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가? 지금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나? 나는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떻게 살고 있나? 수없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들….
지금의 시대는 완벽을 원한다. 외모부터 인성까지 모든 면에서 완벽을 요구한다. 완벽해지려고 할수록 작은 실수 하나 용납할 수가 없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죽을힘을 다한다. 매일 그렇게 우리는 전쟁 같은 상황을 맞닥뜨리며 치열하게 살고 있다. 그 삶 뒤로 슬픔, 절망, 회의, 허무, 아픔, 눈물을 숨긴 채.
이 책은 세상의 요구에 맞춰 완전한 사람이 되기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불완전한 내 모습에 하느님 은총이 찾아올 빈틈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영성 에세이다.
저자는 자신의 한계, 모자람, 약함, 상처 등 부족한 모습 그대로 하느님 앞에 서라고 초대한다. 죄스러운 마음을 숨기고, 없애려고 하기보다 하느님 안에서 그 모든 것을 대면하고 인정하며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안내한다.
상처를 진주로 변화시키기
불순물이나 모래가 조개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으면, 조개는 방어력이 없는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외투막(진주층)을 분비해 불순물을 감싸고 감싼다. 그 결과 빛나고 가치 있는 아름다운 진주가 만들어진다. 진주는 조개의 상처가 아물면서 만들어지므로, 만일 조개가 상처를 입지 않는다면 결코 진주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빛나고 귀한 진주는 조개가 상처를 입을 때 고통 속에서 태어난다.
우리 내면에는 얼마나 많은 상처와 불순물이 있는가? 상처를 아물게 하는 유일한 길은 사랑으로 감싸는 것이다. 사랑이야말로 본질적인 것이다. 자신에게 들어온 불순물을 성장의 계기로 삼는 유일한 방법은 ‘진주’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불완전함 속으로 들어오시는 하느님
이 책에 등장하는 예화들, 성 예로니모의 이야기며 칼릴 지브란의 ‘어느 광인의 이야기’ 중 한 대목은 무척이나 인상적이고 감동적이다. 또한 모세, 기드온, 다윗 등 성경의 인물 이야기가 책의 흐름을 더 부드럽게 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살인자요 말더듬이였던 모세는 한계가 있음에도, 당신 백성을 이집트에서 끌어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소년 다윗은 전쟁으로 단련된 군인이 아니었지만, 골리앗과 싸워 이겼다. 또 다른 중요한 인물은 판관 기드온이다.
기드온이 속한 므나쎄 지파는 말단 지파였고, 그의 가문도 보잘것없었다. 기드온은 자신에 대한 신뢰도 적었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도 부족했다. 그러나 하느님으로부터 하느님 백성을 구원하라는 소명을 받는다. 또 타마르, 라합, 룻, 밧 세바는 이방인, 창녀 등 사회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여성들이었지만 예수님 탄생의 연결고리가 되는 일을 해낸 사람들이다.
성경의 수많은 인물들이 ‘약함의 논리’를 확인시켜 준 것처럼, 완벽한 사람이 아닌 불완전한 사람들에게 은총을 베푸신 하느님의 역사가 이 책에서 펼쳐진다.
하느님 눈에 우리 모두는 다 불완전하다. 하느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신다. 자신의 불완전한 모습을 제대로 인정하고 하느님께 나를 맡겨드려야만 주님이 내 안으로 들어오신다. 하느님은 부족하고 빈틈이 있는 그대로의 나에게 은총을 베푸신다.
여기저기, 이곳저곳 구멍이 숭숭 뚫린 흠 많은 나를 주님께 봉헌한다. 제게 다른 무엇을 원하십니까 묻는 예로니모에게 “내가 너를 용서할 수 있도록 너의 죄를 다오.”라고 말씀하신 하느님 앞에 나의 죄를 봉헌한다. 주님이 용서하실 수 있도록.
흡사 완벽 강박증에 사로잡힌 것 같은 우리 각자에게 예수님은 이런 위로의 말씀을 하시는 듯하다.
“네가 버리고 싶은 너의 부분을 사랑하라. 그 부분을 사랑으로 감싸라. 그러면 마침내 너는 네 안에 소중한 진주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상처를 인식하고 사랑으로 감싸면, 네 안에 간직하고 있는 보물을 느끼게 될 것이다.”
책 속으로
복음은 현실을 배우는 학교다. 예수님은 우리가 쓴 가면을 벗겨주기 위해 오셨다. 세상의 눈에는 부족하고 어리숙하게 보일지라도, 있는 그대로의 우리가 되도록 우리를 해방하기 위해 오셨다.
24쪽
빛은 장애물이 있을 때 스스로 드러난다. 현명한 움직임은 충돌이나 마찰이 있을 때 참됨이 저절로 드러난다. 하느님께서는 죄가 있는 곳에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다! 바로 자비를 통해서다.
32쪽
회개한다는 것은 죄 짓기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에서 하느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다.
69쪽
하느님 사랑을 체험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삶에서 하느님을 기억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극적인 상황에 처하게 될 때, 다시금 그분의 사랑을 기억할 것이고 이미 우리를 구하신 그분의 손에 우리 자신을 맡길 수 있을 것이다.
80쪽
우리 각자는 부서지기 쉽고 약한 만큼 하느님께서 기대하시는 무엇인가를 자신 안에 가지고 있다. 세상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보잘것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활동 안에서 일하신다. 우리를 대신해서 활동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의 자유를 아주 많이 존중하신다.
84쪽
하느님의 사랑은 실제적이다. 우리가 약하고, 죄인이며, 부서지기 쉽고, 불행하며, 추한 모습일 때 우리는 하느님의 어리석은 방식으로 사랑받는다. 하느님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신다! 사랑이 불가능할 것 같은 볼품없는 상황에서도 우리를 사랑하신다.
86쪽
우리는 빈 단지이지만 그 안에 횃불이 있다면,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부富는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우리는 빈 단지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성 바오로가 말하듯이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는 보물처럼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의 빛이 빛나게 된다.
96쪽
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가난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우리를 보호하던 또는 자신의 이미지와 오만을 방어하던 무기를 내려놓는 진실한 행동이다.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을 인정하는 데서 솟아나오는 눈물은 우리의 역사 안에 개입하시려는 하느님께 동의하는 것과 같다.
104쪽
우리의 꿈은 다시 사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번 다시 살더라도 사랑 없이는 결코 새롭게 살지 못할 것이다. 우리를 새롭게 살게 해주는 것은 ‘여러 번의 삶’이 아니라 사랑하며 살아가는 단 한 번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