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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성이라는 관념은 이미 교부들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리스도교 철학: 주체성의 발견》은 주체성의 발견이 근대에 와서 새롭게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이미 교부들로부터 이루어졌다고 말해 주는 책이다. 이 책은 내면성, 의지, 코기토의 확실성과 같이 대상화된 형이상학을 해결하는 원리들이 그 자체로 그리스도교적 원천에서 나온 원리들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이 원리들 덕분에 딜타이, 니체, 하이데거와 같은 근대 철학자들이 비로소 전통적인 형이상학과 결별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포스트모던적인 사유가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은 교부들부터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그리스도교가 철학을 위한 개혁을 잘 준비하여 제시하였다는 것을 전해 준다. 

 

신학자들은 철학에 대한 원칙적인 거부와 작품 안에 나타나는 철학의 편재성 사이에는 ‘모순’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모순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거부(철학에 대한 거부)는 원칙적으로 실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는 모순이 아니라, 고대 철학을 점진적으로 극복하려는, 다시 말해서 고대 철학을 완성하려는 그리스도교의 요청이다. 이 점은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그리스도교 철학의 고유한 대상, 곧 ‘내적 인간’ 또는 근대적으로 말하자면 ‘주체성’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유효하다. 

내적 인간의 발견은 발견이라는 측면에서 부흥을 불러일으켰다. 예를 들면 르네상스 시대에 페트라르카와 마르실리우스 피치누스는 고대의 유산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도교 유산도 이용했다. 종교 개혁과 반종교개혁의 시대였던 근세 초기는 교부들의 사상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독일에서 내적 인간에 대한 플라톤적 개념이 이미 아주 이른 시기에 ‘내면성’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이해되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피히테와 특히 헤겔과 같은 독일 관념론 철학에서도 옛 주제가 얼마나 현재적이었는가 하는 것이 분명해진다.

― '입문' 중에서

 

종교이자 철학인 그리스도교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철학과 신학을 철저히 나누어 공부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 특히 신학도들은 왜 철학이 중요한지, 왜 철학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절실하게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초기의 그리스도교 사상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밀접하게 철학과 관련을 맺고 있었다. 

플라톤 철학은 구약 성경의 사유에서 영향을 받았고 그리스도교도 플라톤주의적 구상과 스토아학파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에 이르게 되었다. 교부들은 철학과 고유하게 구분하여 신학을 생각하지 않았다. 성서적인 것과 그리스적인 것, 그리스도교와 철학의 대립도 없었다. 적어도 12세기까지는 철학과 구분되는 신학은 없었으며, 이전까지 신학은 ‘철학적 신학’의 의미로 볼 수 있다. 

교부들은 그리스도교를 철학의 한 형태로, 더 나아가서 ‘참된 철학’으로 보았으며, 스스로를 ‘철학자’로 여겼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철학자 중의 첫 번째 철학자’였으며, 사도들도 마치 철학자처럼 묘사되기도 했다. 이처럼 그리스도교는 단순히 도구로서 철학의 외투를 입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철학의 한 형태라고 여겨진 것이다.

 

다시 대두되고 있는 그리스도교 철학

 

초기 교부들은 이러한 ‘그리스도교 철학’이라는 개념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 개념은 스콜라 철학 전성기(13세기)에 이르러 신학과 철학이 각자의 전문 분야로 분리되면서 잊혀 있다가, 20세기 초에 다시 대두되었다. 특히 20세기 초에 질송과 마리탱과 같은 철학자들은 그동안 철학과 신학의 엄격한 분리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계시의 내용을 철학의 개념으로 이해 가능하다는 관점에서 ‘그리스도교 철학’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피력하였다. 결국 그리스도교 철학에 대한 문제는 역사적으로는 초기 교부들의 사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문제이며, 근본적으로는 ‘철학이 무엇인가’라는 철학의 자기 이해와 관련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철학이 중심으로 가져 온 ‘내적 인간’ 개념

 

