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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Summa contra gentiles Liber tertius (III-1)


책 소개
『대이교도대전』은 『신학대전』과 더불어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저로 꼽힌다. 13세기 도미니코회 수사이자 파리 대학 교수였던 그는, 중세 이래 ‘천사적 박사’로 추앙받으며 교계와 사상계에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성인·신학자·철학자·교회학자다. 이 책은 총 IV권 5책(I, II, III-1, III-2, IV)으로 구성된 『대이교도대전』의 제III-1권으로, 신으로부터 피조물의 발출, 즉 창조를 다룬다. 창조는 밖을 향한 신의 활동이다. 따라서 신에 대한 더 나은 인식을 위해서라도 피조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이 책은 분명 창조의 ‘형이상학’을 내포하고 있으나, 전체 논증의 목적이 독자들에게 가톨릭 ‘신앙’의 진리를 확신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철학의 한 분야에 머무르지만은 않는다.


모든 사물의 궁극 목적은 신이다


『대이교도대전』의 제목에 대하여
『대이교도대전』은 『신학대전』과 더불어 가장 많이 전승된 토마스의 작품으로, 184개의 수사본과 20개의 파편들을 포함하고 있다. 라틴어 제목 ‘숨마 콘트라 젠틸레스’(Summa contra gentiles)에서 ‘숨마’는 본디 ‘주요 내용’ 또는 ‘요약’이라는 뜻으로, 스콜라 학자들은 ‘숨마’를 통해 그들의 학설을 엄격한 체계적 형식으로 서술했다. 『대이교도대전』의 몇몇 수사본에서는 ‘믿지 않는 이들의 오류들을 거스르는 가톨릭 신앙의 진리에 대한 책’(Liber de veritate Catholicae Fidei contra errores infidelium)이라는 제목이 사용되었다. 이 저술의 호교론적 목적만 강조하는 이들은 이를 ‘호교대전’이라 부르기도 하고, 저술 방법에 강조점을 둘 때는 ‘철학대전’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는 『신학대전』과 대비시켜 이성적 방법에 의한 가톨릭 신앙의 해명이라는 방법적 의도에 주안점을 둔 것이다. 많은 수사본이 ‘숨마 콘트라 젠틸레스’라는 제목을 선호한다. 이 제목을 토마스 자신이 붙였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매우 오래된 제목임은 분명하며, 근래 중세철학계에서는 대부분 이 제목을 채택하고 있다.


저술 연대
저술 연대 결정의 전문가인 고티에에 따르면 이 작품은 여러 장소에서 거의 7년에 걸쳐 저술되었다. 『대이교도대전』 각 권의 저술 시기는 다음과 같이 추정된다.

제I권 제1-53장: 프랑스 파리, 1258~1259
제I권 제53-102장: 이탈리아, 1259~1261
제II권: 이탈리아 오르비에토, 1261~1262
제III권: 이탈리아 오르비에토, 1263~1264
제IV권: 이탈리아 오르비에토, 1264~1265


저술 동기·의도·목적
도미니코회 수사 페트루스 마르실리우스는 1313년에 쓴 『아라곤 왕 자코모 1세 연대기』에서 도미니코회 세 번째 총장이자 위대한 법학자인 페냐포르트의 라이문두스(1175?~1275)에 관해 이렇게 증언한다.


그[페냐포르트의 라이문두스]는 비신앙인들을 개종시키려는 열망에 불타, … 전 세계 성직자 가운데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인정받는 토마스 아퀴나스 수사에게, 비신앙인들의 오류를 물리칠 수 있고 어둠의 음침한 분위기를 흩어 버리고 믿을 태세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참된 빛의 가르침을 계시할 수 있는 작품을 하나 써 달라고 청했다. 그 교수는 장상의 겸손한 청원을 받아들여 감히 능가할 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작품[『대이교도대전』]을 집필했다.


셰뉘는 『대이교도대전』이 13세기에 이슬람을 대적하는 그리스도교의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고 이렇게 덧붙인다.


