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서론
Ⅰ. 연구의 목적
혼인과 가족은 제도로서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발전하였다. 수 천 년 동안 각 사회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혼인은 사회를 유지시키는 기본 제도로서의 기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혼인은 산업혁명 이후 개인주의가 발달하고 사회적 다양성이 확산되면서 농업에서 공업으로, 다시 도시화, 산업화로 인해 사회의 구조가 개편되면서 제도적 필요성이나 사회적 기능 등 관련된 모든 사항에서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였다.
현대사회에서 혼인과 가족은 과거로부터 일반적·보편적이라고 여겨지던 개념과 가치관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를 보여 주고 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성 간 결합 형태를 혼인의 당연한 모습으로 여겨왔던 기존의 관념과 이러한 부부의 결합을 전형적인 가정으로 보아 오던 전통적 가치관은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변화가 좀 더디기는 해도 사회변화에 기초한 전 세계적인 흐름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혼인에 대한 관념과 가치관에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혼인의 기피, 이혼율의 점증, 결손가정의 증가, 자녀출산의 포기 등의 현상으로 인해 혼인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 의미와 목적은 상당 부분 약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 존립의 근거가 되는 가족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사회구성의 기초이자 기본 단위인 가족과 그 출발인 혼인은 국가가 보장하고 보호해야 한다(헌법 제36조 1항). 그렇지만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에 기초해야 할 혼인과 가족생활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응답해야 할 수많은 과제를 안고 있으며, 기존의 혼인·가족질서에 도전하는 움직임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을 전제로 할 때 국가공동체의 번영과 국민의 행복 증진을 위해 바람직한 혼인과 가족형태의 탐색 작업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혼인과 가족형태에 도움을 주기 위한 입법과 제도적인 지원책을 중심으로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혼인 기피 현상과 이혼에서 유래되는 가족의 해체는 국가의 존립 기반을 흔드는 중차대한 문제이다. 사회라는 조직의 최하위 단위인 가족공동체의 해체는 최상위 단위인 국가공동체의 붕괴와 직결된다. 매년 높아져 가고 있는 한국의 이혼현상은 우리 사회의 아름다운 미래를 담보할 수 없게 만들 것이다. 따라서 혼인해소 내지 이혼에 대한 대비책과 대안을 마련해야 할 예방적 책무는 국가의 구성원인 모든 국민의 의무이다.
이 논문에서는 한국의 혼인과 이혼 현실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한국의 이혼 관련법과 교회법의 상호 비교를 통하여 현실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한국의 법체계와 가톨릭 교회법의 법체계는 비교하기가 쉽지 않다. 입법의 역사와 배경 등 여러 방면에서 다르기도 하지만 법의 생성과 성장 및 소멸의 근본원리부터 차이가 크기 때문에 넘을 수 없는 한계도 있다. 그렇지만 혼인과 가족 관련법에서의 기본적인 지향점이 일치한다면 국가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입법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비교 연구는 필요하고 이 연구는 가족해체 예방에 관한 정책과 제도의 마련에 이바지할 것임이 분명하다.
혼인과 가족형태의 다양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가운데도 교회법은 오래도록 지속되어 온 혼인과 가족형태를 일관되게 지속·유지하고 있다. 전통적 혼인관을 2000년 역사 이래 지금까지 굳건히 수호하고 있는 교회법에 비해, 한국의 국가법은 시대와 사회변화에 부응하여 혼인관련 법률을 계속 정비해 왔고, 지금도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를 안고 있으며 제도 변화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현재 혼인과 가족의 복지적 측면을 지향하며 국가공동체의 아름다운 번영을 위한 예방책을 마련해야 할 시급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해체를 방지할 수 있는 정책과 제도의 모색을 위해 양 법의 비교를 통한 대안을 마련하는 일은 국가의 번영과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고 시민들의 건강한 혼인관 정립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이혼으로 야기되는 가족해체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혼인과 가족관에 대한 양 법에서의 법리적 검토를 정리한 후 혼인 유대와 가족해체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 것이 이 연구의 첫 번째 목적이다.
이 논문의 두 번째 목적은 교회법적으로 혼인한 부부가 갈등을 겪는 상황에서 영속적인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데서 등장하는 법적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 위한 데 있다.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신자는 교회법을 준수해야 하는 동시에 국가법을 준수해야 한다. 즉 가톨릭 신자인 한국인이 혼인을 하기 위해서는 교회법상의 혼인법과 한국민법상의 혼인법 양 법제가 규정하는 혼인성립을 위한 요건을 충족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혼인의 성사성과 불가해소성을 인식하고 출발한 가톨릭 신자의 부부관계도 때로는 파탄에 이르기도 하고, 이혼을 인정하고 있는 민법에 따라 기존의 혼인관계를 종료하고 재혼을 하는 것도 현실이다. 국가법인 민법에 따라 이혼을 하였더라도 그것은 교회법상 용인될 수 없고, 재혼한 사실은 교회법상 혼인의 장애상태에 해당하여 신앙생활에도 막대한 지장을 주게 된다. 혼인의 성사성과 불가해소성을 위반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인간들을 위해 교회법은 혼인무효선언을 통해 이들을 불완전한 신앙생활에서 해방의 길로 이끌어 왔다고도 할 수 있다.