그리스도교는 철학하는 데 있어서 내적 인간이라는 주제를 중심적인 위치로 가져 왔다. 이는 그리스도교 철학의 주요 관심사가 내적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첫 5~6세기의 그리스도교에서 인간의 의식과 오늘날 윤리적인 감정들이라고 부르는 것, 특히 인간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신적 근원에 대해 눈을 돌렸으며, 이후 수많은 세기동안 이러한 관념은 우리의 정신적 삶을 고유한 방식으로 오늘날까지 규정하고 형성해 왔다. 따라서 이러한 주체성의 사유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내면세계는 우리 시대의 철학에서 재발견되었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에서 그러하다. 바티모는 옛 형이상학으로부터 근대로의 전환은 그리스도교의 출현에서 미리 예정되어 있었다고 보았다. 그리스도교가 자연 세계에 대한 철학적 관심의 중심을 인간의 내면으로 옮겨 놓았다고 보는 것이다. 

 

책 속으로

 

칼 라너, 발타사르와 같은 현대의 위대한 신학자들도 교부들과 같은 생각으로 철학적인 개념을 사용해서 그리스도교 사상을 전개시켰다. 왜냐하면 교부들이 그렇게 생각했듯이, 신학의 내용은 필수적으로 철학의 개념과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철학을 통해서만 비로소 신학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13p '해제' 중에서

 

일반적으로 교부들은 사도 시대 이후 8세기까지 그리스도교의 저술가들을 일컫는 용어로서, 시기적으로 고대 시대(antiquitas)에 살았고, 정통적인 교의(doctrina orthodoxa)를 주장했으며, 거룩한 삶(sanctitas vitae)의 모범을 보임으로써 교회로부터 인정(approbatio Eclesiae)받은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시대적으로 사상적인 면에서 그리스도교 안에서 활동했던 학자들을 포괄적으로 의미한다

― 17p '해제' 중에서

 

20세기에 들어와 ‘그리스도교 철학’의 이념과 개념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이 논쟁은 수십 년간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 논쟁을 통해 확립된 것은 사실 이미 19세기에 신중하게 준비된 것이었다. ‘그리스도교 안의 철학’을 수립하기 위해 엄청난 시도를 감행한 피히테, 쉘링, 헤겔에게서 이것이 구체화되었다는 것에 누가 이론을 제기하겠는가! 이 철학자들은 그리스도교 철학을 수립하는 것을 철학의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그리스도교 철학(christliche Philosophie)과 그리스도교 안의 철학(Philosophie des Christentums)을 구분했다

― 69p '입문' 중에서

 

철학을 익히 알고 있는 논리학, 윤리학, 자연학으로 세분화시킨 것은 플라톤으로부터 유래한다. …… 이와 같이 철학을 구분하는 것을 그리스도교 철학의 원전인 구약과 신약 성경 자체에 적용했다. 여기서는 성경 말씀의 학문 이론적 지위에 대해서, 그러니까 성경이 제1원리들의 지위를 차지하는지, 또는 어떤 다른 학문적 지위를 지니는지 하는 물음을 포괄적인 의미로 논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경이 교부들에게 있어서 철학의 최고 형태를 명시한다는 점은 그리스 철학의 세분화가 성경 자체에서 재인식될 수 있다는 점으로 귀결된다. 우리에게는 성서적인 것과 그리스적인 것, 성경과 철학이라는 두 가지 사안으로 보이는 것이 교부들에게 있어서는 하나였다. 양자 사이의 대립은 오늘날 신학자들 자신이 말하듯이, 신학자들이 생각해 낸 것이었다.

― 153-154p '성경도 철학이며, 부분영역에서 세분된다' 중에서

 

내적 인간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논의의 근간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이다. 이 서간에서 바오로 사도는 ‘외적’ 인간에서 벗어나 매일매일 ‘내적’ 인간으로 새롭게 완성되는 것에 대해서 말한다. 《로마서》에서도 내적 인간의 법을 정신의 법으로 논의하고 있다.