이에 더해 『대이교도대전』은 특별히 아베로에스를 거슬러 기술된 것이 아니다. 검토되고 비판되어야 하는 것은, 이교도·무슬림·유대교도·이단자 등 ‘잘못된 자들’ 전체다. 그러나 아베로에스주의가 태동하던 시기였다는 연대기적 분위기를 인정한다고 해도, 적어도 이 작품이 […] 선교사들을 위한 소책자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팻푸르트는 『대이교도대전』을 이렇게 읽으라고 제안한다.


이 책은 “비그리스도인과 비신앙인들을 ‘생각하며’ 저술된 책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을 ‘지향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비신앙인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반대에 부딪치며, 그들에게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그들이 두려워했던 어려움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확신과 광범위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도록 요구받고 있다. 한마디로, 『대이교도대전』은 비신앙인을 위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교과서이며, 그리스도인과 비신앙인 사이에 ‘싹트는’ 종교일치적 시도다.”


전체 작품의 구조
『대이교도대전』의 라틴어 원전은 네 권(liber)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III권은 다른 권들에 비해 부피가 곱절이라 I, II, III-1, III-2, IV의 형태로 출판하는 것이 보통이다.
  제I권은 신을 그 자체로 고찰한다.
  제II권은 피조물이 신으로부터 창출(創出)되어 나오는 과정을 고찰한다.
  제III권은 피조물이 신으로 돌아가는 귀환 과정을 서술한다.
  제IV권은 인간적 이성의 자연적 빛을 초월하는 진리를 다룬다.


대이교도대전』 III-1권의 구성과 내용

토마스는 제I권에서 신의 존재와 신의 속성에 대해 설명하고, 제II권에서는 신에게서 발출되는 것들과 그 질서에 대해 설명한다. ‘신론’과 ‘창조론’에 해당하는 논의를 마친 후 제III권에서는 ‘섭리론’이라고 부를 수 있을 새로운 논의를 진행한다. 토마스는 신의 존재(제I권) 및 창조의 결과(제II권)가 이성의 범위 안에서 서술된 것과 같이 창조의 목적과 그것을 향한 피조물의 질서 또한 이성적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토마스에 따르면 신이 자유로운 의지로 세상을 창조했다는 말은 이 세상이 의지의 고유한 대상인 선을 향한 질서 속에 놓이게 된다는 의미다(III 1). 그렇다면 피조물의 목적인 그 선은 무엇인가? 발출된 것들은 무엇으로 회귀하는가? 이것을 밝히는 것이 제III권의 주요 내용이다. 곧, 제III권은 신이 자신의 창조를 완성에 이르게 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사물들을 통치하는지에 대한 방대한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서술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사물의 목적으로서의 신을 다루는 부분(III 2-63)이고, 둘째는 피조물 일반에 대한 신의 통치를 다루는 부분(III 64-110)이며, 셋째는 이성적 피조물에 대한 신의 통치를 다루는 부분(III 111-163)이다. 이 서술이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에, 토마스 자신이 중간 부분에서 한 번 숨고르기를 하며 논의를 정리하고 있다(83장). 『대이교도대전』제III권은 이 중간점을 기준으로 삼아 III-1권과 III-2권으로 나뉜다. 

『대이교도대전』 III-1권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창조의 목적론적 구조를 다루는 부분(2-24장)에서는 사물의 작용과 목적(2-3장), 악의 존재(4-15장), 사물이 목적을 지향하는 방식들(16-24장)을 설명한다. 인간 목적의 형이상학적 규정을 설명할 때에는(25-63장) 행복의 내용(25-37장)과 더불어 신 인식의 한계 설정(38-50장) 및 신의 영원한 관조(51-63장)를 논구한다. 마지막으로, 섭리 이론을 설명하는 부분(64-82장)에서는 섭리의 개념과 범위(64-75장), 그리고 섭리의 질서(76-82장)를 다룬다. 토마스는 이상의 논의를 간추리면서(83장) III-1권을 마무리한다.