민법에 따라 이혼했지만 가톨릭교회 안에서 혼인한 당사자는 교회법에 따른 혼인무효선언을 받아야 보다 완전한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민법에 따라 이혼한 신자가 재혼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교회법원에서 혼인무효판결을 받지 않더라도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데 문제는 없다. 그러나 민법상 재혼을 하기 위해서는 교회법원을 통한 혼인무효선언판결이 필수적이다. 이런 점에서 민법상의 이혼과 교회법상의 혼인무효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교회법에서도 혼인무효는 혼인이 처음부터 혼인으로서의 효력을 갖지 않는 것으로 파악한다. 즉 처음부터 교회법상의 혼인유대는 성립되지 않았던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민법에서의 혼인무효와 같다. 교회혼인법은 혼인무효에 의한 혼인유대의 해소 외에도, 완결된 성사혼에서와 같이 배우자 일방의 사망에 의하거나, 신앙의 수혜를 위해 교회의 권한자에 의한 특전(特典, )에 의해 혼인이 해소되는 경우를 인정하고 있다. 사망에 의한 해소는 민법에서도 마찬가지이고, 후자는 민법상의 이혼에 의한 혼인해소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법리상으로는 혼인무효가 당연무효이고 그 원인이 성립요건 위반이라는 점에서 이혼과는 구별된다. 그러나 혼인이 처음부터 무효라고 하더라도 무효로 확인되기까지 유지되어온 혼인생활 사실 그 자체까지 소급적으로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는 무효로 확인되어야 부부관계가 종료된다. 더군다나 교회법에 따른 혼인무효선언이 필요하게 되는 것은 민법에 따른 이혼이 선행되었을 경우이므로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이 논문에서는 혼인해소·혼인유대의 해소를 크게 사별에 의한 경우와 이별에 의한 경우로 나누고, 후자에는 혼인성립요건위반에 따른 혼인무효·취소, 이혼, 교회법전 제1142조부터 제1149조에 따른 혼인해소가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넓은 뜻으로 혼인해소·혼인유대의 해소라는 말을 쓰고, 이와 구별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혼인무효·취소, 이혼, 좁은 뜻에서의 혼인해소·혼인유대의 해소라는 말을 해당되는 경우에 따라 개별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Ⅱ. 연구의 의의와 선행연구
오늘날 한국 가족법체계에서 당연시되어 왔던 혼인과 가족의 형태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실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이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는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특히 그렇다면 전통적 혼인과 가족형태를 흔들림 없이 고수하고 현재까지 수호하고 있는 법제와의 비교연구는 이러한 도전을 극복해 나가는 데 기초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이혼 관련법과 가톨릭교회법의 혼인유대해소에 관한 법을 비교 분석해 가족해체의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한국과 가톨릭교회 양 법제의 혼인관련 법률의 공통점과 유사점 및 차이점을 면밀히 살펴본 후 가족해체를 최소화하고 방지할 수 있는 국가의 정책과 지원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며 여기에 교회가 담당할 수 있는 역할을 찾기 위한 기본적인 접근이 될 것이다. 먼저 이와 관련된 기존의 선행연구를 정리해 본다.
혼인에 관련된 민법과 교회법을 비교한 선행연구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대별된다. 첫 번째는 교회법상 혼인규정에 중심을 둔 시각으로 민법과 상호 비교하는 방식이며, 두 번째는 교회법과 민법을 동일한 선상에서 상호 비교하는 방식이다.
전자에 속하는 연구로는 전장호(1999), 유종필(2002), 김성표(2012), 박석일(2016)의 논문을 들 수 있다. 전장호는 민법과 교회법을 중심으로 혼인합의의 하자에 의한 혼인해소를 주제로 다루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혼인의 중요성과 신성성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유종필은 교회법전에 명시된 혼인 개념의 이해를 통해 올바른 혼인관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혼인파탄과 가족 파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을 탐구하였다. 특히 이 연구에서는 혼인 개념에 대해 역사적으로 정교하게 고찰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혼인의 본질에 대한 인식의 중대성을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리고 김성표의 논문은 교회법과 민법에 나타난 혼인합의를 비교한 연구인데, 특히 사목자가 교회혼의 완전한 거행을 위하여 당사자들의 완전한 혼인합의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관점에서 현실을 전제한 의미 있는 연구라고 평가된다. 박석일은 교회법에 기초하여 이혼자와 재혼자를 위한 사목적 배려에 관한 연구를 하였다. 가톨릭교회법의 적용을 받는 신자의 경우 이혼이 원칙적으로 불가하지만 사회적으로 이미 이혼하고 재혼한 사람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론 측면에서 가치 있는 연구라고 할 수 있다.