― 165p '세 분야의 통합적 지향점으로서 내적 인간' 중에서

 

내적 인간에 대한 그리스도교-신플라톤주의적 형이상학의 영향사를 가장 중요한 국면에 따라 추적하려고 한다면, 하이데거가 자신의 ‘존재의 형이상학’을 공공연히 이러한 전통에 대한 관점에서 계획했다는 점도 우리는 고려해야 한다. 하이데거의 주저인 《존재와 시간》이 담고 있는 것으로서, 염려, 염려하는 신중함, 현존재의 일상성, 현존재의 실존적인 양상들, 소문, 호기심, 애매함이 나타내는 현상들은 고대 후기와 중세의 실천적 형이상학의 전통에 대한 관련성 없이는 이해될 수 없다.

― 313p '정신적인 봄(에폽티): 내적 인간의 형이상학' 중에서




서 문 … 9

해 제 … 11

 

그리스도교 철학, 주체성의 발견 … 65

  입 문 … 67

1. 그리스도교 철학은 논쟁적 개념인가 … 67

2. 그리스도교와 포스트모더니즘 … 71

3. 내적인 것의 환원 불가능성 … 81

  I. 그리스도교 철학: 교부적 모델 … 96

  II. 그리스도교 철학: 삶의 방식 … 110

  III. 그리스도교: 대중을 위한 플라톤주의 … 123

  IV. 그리스도교: 가장 오래된 철학 … 140

  V. 성경도 철학이며, 부분 영역에서 세분된다 … 153

  VI. 세 분야의 통합적 지향점으로서 내적 인간 … 163

  VII. 인간의 의식(에피노이아) … 177

  VIII. 기억 또는 잃어버린 자아에 대한 추구 … 198

  IX. 내적 언어 … 208

  X. 믿음과 신뢰 … 219

  XI. 의도와 지향 … 236

  XII. 후회 또는 참회와 부끄러움 … 246

  XIII. 내적 인간에게 가장 내적인 것: 양심 … 257

  XIV.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꽃” : 용서 … 268

  XV. 원죄, 죽음, 그리고 재탄생 … 279

  XVI. 정신적인 봄(에폽티) : 내적 인간의 형이상학 … 290

  맺는 말 … 314

 

부 록 … 317

약어 … 319

색인 … 320

미주 … 328

지은이 테오 코부쉬 (Theo Kobusch)

독일어권의 대표적인 중세 철학자로서 철학사, 형이상학, 자유와 인격, 종교철학, 윤리학, 언어철학등 다양한 철학 분야를 연구했으며, 특별히 플라톤과 신플라톤주의의 철학적 전통과 중세 철학의 연관성에 역점을 두고 연구해 왔다. 튀빙겐, 보쿰, 밤베르크, 본 대학 등에서 오랫동안 철학을 가르쳤고, 에어푸르트와 노트르담의 성 루이스 대학의 초대 교수도 역임했다.

1986년부터 진행되어 완간된 독일어판 《철학의 역사 사전》(HWPh)의 편집자이기도 하다. 중요한 저서로는 《인격의 발견》(1997), 《중세 전성기와 후기의 철학》(2011) 등이 있고, 수많은 논문과 공저들이 있다. 현재 본 대학의 고전 전통 센터(CCT)와 중세 센터를 맡고 있다.

 

옮긴이 김형수

부산교구 신부로서 독일 뮌헨 예수회 철학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부산 가톨릭대학교에서 철학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니콜라우스 쿠사누스의 신 인식과 자기 인식》이 있고, 역서로는 《신앙과 이성적 통찰》(로베르트 슈패만, 롤프 쉔베르거 지음), 《신비주의의 근본 문제》(바이어발테스, 발타사르, 하스 지음), 《신의 바라 봄》(니콜라우스 쿠자누스 지음), 《예수의 유산》(마인라트 림베크 지음), 《그리스도교의 인간상》(요셉 피퍼 지음), 《왜 인격들에 대해 말하는가》(로베르트 슈패만 지음, 공역) 등이 있으며, 그 외 다수의 철학 관련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