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헌 주교가 나누어 주는 진솔한 마음의 소리
이기헌(베드로) 주교(의정부교구장)가 오랜 기간 사목자로서의 삶의 체험을 나눈 묵상 수필집이다. 가족, 성소, 기도, 친구, 영성적 주제를 진솔하고 친근감 있게 풀어내고, 신앙 성숙에 도움이 되는 내용과 민족화해에 대한 간절한 염원 등 이기헌 주교의 소박함과 따듯함이 묻어나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본문 그림(구민정) 또한 먹그림 특유의 담백함으로 글의 감동을 더한다.
평생 자녀들이 하느님 자녀로 살아가기를 늘 기도하신 어머니, 동창 신부의 진심 어린 눈물로 오랫동안 냉담한 교우의 마음을 움직인 일, 군종신부 때 사제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많이 외로워했던 시절, 자신을 그렇게 힘들게 했던 그 외로움이 참 의미 있는 일이었고 또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해주는 큰 선물이었음을 깨달았던 일, 묵주기도의 추억 등 잔잔하던 수면 위에 작은 파문이 번지듯 소소한 마음의 소리를 들려준다.
오래전부터 사목자다운 수필을 쓰고 싶었습니다.
사목현장에서 만난, 착한 사마리아인과 흡사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며,
라자로의 죽음을 슬퍼하며 우시던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글을 쓰는 시간은 살아온 날들을 꺼내어 보는 시간입니다.
앞으로도 글 쓰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싶습니다. _ 저자의 말 중에서
이 책은 이기헌 주교가 꺼내 놓는 신앙과 삶, 추억의 조각들을 오목조목 맞춰 이은 고운 조각보와 같다. 바쁜 일상 속 ‘사무치게 그리운’ 추억 한 조각 살포시 꺼내어 보는 건 어떨까.
책 속으로
성모님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뒤로 언제나 어머니 모습이 떠오릅니다. 어떤 때는 어렸을 때 제 손을 잡아주시던 젊은 어머니 모습으로, 어떤 때는 백발의 웃음 가득한 할머니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평생 고생을 하며 사셨지만 어머니에게는 성모님이 계시고 하느님이 계셨기에, 고통이나 가난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하느님과 더 가까워지게 해주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 15쪽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는 일처럼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고통받는 사람을 마음에 담고 한 단 한 단 바치는 묵주기도야말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말씀처럼 놀라운 기도이며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기도입니다. - 30쪽
그날따라 성당에서 비치는 성체등 불빛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 성체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괜한 서러움이 몰려와 “예수님, 정말 힘듭니다” 하며 밤늦게까지 예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차츰차츰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습니다. “언제라도 힘들 때는 나에게 오너라”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 40쪽
남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사제가 보여준 눈물이었습니다! 자칫하면 습관적으로 하게 될 수도 있는 사제 직무이지만, 정성과 마음을 다해 직무를 수행한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제 직무를 행하며 불행한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제는 행복합니다.” - 51-52쪽
대기의 미세먼지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에 끼는 먼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맑은 영이 되려면 미세먼지처럼 우리 마음을 어둡게 하거나 더럽히는 생각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조용히 기도에 잠기는 시간은 영을 맑게 하는 시간입니다. 말로써 나를 아프게 하거나 자존심을 상하게 한 사람을 용서하고, 순결하지 못하거나 욕심스러운 마음은 떨쳐 버려야 합니다. 이때 ‘주님, 제 영을 맑게 해주소서’라는 화살기도를 되뇌면 좋을 것 같습니다. - 77-78쪽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교황이 되기 전에 고해성사를 줄 때면 성사를 보는 사람들에게 종종 “자선을 해보았나요?”라고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네”라고 대답을 하면 이어서 “그 사람의 눈을 쳐다보았나요?”라고 묻고, 또 그렇다고 대답하면 “그 사람의 손을 잡아주었나요?”라고 물었다 합니다. 우리가 작은 자선을 행할 때도 따뜻한 마음과 형제애를 가지고 해야 된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가르침인 듯합니다. - 96쪽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께 복음의 씨를 받았습니다. 하느님께 받은 씨가 자라나는 곳은 본당입니다. 하느님 은총의 비로 촉촉이 땅을 적시고 기도생활과 성사를 비료 삼아 우리가 받은 복음의 씨앗이 열매 맺게 해주는 곳이 본당입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부지런히 밭에 가듯 우리는 본당을 찾아가야 하고, 농부가 땀 흘려 밭을 갈듯 우리는 기도와 사랑의 실천으로 신앙의 밭을 갈고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 112-113쪽
우리 교회도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위한 사목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합니다. 높은 청년 실업률이 말해주고 있듯이 좌절과 의욕상실로 힘들게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예수님이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청년들에게 다가가야 하겠습니다. - 134쪽
하느님 앞에서 사람은 그가 생전에 어떠한 사람이었든 간에 하느님의 자비가 필요한 미소한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빌어주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 없이 외롭게 버림받은 이분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 146쪽
책을 내면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어머니/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 장미꽃 한 송이를 바치는 것처럼/ 묵주기도의 추억/
아름다운 성체조배/ 의미 있는 외로움/ 오늘과 내일을 이어주는 소중한 다리/
건강할 때 기도 많이 하게/ 함께 울어주는 이/ 사제 어머니의 기도/ 천사들이 부러워하는 복사/
최초의 신학교/ 그 여름방학의 추억/ 행복한 영적 독서/ 제 영을 맑게 해주소서/ 수도원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친구 김정훈 부제를 생각하며/ 손을 잡아주었나요?/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 우리 본당/ 하늘나라의 헌법/
어느 프랑스 주교님의 당부/ 세상의 빛과 소금/ 그리스도인의 초심/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형제의 마땅한 도리/ 사그라들어도 잊을 수는 없는/
적군 묘지 미사/ 신 베드로 할아버지/ 사무치게 그리운
글쓴이 : 이기헌 주교
1975년 사제품을 받았다. 1999년 주교로 서품되어 제2대 군종교구장에 착좌하였고, 2010년 제2대 의정부교구장으로 임명되었다. 현재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와 선교사목주교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