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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나?

이 책은 가톨릭교회 역사상 있었던 아홉 번째 보편 공의회부터 열네 번째 보편 공의회까지 총 여섯 개의 보편 공의회 문헌들을 번역한 것으로, 중세의 후반부를 지내면서 교회가 각 시기별로 마주친 위기를 어떤 식으로 극복했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문헌들이다.
앞서 출간된 <보편 공의회 문헌 제3권-트렌토 공의회?제1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 이어 출간된 이 책은 제1~4차 라테란 공의회와 제1~2차 리옹 공의회 문헌집을 다루고 있다.  1123년 제1차 라테란 공의회는 성직 서임권에 관한 문제를 비롯하여 교회의 자유와 관련된 사안들을 다루었고, 1139년 제2차 라테란 공의회는 분열되었던 로마교회가 인노첸시오 2세를 중심으로 일치의 회복을 확고히 하려는 시도를 했다.
1179년 제3차 라테란 공의회는 다시 세 명의 교황으로 분열된 로마교회의 일치를 강화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고 동시에 교회의 개혁에 관한 수많은 법규들을 제정하였다. 또한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는 교회의 자유 확보, 아울러 로마 주교의 수위권 확립이라는 최대의 성과를 이뤘다. 교황은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이단자들과 격렬한 전쟁을 벌이겠다는 의도로 새로운 십자군 운동(개혁 운동)을 선포하였다.
1245년 제1차 리옹 공의회에서는 교황이 황제의 폐위를 주도했다. 그리고 성지의 위기와 동방 제국의 어려운 상황에 신속하게 구제책을 세웠으며, 1274년 제2차 리옹 공의회에서는 그리스인들과의 재결합, 십자군 운동, 그리고 교회의 개혁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다루었다.


공의회 역사

공의회란 교회의 사목을 맡은 주교들이 신앙과 윤리에 대한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소집된 회의로서 주교단의 단체적인 견해와 결정을 표명하는 회의다.
이 회의의 기원은 신약 성경의 사도행전에 나타난다. 사도들은 당시 유다계 그리스도인과 이방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야기된 할례법 준수 문제와 음식 규정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사도 회의를 소집하였다. 공의회는 그 문제들을 해결한 것에서 연유되었다. 주교들은 사도들의 후계자들인 만큼 각 시대와 상황 속에서 야기되는 윤리 문제들과 신앙의 이견들에 대한 교회의 권위 있는 해석과 공통된 의견을 표현하여 교회 공동체의 전체 구성원들을 지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공의회는 어떤 지역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정하기 위해 소집된 지역 공의회와 교회 전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집된 보편 공의회로 나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