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행이 내게, 혼돈과 공허 그리고 삶과 사람들에 대한 허무감에 싸여 있던 내게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을까?
2000년 11월, 삼십대 후반의 작가 공지영은 유럽 수도원 기행을 제안받는다. 18년 만에 교회와 신앙 그리고 하느님에게 돌아간 무렵, 그리고 무엇보다 어린 아이들을 둔 엄마로서의 생활에 지쳐 가던 무렵이었다. “유럽의 수도원에 가서 한 한 달만 쉬었다 왔으면 좋겠다”고 친구에게 넋두리를 한 다음 날 낯선 이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렇게 주소 몇 개와 전화번호 몇 개만 들고 한 달간의 긴 여정에 나선다. 이 여정은 18년 동안 방황하던 자신을 되돌아보고 신을 대면하는 시간이었다. 프랑스, 스위스, 독일 수도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자신과 인간 그리고 신에 대한 성찰을 담담하고도 세심한 필체로 풀어내고 있다.
중학교 때 스스로 성당에 찾아가 열심히 신앙을 키우던 저자는 대학 시절 종교가, 신이 엄혹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절망감에 교회를 떠난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구원이 찾아온다. 교회를 떠난 지 18년 만이었다. 구원은 고통과 함께 왔다. “구원은 이렇게 벼랑에 몰린 연후에야 … 강도와도 같이, 납치범과도 같이, 고문자와도 같이 왔다.” 그 고통의 나락에서 들려온 신의 목소리는 그녀의 삶을 영원히 바꾸어 버렸다.
하느님을 다시 만나고 우연처럼, 운명처럼 수도원 기행이 시작되었다. 이 여행에서 저자는 그동안 외면했던 신앙이, 어릴 적 성당에서의 체험이 자기 삶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깨닫는다. 수도원의 고요와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그동안 마음속에서만 묻고 또 물었던 삶의 의미, 고통과 기다림의 의미가 밖으로 터져 나온다. 이 여행은 그렇게 의미를 찾는 여행이 되었다.
사람을 만나고 나를 만나다
저자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스스로를 철창에 가둔 이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국에서 수도 생활을 하는 이들, 아무 조건 없이 낯선 이에게 친절을 베푸는 이들, 오랫동안 알아 왔지만 여행 중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이들, 갑작스럽게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들, 삶의 무게와 현실의 막막함에 힘들어하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들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수도원 기행의 첫 목적지인 프랑스 아르장탕 노트르담 봉쇄 수녀원에서 스스로를 철장 안에 가두고도 ‘좋아 죽겠는 표정’이신 수녀님들을 만난다. 솔렘 수도원에서는 아름다운 그레고리오 성가를 들으며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스스로를 비정하게 철창 안에 묶어 두는 수도자의 고독을 생각해 본다. 리옹에서 냉담하는 신자인 자신을 되돌리기 위해 애쓰셨던 이혜정 수녀님과 7년 만에 재회한다. 수녀님과 리옹 대성당과 가르멜 수녀원, 마콩 수녀원을 둘러보고, 개신교와 천주교를 아우르는 초교파 공동체인 테제공동체에서 하루를 묵는다. 휘장과 수천 개의 초로 장식된 아름다운 성당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기도하는 젊은이들을 만난다.
스위스 프리부르 ‘길 위의 성모 피정의 집’에서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프리부르에서 만난 알리 아주머니의 소개로 찾아간 시토회 메그로주 수녀원에서 파안대소하는 하는 예수상을 보고 단순하고 소박한 신앙을 되새긴다. 가난한 수도원을 기대하며 찾아간 오트리브 수도원은 실망감을 안겨 준다.
반나치 시위를 벌였던 숄 남매의 자취를 좇아 독일 뮌헨대학교에 들러 자신의 대학 시절을 떠올려 본다. 아름다운 호수 킴제 섬에 있는 프라우엔 킴제 수도원을 주버 여사와 함께 방문하고, 그의 동생과 열띤 토론을 벌인다. 독일 북부 함부르크로 이동하여 한인 교포 사회에서 빌려 쓰고 있는 독특한 함머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다. 공산주의를 피해 서독으로 온 수녀님들이 귀족의 별장 마구간을 성당으로 개조해 쓰고 있는 독특한 딘클라게 스콜라스티카 수녀원을 방문한다. 마지막으로 마리아 선교회 마리엔하이데 수도원과 한국인 비안네 수녀님이 계신 팔로티회 마리엔보른 수녀원을 찾는다.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
한 달의 유럽 수도원 기행을 담은 이 책은 아름다운 풍경이나 세상과 동떨어져 외로이 수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형태의 삶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이 제각기 제 궤도를 최선을 다해 돌고 있을 때 세상은 혹여 살 만한 곳일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었다.” 수도원이라는 신비롭고 고요한 공간에서 저자는 다양한 삶의 모습, 의미를 찾는 사람들을 만난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소망한다. “지친 사람들, 삶의 의미를 찾다가 실의에 빠진 사람들, 따뜻함과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한때 삶을 미워했던 내 자신의 이야기가 그런 사람들에게 혹여 위안이 될 수 있기를 바라 본다.”
개정증보판을 내며
들어가는 글
내 영혼은 어디론가 가고 싶어 했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곳으로
아르장탕 가는 길
노트르담 봉쇄수녀원
18년 만의 영성체
모순의 극한에 조화가 있다
생 피에르 드 솔렘 수도원
이 파리
여기 서 있는 그대, 화해하십시오
리옹
테제, 꿈 하나만 믿고 이룬 공동체
사람을 만나고 나를 만나다
길 위의 성모 피정의 집
프리부르
메그로주 수녀원 그리고 오트리브 수도원
비발디의 도시
베네치아
보다 큰 자유, 보다 큰 진리
뮌헨, 백장미 두 송이
프라우엔 킴제 수녀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은 누구나
함부르크
스콜라스티카 수녀원
사랑은 스스로 찾아온다
이상한 영명 축일
마리엔하이데 수도원
마리엔보른 수녀원
후기
글쓴이 : 공지영
1988년 계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 『도가니』 『즐거운 나의 집』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봉순이 언니』 『착한 여자』 『고등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 등을 썼고, 소설집 『인간에 대한 예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별들의 들판』, 산문집 『딸에게 주는 레시피』『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르포르타주 『의자놀이』, 앤솔로지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다』 등을 썼다. 21세기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오영수 문학상, 앰네스티 언론상 특별상, 한국가톨릭문학상, 월간 『문학사상』에 발표한 「맨발로 글목을 돌다」로 2011년 이상문학상,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로 제25회 한국가톨릭매스컴상(출판부분)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