책 속에서
존재자 중의 제일 존재자는 하나인데, 그는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존재 전체의 충만한 완전성을 소유한 이다. 그는 자신의 완전성의 풍부함으로 모든 실존자들에게 존재를 베풀기에, 존재자 중의 제일 존재자일 뿐 아니라 모든 것의 원리라고 인정된다 ... 그는 다른 모든 것들에게 본성의 필연성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의 결단에 따라서 존재를 선사한다.(91-93쪽)


모든 작용자는 현실적인 한에서 작용한다. 그런데 작용자는 작용을 함으로써 자신과 유사한 것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작용자는 어떤 현실성을 추구한다. 그런데 모든 현실성은 선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악이란 현실성을 결여한 가능성 안에서가 아니라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작용은 선을 위한 것이다.(111-113쪽)


모든 사물의 궁극 목적은 신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 각자는 각자 자신에게 가능한 그만큼 궁극 목적인 신과의 결합을 지향한다. 그런데 어떤 것은 특정 방식으로 신의 실체 자체에 닿음으로써 신과 더 긴밀하게 결합하는데, 이런 일은 [인식 이외의 방식으로] 신과의 어떤 유사성을 획득할 때보다는 신적 실체에 관해 무엇인가를 인식할 때 생겨난다. 그러므로 지성적 실체는 신적 인식을 궁극 목적으로서 지향한다.(261쪽)


신적 본질이 창조된 지성에 대해서, [창조된 지성이 그것으로서 신적 실체를] 이해하는 가지상으로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며, 이것은 그 어떤 분리 실체의 본질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신적 본질은 자연적 존재의 의미에서 다른 사물의 형상이 될 수는 없다. 만일 그렇다면 신적 본질이 다른 사물과 결합되어 하나의 본성을 형성한다는 결론이 따를 텐데, 신적 본질은 그 본성에 있어 그 자체로 완전하기에, 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지상은 지성과 합일되어 어떤 [하나의] 본성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을 이해 작용으로 완성시킨다. [그리고] 이것은 신적 본질의 완전성과 상충되지 않는다.(469쪽)


피조물이 신에게서 궁극 목적 곧 신적 선성을 향한 질서를 부여받은 한에서, 피조물은 신적 섭리에 복속되어 있다. 그러므로 피조물의 신적 선성 분유는 섭리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신적 선성은 개별적 우연자들 역시 분유한다. 그러므로 그것들에게도 신적 섭리가 닿는다는 사실은 필연적이다.(671쪽)



간행사
약어표


『대이교도대전』 해제
1.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애
2. 『대이교도대전』의 제목과 판본
  2.1 『대이교도대전』의 제목
  2.2 『대이교도대전』의 판본
3. 『대이교도대전』의 저술 시기
4. 『대이교도대전』의 집필 의도
  4.1 교수 활동 외의 저작
  4.2 『대이교도대전』 예상 독자에 관한 논쟁
5. 『대이교도대전』의 방법론
6. 『대이교도대전』의 구조
  6.1 전체 작품의 구성
  6.2 각 장의 세부 구조
참고문헌


『대이교도대전』 제III권 전반부 해제 _ 창조의 목적론적 구조와 섭리
1. 창조의 목적론적 구조(제2-24장)
  1.1 사물의 작용과 목적(제2-3장)
  1.2 악의 존재(제4-15장)
  1.3 사물이 목적을 지향하는 방식들(제16-24장)
2. 인간 목적의 형이상학적 규정(제25-63장)
  2.1 행복의 내용(제25-37장)
  2.2 신 인식의 한계 설정(제38-50장)
  2.3 신의 영원한 관조, 그 가능성과 성격(제51-63장)
3. 섭리 이론(제64-82장)
  3.1 섭리의 개념과 범위(제64-75장)
  3.2 섭리의 질서(제76-82장)
참고문헌


