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귀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2014년 2월 20일과 21일 이틀간, 프란치스코 교황의 초대로 열린 추기경단 임시 회의에서 발터 카스퍼 추기경이 한 강연을 토대로 구성한 책이다.
‘복음화의 맥락에서 본 가정에 관한 사목적 도전들’이라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주제는 시급한 사목적 질문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복음 자체와 세례 받은 모든 신자가 받은 복음화 사명이라는 토대 위에서 전체적으로 연관성 있게 다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 가정의 상황들, 특히 어려운 상황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답변을 미리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질문을 자극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 강연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것도 아니고 시노드Synodos, 곧 교회 전체 공동의syn 길odos의 결과를 미리 제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시노드는 교회 전체가 함께 걷는 공동의 길, 곧 서로 경청하고 의견을 나누며 함께 기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 강연은 주제로 이끄는 서곡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서로 다른 음들이지만 어느 순간에 조화를 이뤄내는 심포니Symphony를 교회에 선사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강연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저자는 피력한다.
가정은 가정에 관한 복음을 선포하는 최선의 전령
책의 구성은 창조질서 안의 가정, 가정 안에 있는 죄의 구조들, 그리스도교 구원계획 안의 가정, 가정교회로서 가정, 이혼 후 재혼한 이들의 문제까지 모두 5장으로 되어 있다. 이 중에서 ‘이혼 후 재혼한 이들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누구나 공감하는 현실적인 문제로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정은 교회를 필요로 하며, 교회 또한 사람들의 삶에 존재하기 위해 가정이 필요하다. 가정교회 없이 교회는 구체적 삶의 현실에서 소외된다. 그래서 교회를 가정교회로 이해하는 것은 교회의 미래와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바탕이 되는 것이다. 가정은 가정에 관한 복음을 선포하는 첫 번째이자 최선의 전령傳令이며, 교회의 길이다.(54-55쪽)
교회의 미래를 생각할 때 파탄에 이른 가정의 증가는 커다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혼 후 재혼한 이들의 문제는 매우 복잡하고 고통스럽다. 이 문제를 당사자들의 영성체 허용 문제로 축소시켜서는 안 된다. 이 문제는 혼인과 가정 사목과 연관된다. 혼인과 가정 사목은 청년 사목에 포함되어야 하며 거기에는 혼인과 가정에 대한 기본적인 교리교육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에 이어서 부부와 가정에 대한 동반 사목도 거론되어야 한다. 부부와 가정이 위기에 처할 때 동반 사목은 현실성을 얻게 되며, 사목자는 위기에 봉착한 부부나 가정의 치유와 화해를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해야 한다.
무엇을 위해 교회가 있는가?
이혼 후 재혼한 이들이 첫 번째 혼인생활에 실패한 것을 뉘우친다면, 그리고 첫 번째 혼인의 법률상 구속력이 명백히 해결되어 원래 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또한 두 번째 혼인인 사회혼에서 발생한 법률상 구속력을 새로이 죄를 짓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지만 온 힘을 다해 신앙인으로서 성실하게 살려고 애쓰면서 자녀들을 신앙 안에서 키우려 한다면, 그리고 성사를 살아갈 힘의 원천으로 여기며 갈구한다면, 새롭게 방향을 정립하는 시간을 가지게 한 후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베푸는 것을 어떻게 거부할 수 있을까?
이혼 후 재혼한 이들 가정의 아이들이 자신의 부모가 성사에 참여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면, 그들 또한 고해성사나 성체성사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에게도 교회가 여태껏 고수해 온 관행이 비생산적인 것이 되는 것은 아닐까?
만일 어떤 여인이 아무 죄도 없이 이혼당하고 자녀들을 위해―아빠가 필요하므로―재혼을 하였는데, 신앙생활에 모범적이고 자녀들을 그리스도교적으로 키우려고 애쓰는 반면, 신자면서도 종교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는 사람이 재혼을 한 경우, 이 두 가지가 똑같은 상황일까? 이 상황에서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교회는 민법에 따른 이혼 후 어렵게 홀로 살아가는 이들을 위로하고 동반하며 모든 측면에서 지원해야 합니다. 새로운 형태의 가정교회가 이를 위해 큰 도움이 되어주고 새로운 둥지에 정착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96쪽)
교회에서는 사목적 현명함과 지혜를 가지고 영적 식별을 할 것을 요구한다. 개별 인격과 개별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각 상황에 따라 세심하게 식별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레시아로 이끄는 도전
교황은 현대의 가정에 대한 시노드 교부(敎父)들의 논의 과정을 돌아보고, 가정이 복합적이며 진지한 연구가 필요한 사안임을 밝히면서 오늘날 가정의 현실과 도전, 교회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교회의 현대 세계에서 가정의 소명과 사명에 관해 ‘사랑의 기쁨’은 파레시아(parrhesia, 진실의 용기, 즉 어려움이 있을 것을 예상하면서도 더 나은 결말을 위해 진실을 말하는 용기)로 이끄는 도전이다. 즉, 대담하고, 두려움 없이 가정에 관해 대화하라”고 초대한다.
바로 이 부분, 파레시아로 이끄는 도전이 무엇인지 더 정확하게 알리고자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가정에 관한 주교 시노드에서 교리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지닌 많은 추기경에게 중요하게 제기될 문제들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곧 『가정에 관한 복음』은 파레시아,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내야 할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88쪽 참조)
이 강연 내용은 여러 해에 걸쳐 사목자들과 혼인이나 가정 문제 상담가들, 그리고 그런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부부, 가족과 가진 대화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러나 속 시원한 처방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가능한 한 공감 가는 해결책을 이끌어 내려면 많은 단계가 필요하다.
