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 입문, 새 눈을 열어 주다
구약성서를 소개하는 새 책이 나왔다. “조금 알거나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얼마나 쉽게 쓰였기에 이런 부제가? 아쉽지만 기대만큼(?) 쉽게 쓰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책은 구약성서에 대해 조금 알거나 처음 대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가득 안겨 주기보다, 이제 읽으려는 구약성서의 남다른 특성을 분명하게 일러 주려 한다. 구약성서 전체와 낱권들이 지닌 고유한 특성을 올바로 아는 것이 그들에게 더 필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장 루이 스카 신부는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구약성서를 평생 가르친 노교수이자, 세계적으로 저명한 구약성서 전문가다. 오랜 강의 경륜과 전문가의 식견으로, 이제 현대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이 이해하기 쉽게 현대 문화와 비교해 가며 구약성서를 소개한다.
책은 “왜 성경을 읽지 않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특히 구약성서에 담긴 낯선 표현, 당혹스러운 내용에 놀라 그 책을 덮으려는 이들에게, 저자는 독자를 당황케 하는 여호수아기의 한 단락을 예로 들어 그런 내용이 진정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친절하게 알려 준다. 이어 저자는 방대한 도서관을 보유한 고대 근동의 강대국에 맞서 자기네 정체성을 표현한 다양한 장르의 글을 모은 구약성서를 작은 규모의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이라 부르면서, 그 형성 과정과 배경, 히브리 성경과 그리스도교 구약성경의 차이점을 일러 준다.
구약성서의 첫머리에 놓인 오경을 저자는 “이스라엘의 헌법”이라 부른다. 왜 아브라함이 이스라엘의 조상인지, 왜 성조가 세 명으로 소개되는지, 왜 요셉을 창세기의 “미국인”이라 부를 수 있는지, “예언자 모세”와 기원 이야기가 지닌 중요성 등등에 대해 구약성서의 절정이자 토대인 오경의 다양한 특성을 바로 알게끔 자세하게 소개한다.
저자는 역사서를 ‘구성된 역사’로 일컬으며, 그 안에 실려 있는 왕정에 대한 상반된 두 갈래 목소리와 함께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의 멸망을 보는 편집자의 시각을 들어 역사서를 읽는 눈을 일러 준다. 또 예언자를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당대의 문필가, 기자, 편집자, 여론 형성가”라며, 그들이 당대에 전한 메시지의 알짬과 공통점, 전승 과정을 소개한다. 또 “이스라엘의 정신적 지도자들”이 쓴 여러 지혜서의 특성을 각각 언급한다. 예컨대 잠언은 ‘간식’ 같은 역할을 한다고 지적하며 코헬렛을 그리스의 디오게네스와 비교한다. 마지막으로 시편, 애가, 아가 같은 이스라엘의 시가들과 비교적 늦은 시기에 쓰인 역대기, 에즈라-느헤미야기, 마카베오기, 다니엘서 등을 그 시대 상황과 연관하여 소개한다.
고대 근동 문화와 이스라엘 역사라는 넓은 바탕과 연관하여 구약성서의 특성을 일러 주는 이 책은 비교적 술술 읽히나 그 깊이는 만만치 않다. 이 책을 여러 번 읽은 뒤에 구약성서를 읽거나, 구약성서를 읽다 다시 이 책을 읽으면 둘의 상호작용에서 얻는 열매가 풍성할 듯하다. 구약성서의 문턱에서 기가 질리거나 그 안에서 헤맨 이들은 이 책을 통해 구약성서를 보는 새로운 눈을 뜰 수 있다. 그들을 위한 저자의 안내는 시종 따뜻하고 찬찬하며 익살스럽다.
책 속으로
이 새 입문서가 목표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는 성경을 처음 읽는 이들을 위하여 간단한 도구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성경과 별로 친밀하지 않은 독자가 제기하는 첫 번째 질문에 대답하려는 것이다. 둘째는 성경을 비판적으로 읽도록 도와주려는 것이다. 달리 말해 본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생겨나는 문제들을 피하기 위하여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12쪽
성경은 사실상 이스라엘 백성의 핵심 문헌들을 수집해 놓은 문고이다. 성경은 이를테면 ‘국립도서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의 문서고’(Archivio di Stato)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국립도서관이라고 지칭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문서고라는 단어는 특정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서고는 행정에 관한 수많은 본문을 포함하지만, 도서관은 특히 문학 본문들을 모아놓은 곳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무엇보다도 문학 본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24-25쪽
이스라엘에서 세상의 기원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동기는 문화적 경쟁심이라고 부를 수 있다. 어떤 경쟁심을 가리키는가? 단순하게 표현하면, 이스라엘은 위대한 문명들, 특히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위대한 문명들로 둘러싸인 작은 국가였다. 이 위대한 문명들과 접촉하기 시작할 때, 이스라엘은 그 문명들의 우수성을 분명히 의식한다. … 이스라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상의 창조주는 우리 하느님이시다! 우리에게도 창조 이야기가 있다!”
81쪽
역사서들 또는 ‘전기 예언서들’은 이스라엘이 땅과 독립을 빼앗긴 이유를 설명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이유 때문이기도 한데, 역사서들은 이스라엘이라는 존재가 지닌 영원한 가치, 곧 모세의 율법에 포함되어 있는 영원한 가치들을 강조한다.
129쪽
위대한 예언자들은 우리 시대에 매우 중요한 여론 형성가, 곧 권력을 자주 비판하며 권력자들에게 짓밟힌 근본 가치들을 옹호하는 사람과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보수주의자와 국수주의자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백성의 가장 귀한 보화들을 보호하는 일을 충실하게 책임지는 모습과 언론 자유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161쪽
이 관점에서 볼 때, 시편은 성경 도서관에서 특권적 위치를 차지한다. 시편은 성경의 서정시들을 더욱 광범위하게 수집한 것으로서 인간 감정의 한층 폭넓은 표현을 보여 준다. 그러나 모든 시편이 개인 감정의 표현인 것은 아니다. 많은 시편이 공적 행사, 예를 들어 임금의 왕위 즉위식(시편 110편), 전례 축일(81편), 군주의 혼인(45편) 등을 기념하기 위하여 편찬되었다. 여하튼 시편들은 개인의 삶과 공적 삶에서 이스라엘 정신(anima)의 심층을 표현한다.
197-198쪽
묵시문학은 절망적 상황에서 생겨난 독특한 문학 유형이다. 역대기에서처럼 이상화된 과거에서, 또는 예를 들어 시편 1편에서 이상적으로 명확히 나타나는 것처럼 토라 연구에 몰두하는 현재에서 은닉처를 찾기가 더는 불가능하다. 어느 정도 인접한 미래에서, 그리고 저편에서, 곧 전능한 하느님에게서 오는 개입으로부터 희망의 동기들을 찾으려 한다. 냉혹하고 비인간적인 역사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는, 하늘에서 유래하는 표징들의 뜻을 해독하려고 한다. 미래에는 사건들의 흐름이 바뀔 것이며, 억압자들은 그들의 행위에 걸맞는 대가를 치를 것이고, 억압받는 이들은 더 나은 때를 맞게 될 것을 희망한다.
240-2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