본문과 역주
제1장_서문 
제2장_모든 작용자는 목적을 위해서 작용한다
제3장_모든 작용자는 선을 위해서 작용한다
제4장_악은 의도를 벗어나 사물 안에 있다
제5장과 제6장_악이 의도를 벗어나 있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논거들 (그리고 그 해결)
제7장_악은 어떤 본질이 아니다
제8장과 제9장_악이 본성 혹은 어떤 사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논거들 (그리고 그 해결)  
제10장_악의 원인은 선이다
제11장_악은 선에 토대를 둔다 
제12장_악은 선을 완전히 일소하지 않는다
제13장_악은 특정한 의미에서 원인을 가지고 있다
제14장_악은 우유적 원인이다
제15장_최고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제16장_모든 사물의 목적은 선이다
제17장_모든 것은 하나의 목적, 즉 신을 향한 질서 속에 있다
제18장_신은 어떤 의미에서 사물들의 목적인가
제19장_모든 것은 신과 유사해지기를 지향한다
제20장_사물은 어떤 방식으로 신적 선성을 모방하는가
제21장_신이 사물의 원인이라는 점에서, 사물은 신과 유사해지기를 본성적으로 지향한다
제22장_어떻게 사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목적을 향한 질서 속에 있는가
제23장_천구의 운동은 지성적 원리에서 비롯된다
제24장_인식을 갖지 않은 것들 역시 선을 욕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제25장_신을 이해하는 것은 모든 지성적 실체의 목적이다
제26장_행복은 의지의 활동에 있는가
제27장_인간의 행복은 육체적 즐거움에 있지 않다
제28장_행복은 명예에 있지 않다
제29장_인간의 행복은 영광에 있지 않다
제30장_인간의 행복은 부에 있지 않다
제31장_행복은 세속적 권력에 있지 않다
제32장_행복은 몸의 선에 있지 않다 
제33장_인간의 행복은 감각에 있지 않다  
제34장_인간의 궁극적 행복은 도덕적 탁월성의 활동에 있지 않다 
제35장_궁극적 행복은 실천적 지혜의 활동에 있지 않다 
제36장_행복은 기예의 활동에 있지 않다  
제37장_인간의 궁극적 행복은 신의 관조에 있다 
제38장_인간의 행복은 다수의 인간이 공통적인 방식으로 지니는 신의 인식에 있지 않다
제39장_인간의 행복은 증명을 통해 얻는 신의 인식에 있지 않다 
제40장_인간의 행복은 신앙에 의한 신의 인식에 있지 않다 
제41장_인간은 현세의 삶에서 사변적 학문의 정진과 탐구를 통해 분리 실체들을 이해할 수 있는가
제42장_우리가 알렉산드로스의 주장처럼 현세의 삶에서 분리 실체를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43장_우리가 아베로에스의 주장처럼 현세의 삶에서 분리 실체를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44장_인간의 궁극적 행복은 앞서 말한 의견들이 상상하는 식의 분리 실체 인식에 있지 않다
제45장_우리는 현세의 삶에서 분리 실체들을 이해할 수 없다
제46장_영혼은 현세의 삶에서 자기 자신에 의해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제47장_우리는 현세의 삶에서 신을 그 본질에 의해 볼 수 없다
제48장_인간의 궁극적 행복은 현세의 삶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제49장_분리 실체들이 자신의 본질에 의해 신을 인식한다는 이유에서 그들이 신을 [신의] 본질에 의해 보는 것은 아니다
제50장_분리 실체의 자연적 바람은 분리 실체가 신에 대해서 갖는 자연적 인식에서 멈추지 않는다
제51장_어떤 방식으로 신은 본질에 의해 보이게 되는가 
제52장_어떠한 창조된 실체도 자연적 힘으로 신을 본질에 의해 보는 데 성공할 수 없다
제53장_신을 본질에 의해 보기 위해서, 창조된 지성은 신적 빛의 어떤 영향을 필요로 한다
제54장_신이 본질에 의해 보인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논거들과 그 해결
제55장_창조된 지성은 신적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다
제56장_어떠한 창조된 지성도, 신을 볼 때 신 안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지는 못한다
제57장_모든 지성은 어떤 정도든지 신의 봄을 분유할 수 있다
제58장_한 [지성은] 다른 [지성]보다 신을 더 완전하게 볼 수 있다 
제59장_신적 실체를 보는 자는 어떤 의미에서 모든 것을 보는가 
제60장_신을 보는 자는 신에게서 모든 것을 동시에 본다
제61장_신의 봄에 의해 인간은 영원한 생명을 분유하게 된다
제62장_신을 보는 자는 신을 항구히 보게 된다
제63장_저 궁극적 행복에서 어떻게 인간의 모든 바람이 채워지는가
제64장_신은 자신의 섭리로써 사물들을 다스린다
제65장_신은 사물들을 존재 안에 보존한다
제66장_그 어떤 것도 신의 힘 안에서 작용하지 않는 한 존재를 부여하지 못한다
제67장_신은 모든 작용자에서 작용의 원인이다
제68장_신은 어디에나 있다
제69장_자연적 사물들이 고유한 작용을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자들의 의견
제70장_어떻게 해서 동일한 [작용] 결과가 신과 자연적 작용자에서 비롯되는가
제71장_신적 섭리는 사물에서 악을 완전히 배제시키지 않는다
제72장_신적 섭리는 사물에서 우연을 배제시키지 않는다
제73장_신적 섭리는 결단의 자유를 배제시키지 않는다
제74장_신적 섭리는 운과 우발을 배제시키지 않는다
제75장_개별 우연자들에게 신적 섭리가 속한다
제76장_모든 개별자들에게 신적 섭리가 직접적으로 속한다
제77장_신적 섭리의 실행은 제이 원인들의 매개를 통해 일어난다 
제78장_창조된 지성적 실체의 매개에 의해 여타의 피조물이 신적 인도를 받는다
제79장_하위의 지성적 실체는 상위의 지성적 실체에 의해 인도를 받는다
제80장_천사들 상호 간의 질서
제81장_인간 상호 간의 질서 그리고 다른 피조물에 대한 인간의 질서
제82장_하위 물체들은 천체들을 통해 신적 다스림을 받는다
제83장_이상의 논의를 맺는 말