앞으로 열릴 주교 시노드가 성령의 이끄심으로 모든 가능한 관점들을 신중히 검토하여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있는 좋은 길을 제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또한 사람들의 기대와 바람에 부응하기 위해 문을 조금이라도 더 열어야 하고, 적어도 수많은 진심 어린 그리스도인들의 희망과 질문, 그리고 고통과 눈물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신호를 주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발터 카스퍼 추기경이 말하는 이 강연의 핵심이요 논지다.
일러두기 및 약어표
들어가는 말
가정에 관한 복음 새롭게 발견하기
1. 창조질서 안의 가정
2. 가정 안에 있는 죄의 구조들
3. 그리스도교 구원계획 안의 가정
4. 가정교회로서 가정
5. 이혼 후 재혼한 이들의 문제
나가는 말
성가정에 드리는 기도
첨부 1: 포괄적 신앙 / 첨부 2: 초대교회의 관행
강연을 마치며
후기 |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주註
글쓴이 : 발터 카스퍼
1957년 로텐부르크 주교좌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고 1964년부터 1989년까지 뮌스터 · 튀빙겐 대학교 교의 신학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부터 1999년까지 독일 로텐부르크-슈투트가르트 교구장을 지냈으며 1999년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사무총장으로 임명되었다. 2001년 추기경에 서임되어 2010년까지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의장으로 재직했으며, 교황청 신앙교리성과 종교간대화평의회 등의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정신과 가장 잘 맞는 신학자로 알려져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신론과 삼위일체론』, 『일치의 성사: 성체성사와 교회』, 『발터 카스퍼 추기경의 자비』 등이 번역되어 있다.
옮긴이 : 이진수 신부
2001년 6월 마산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오스트리아 그라츠(Graz Karl-Franzens Universität)에서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 대한 성서신학 주제로 석사학위(2001년), 마카베오 4서와 요한묵시록에 대한 비교 논문으로 ‘신구약중간사’ 분야 박사학위(2004년)를 취득했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의신학 및 성서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나자렛 예수 」2를 번역했다.
가톨릭신문 ㅣ주정아 기자 ㅣ 2016년 6월 16일
“가정은 교회를 필요로 하며, 교회 또한 사람들의 삶에 존재하기 위해 가정이 필요합니다. 가정교회 없이 교회는 구체적 삶의 현실에서 제외됩니다.”
발터 카스퍼 추기경은 또한 “이 때문에 교회를 가정교회로 이해하는 것은 교회의 미래와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바탕이 된다”고 강조한다. 가정이 있어야만 사람들이 교회를 ‘집’이라 여기면서 드나들 수 있다는 말이다.
세계적 신학자인 발터 카스퍼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구하는 사목적 노력과 정신에 가장 잘 맞는 신학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이혼 후 재혼한 신자들이 원활한 성사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회가 적극적으로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한 신학자로도 유명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014년 2월 추기경단 임시회의 강연자로 카스퍼 추기경을 초대했다. 당시 강연은 2014년 세계주교대의원회(시노드) 임시총회와 2015년 본 총회에서 다룰 사목적 토론에 신학적 토대를 제공하는 시도였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노드 교부들이 현대 가정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을 돌아본 후 가정이 복합적이고 진지한 연구가 필요한 사안임을 재차 밝힌 바 있다. 이어 “현대 세계에서 가정의 소명과 사명에 관한 ‘사랑의 기쁨’은 ‘파레시아’로 이끄는 도전”이라면서 “대담하고 두려움 없이 가정에 관해 대화하라”고 강조했다.
‘파레시아’(parrhesia)는 진실의 용기, 즉 어려움이 있을 것을 예상하면서도 더 나은 결말을 위해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뜻한다. 카스퍼 추기경은 바로 이 ‘파레시아’로 이끄는 도전이 무엇인지 보다 정확하게 알리고자 「가정에 관한 복음」(이진수 신부 옮김/104쪽/7500원/바오로딸)을 썼다. 내용은 2014년 추기경단 임시회의에서 펼친 강연을 토대로 구성했다.
당시 카스퍼 추기경은 여러 해에 걸쳐 사목자들, 혼인과 가정 문제 상담가들, 그런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부부 및 가족들과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강연을 했었다. 강연 후 즉석에서 대화도 진행했다. 그러나 카스퍼 추기경은 속 시원한 처방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해결책을 이끌어 내려면 많은 단계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책을 통해서도 카스퍼 추기경은 우선 “무엇을 위해 교회가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예를 들어 혼인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모든 이성적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는 상황이라면, 혼자가 된 이들이 자녀들 때문에라도 새 배우자가 필요해 새로운 출발을 했다면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카스퍼 추기경은 “이혼 후 재혼한 이들의 문제는 ‘영성체 허용’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매우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설명한다. 혼인 및 가정 사목 전반에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책에서는 창조질서 안의 가정, 가정 안에 있는 죄의 구조들, 그리스도교 구원계획 안의 가정, 가정교회로서 가정, 이혼 후 재혼한 이들의 문제 등에 관해 의견을 밝혔다. 현대 가정의 상황들, 무엇보다 어려운 상황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위기에 봉착한 부부나 가정의 치유와 화해를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권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