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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베네딕토회 수녀들을 대상으로 한 피정 강론을 엮은 것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쉽게 풀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하느님의 사랑은 ‘내어줌’이라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통해 드러난다. ‘성부는 말씀이신 성자에게 자신의 모든 본성을 물려주며, 성부와 성자는 성령에게 그것을 전해준다’ 삼위일체는 사랑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존속하는 관계로 구분되지 않는다. 이러한 관계는 온전히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에서 시작한다. 사랑으로 모든 것을 내어주는 무한한 가난은 자비에서 비롯되는 위대함이다. 자기를 비운 이 자비로움은 타인을 향한 감탄으로 이어진다.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은 온전히 순수한 봉헌과 선함으로 하느님의 가난을 새롭게 발견하며 살아야 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고 더 사랑하기 위하여 우리는 매일 더 철저히 자신을 비워야 한다는 소명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다면 비워야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안에 이미 하느님이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고, 우리의 삶 속에서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소유적 자아’와 ‘근원적인 생물학’에 얽매여 있고, 또한 그곳에서 나오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대적 가난의 관점에서 복음에 접근해야 하며, 복음을 묵상해야 하며, 복음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이 절대적 가난이기에 가난의 상태에 들어선 사람만이, 가난의 아름다움에 동화된 사람만이, 가난한 영혼만이, 자신의 고유한 시각을 버린 사람만이, 하느님 안에서 자신이 녹아 없어지게 된 사람만이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신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인간이 자신에게 집착하는 한 자유에 이르지 못한다. 하느님은 우리가 동의해야 우리 안에 뿌리를 내리실 수 있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동의할 때 비로소 우리의 삶 안에서 하느님의 생명은 퍼져나가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은 하느님을 알아가는 시간이며, 하느님과 일치해 나가는 여정이다. 알수록 무한한 그분의 사랑을 입고 그분의 자유를 누린다.

 

“그리스도인의 얼굴은 기뻐하는 얼굴이어야 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은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마련된 일종의 휴가인 것입니다. 삶과 기쁨은 동의어입니다. 기쁨과 사랑도 동의어입니다. 내적인 하느님은 회심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으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과거에도 아름다웠고, 항상 새로우신’ 하느님은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우리 자신이 복음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명랑해지고 밝아지고 자유로워지고 보편적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본문 가운데서)



책 속 한 구절

믿는 자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깨닫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믿는다는 것은 인간의 문제에 해답을 주는 빛을 발견하고, 그 빛에 자신의 마음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외적인 시각으로 보면서 하느님을 자신들의 한계 안에 가둡니다. 말하자면 자신들이 조작해 낸 하느님을 하느님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수도원의 진정한 이름은 공동 성사입니다. 모든 수도원은 교회에 의해 부름을 받았으며, 교회에 의해 봉헌된, 침묵과 관상이라는 공동의 성사입니다. 이처럼 수도원은 수도자들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증언은 침묵에서 나온 증언이 되어야 합니다. 명령에 의한 침묵, 완강한 침묵, 닫힌 침묵이 아니라, 침묵으로부터 말이 스스로 우러나오는 생명의 침묵을 가리킵니다. 그것을 사랑으로부터 우러나온 침묵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중심에서 사랑이신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랑의 침묵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교는 독점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온 인류가 복음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문제는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이 될 권리를 가진 모든 사람들을 위해 다루어져야 합니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은 너무나 강해, 시간 안으로 들어와 예수님의 인성을 제물로 바치는 피로 물든 은유가 되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불멸의 하느님 사랑을 증명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우리 존재를 무로 환원시키지 않습니다. 그분은 결코 지치는 일 없이, 침묵하는 사랑과 무한한 인내심을 가지고 우리를 추적합니다.




차례

 

서문

하느님과 참다운 나

한 분이지만 고독하지 않은 하느님

예수님의 인성과 삼위일체

교회 안의 예수님, 예수님 안의 교회

보편적 마음을 위한 성체성사

아가페를 위하여

투명함이 주는 기쁨




글쓴이 : 모리스 젱델 Maurice Zundel

1897년 스위스 뇌샤텔에서 출생. 1975년 로잔에서 선종.

철학 박사, 전례 전문가, 신비가, 시인, 저술가, 다수의 저서가 있음.

스위스, 프랑스, 이집트, 레바논 등에서 피정 지도와 강의를 함.


옮긴이 : 이순희

성균관 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졸업

2013년 제17회 한국가톨릭학술상 번역상 수상

「내 안에 나보다 더 가까이 계시는 분을 찾아서」(성바오로, 2003)

「제자와 사도의 길」(가톨릭 출판사 2009)

「신학방법」(가톨릭 출판사 2012)외 다수의 번역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