하며, 차별이 없는 것은 허용하고 스스로 복종하도록 만들기 위해 처벌한다”는 기준을 제시한다. (xli쪽)
93문부터는 본격적으로 법의 종류를 다룬다. 93문에서는 영원법, 94문에서는 자연법, 95에서는 인정법, 96문에서는 인정법의 효력을 설명하고 97문에서는 법의 개정에 대하여 논한다.
이 책의 도입부 ‘법’ 입문에서 역자는 토마스 시대의 법 개념과 우리 시대의 법 개념 사이의 차이를 짚어낸다.
토마스가 생각하는 법은 세 가지 점에서 우리 시대의 법 개념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첫째, 현대인들에 있어 법이란 최소한의 도덕이자 도덕으로부터 일정 정도의 거리를 둔 강제적 규범을 의미한다. 그러나 토마스 시대에 있어 법은 도덕과 분리되지 않았다. 오히려 법은 도덕의 중요한 원리 중 하나로 여겨졌다. 둘째, 현대인들에 있어 법은 법칙(法則)과 다르다. 각종 법들은 국민의 삶을 강제하는 규정적인(prescriptive) 것인 반면, 만유인력의 법칙과 같은 자연법칙은 기술적이기(descriptive) 때문이다. 그러나 토마스 시대의 법에는 이러한 구분이 없었다. 이성의 명령인 법은 인간의 행위뿐 아니라 자연에도 적용되었다. 셋째, 현대인들은 법의 목적이 일차적으로 국민 개개인의 각종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토마스 시대에 있어 법의 목적은 공동선(bonum commune)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_xliv-xlv쪽
토마스 시대에는 법과 도덕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점, 삶뿐만 아니라 자연법칙까지 법에 포함됐다는 점, 현대는 법의 일차 목적이 개개인의 권리보장인 데 비해 그 당시에는 공동선이었다는 점을 밝힌다.
「신학대전」 내용이 전개되는 순서는 토론과 유사하다. 권위 있는 가르침들이 찬-반으로 제시되고, 다음에 저자 자신의 해결책이 제시되는 방식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의견과 반대되는 고대 철학자와 사상가들의 반론을 세 가지 정도 제시하고 그에 반하는 재반론을 제시한다. 그리고 토마스 자신의 답변, 해결책을 제시하고 이를 고대 철학자의 반론에 일일이 적용해 본인 주장의 타당성을 강조한다. 곧, 신과 인간 존재에 대한 반론과 재반론이 오가는 토론이 지상(紙上)에서 펼쳐진다.
지은이: 토마스 아퀴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