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자연을 감각하는 시인
자연 한 잎을 뜯어 짓이겨 상처에 바르는 날
우주 한 잎으로 통증을 싸매는 밤
천둥소리도 밥 끓는 소리나 마찬가지
후려치는 빗줄기도 싸하게 입안을 맴도는 동치미 한 사발
-「무심함」에서
시인은 자연을 감각한다. 감정은 자연을 거쳐 온다. 봄에서 겨울까지의 피바람만 골라 뽑아 목에 겨누는 칼, 심란함이다. 잎새에 매달려 들어가지도 못하고 뛰어내리지도 못한 채 떨고 있는 물방울, 외로움이다. 시인은 자연 한 잎을 뜯어 짓이겨 상처에 바르고, 우주 한 잎으로 통증을 싸맨다. 바람의 생일날에는 개조개를 넣고 미역국을 끓인다. 장시「한강이 나에게 이르노니」에서, 시인은 한강이 되어 말한다. “어루만져 주세요 이 강! 당신들의 물이에요 아시는지?” 한강이 된 시인은 우는 이들을 품어 안고, 새들이 물어 온 이야기를 들으며, 빗장 없는 몸이 되어 몇억 년을 흐른다. 자연과 함께 시인은 아득하고 심란하고 무심하고 짜릿하다. 막막하고 불안하다가도 눈부시다. 모든 감정은 ‘너’와 함께 나에게 온다.
■ ‘너’ 존재하므로 ‘나’ 바라봄 가능하기에
까무룩한 등
내가 닿지 않는 곳
눈(眼) 하나 달아 주고 싶은 곳
나는 나의 뒤에 서서 나의 허리를 향해
왈칵…… 가던 두 손 멈추고
성스럽게 한번 바라보고 싶다.
-「나는 나의 뒤에 서고 싶다」 에서
간절함이 있다. “등뼈에서 피리 소리가” 나고, “열 손가락 열 발가락 끝에 푸른 불꽃이 어른”거리는 간절함이다. 시인이 그토록 간절하게 돌아보는 것은 그 자신이다. 망치 하나로 교정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생, 오자투성이 생이다. 이제 시인은 자신의 등 뒤에 서서 가장 아득한 것, 그의 생을 바라본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선이, 자신에게 “힘내”라고 말해 주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서다. ‘나’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너’가 있어야만 한다. 이때 ‘너’는 ‘나’ 아닌 모든 것이다. 풀 한 포기, 영화 한 편, 빌딩 하나, 바람 한줄기. 이 모든 것이 너다. 이 모든 ‘너’ 존재하므로 ‘나’ 바라봄이 가능한 것을 시인은 알고 있다. 내가 네게 한 말들이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시인은 시를 읽고, 적막을 끌어안고, 능선을, 강물을, 하늘을 바라본다. 그것은 도무지 쉽게 열리지 않는 문 앞에 서 있는, 그리하여 어쩌다 쉽게 문이 열리는 순간에는 깜짝 놀라 뒷걸음치는 시인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나를 향하는, 그리하여 너를 향하지 않을 수 없는 시선이 이 시집에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