후자에 속하는 연구로는 신성근(1999), 서정훈(2011), 이용성(2002), 한동일(1999), 전장호(2008) 등의 연구가 있다. 신성근은 한국민법상 혼인과 교회법상 혼인 개념에 대하여 전반적인 비교 검토를 하였다. 그는 입법론적 관점에서 혼인의 개념이 민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분명한 혼인 개념의 명시를 주장하였으며, 이러한 주장은 법 현실을 전제로 할 때 일종의 정책적 제언으로서의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서정훈은 교회법과 한국민법에 나타난 혼인계약에 관한 비교연구를 통하여 교회법에서 적시한 혼인의 본질적 측면과 한국민법에 나타난 혼인의 의미에 대하여 계약적 측면을 부각하여 상호 비교하고 있다. 이 연구는 혼인생활의 영속을 위한 사목적 배려를 전제하고 이를 법 정책적 측면에서 접근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용성의 연구는 한국의 혼인 관련 규정과 가톨릭교회의 혼인법을 포괄적으로 비교 연구한 결과물이다. 그는 혼인과 이혼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교회법의 제도를 민법에 참고하여 입법하는 방안을 주장하였는데, 교회법과 민법의 합리적인 교섭에 대해 논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동일은 민법상 금지된 혼인에 대하여 한국천주교 사목지침서의 관련 내용을 가지고 고찰하였다. 이는 교회법과 민법의 실질적인 공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전장호의 연구는 이혼 후 자녀양육에 관하여 검토한 것인데, 한국에서 이혼한 후의 자녀양육에 대한 정책적 측면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이혼 가족에서 책임지지 않는 자녀양육의 문제를 법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하는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혼인과 이혼에 관련된 해외의 국가법과 교회법의 법적 문제를 비교한 선행연구는 John T. Noonan, Jr.(1972), Abbate, L. L.(2002), Price, C.(1996), Browning, D. S.(2008), Htun, M. & Weldon, S. L.(2011), Madera, A.(2010), Miller, A.(2008), Witte, J.(2001) 등이 있다.
John T. Noonan, Jr.는 국가의 이혼제도의 진화과정과 교회법상 혼인무효선언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동시에 조망하였다. 이 연구문헌은 국가법과 교회법의 혼인해소와 관련된 비교를 위하여 기본서로 참고해야 할 중요한 연구물이다. 또한 아일랜드에서의 국가법과 교회법의 긴장관계를 동시에 비교한 Abbate, L. L.은 아일랜드의 이혼정책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는데, 가족법의 변화에서 국가와 종교의 분리적 시야를 견지해야 한다는 취지의 연구로서 그 의미가 크다. Price, C.도 유책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이혼을 인정하는 이혼법제(fault-based system of divorce)를 아일랜드 정부에 제안한다는 내용의 주장을 펼침으로써 민법상 이혼제도를 도입한 아일랜드의 가족법 변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필리핀은 민법상 이혼이 금지되어 있는데, 가톨릭교회의 법문화와 교회의 전통을 존중하면서 이혼이 국가법제도로서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Miller, A.의 연구가 있다. 그리고 여성의 인권보장을 위한 이혼제도가 종교적 관점에서 가족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Htun, M. & Weldon, S. L.과 Madera, A.의 논문이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다. Browning, D. S.와 Witte, J.는 과거의 교회 관습과 법이 현대의 가족과 국가법에도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 있으며 특히 국가법이 오해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교회법이 막연한 신앙보다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며 가부장제를 조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역사적 자료를 통해 이해시키며 혼인제도의 의도와 목적을 정의하고 옹호함에 있어 현대 법률의 입법정책과 역할을 조망하였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연구를 하였다.
목차
제1장 서론
Ⅰ. 연구의 목적 _ 15
Ⅱ. 연구의 의의와 선행연구_ 21
Ⅲ. 연구의 방법과 범위 _ 29
제2장 현대사회에서의 가정의 중요성과 혼인·가족관계의 실태
제1절 가정의 중요성_ 35
제2절 혼인·가정생활의 실태
Ⅰ. 일반적 동향 _ 46
Ⅱ. 한국사회에서의 동향_ 48
제3장 혼인성립에 관한 민법과 교회법의 비교
제1절 교회법에서의 혼인에 관한 연혁적 고찰
Ⅰ. 교회법의 개념과 적용범위 _ 65
Ⅱ. 교회법과 국가법과의 관계 _ 77
제2절 혼인성립요건에 관한 비교
Ⅰ. 서언 _ 86
Ⅱ. 필수요건 _ 88
Ⅲ. 혼인장애사유_ 130
Ⅳ. 장애혼의 효과 _ 140
Ⅴ. 장애의 치유 _ 145
제4장 혼인해소에 관한 민법과 교회법의 비교
제1절 혼인해소에 관한 교회법과 국가법 _ 157
제2절 사망에 의한 해소_ 160
제3절 이혼에 의한 해소
Ⅰ. 협의이혼 _ 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