인명 색인
사항 색인





지은이 _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년경 이탈리아 남부 아퀴노 인근 로카세카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년기에 몬테카시노의 베네딕도회 수도원과 나폴리 대학에서 수학한 그는 1244년경 도미니코회 수도원에 입회했다. 이를 반대한 문중에서는 그를 일 년 동안 납치하여 결정을 철회할 것을 종용했다. 이런 난관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알베르투스 마뉴스의 지도를 받기 위해 쾰른으로 간다.
학창 시절, 과묵하고 몸집이 커서 ‘벙어리 황소’라는 별명이 붙어다녔다. 토마스의 탁월한 재능을 간파한 알베르투스는 “우리는 그를 ‘벙어리 황소’라 부르지만 언젠가는 그의 이론이 울부짖는 소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질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토마스는 1256년 신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파리 대학을 필두로 강의·설교·저술에 정진했다. 1259년부터 이탈리아로 돌아가 여러 도시에서 강의했고 1269년에는 두 번째 파리 대학 교수직을 맡아 1272년까지 가르쳤다. 일생에서 가장 왕성하게 학문 활동을 한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아리스토텔레스 해석을 둘러싸고 일어난 파리 대학 인문학부 교수와 신학자들과의 논쟁에 깊이 개입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토마스는 1274년 리옹 공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중 포사노바의 한 수도원에서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1323년 시성되었으며, 1879년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영원하신 아버지」에 의해 그의 사상이 가톨릭 교회의 공식 학설로 인정되었다.


주저 『신학대전』과 『대이교도대전』 외에도 토론 문제집, 성경 주해서, 아리스토텔레스 주해서, 논쟁적 저작 등, 방대한 저작이 전해진다.


옮긴이 _ 김율


서울대학교 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뮌헨 예수회철학대학에서 수학했으며, 레겐스부르크 대학교에서 중세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논문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의지의 자기 운동」(Selbstbewegung des Willens bei Thomas von Aquin)은 뮌헨 대학교 그라프만 연구소가 간행하는 ‘중세 신학 및 철학 연구 총서’(Veröffentlichungen des Grabmann-Institutes zur Erforschung der mittelalterlichen Theologie und Philosophie) 제51권으로 베를린 아카데미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2004년 귀국 후 현재까지 서양 고대와 중세의 형이상학, 윤리학, 미학에 대한 연구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약 35편 발표했다. 서울대학교와 서강대학교에서 7년간 강사로 일했으며,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보스턴 칼리지 로너간 연구소(Lonergan Insti­tute)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레겐스부르크 대학교 철학연구소에서 객원교수로 연구했다.

지은 책으로는 『서양 고대 미학사 강의』, 『중세의 아름다움』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제1부 90-102문, 『자연의 원리들』, 『신앙의 근거들』, 버나드 로너간의 『은총과 자유』,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랑과 책임』, 에르빈 파노프스키의 『고딕건축과 스콜라철학』, 알버트 침머만의 『토마스 읽기』, 랄프 매키너니의 『그리스도교 윤리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