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너무나 부족한 존재임을 잘 알기에 매일매일 절망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고 요청하신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냥 하루하루 작은 죄라도 짓지 않고 살아내야 하는 것만도 버거운데 어떻게 ‘완전’해지기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쯤 되면 성경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선물하는 복음이 아니라 심장과 머리를 옭아매고 두 손과 두 발을 어디다 놓아야 할지 몰라 골방에 처박혀 눈물짓게 하는 신앙포기 유도물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역시 예수님은 ‘사랑’이라는 복된 말씀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냥 혼자 내버려두지 않으신 걸 차츰 알게 된다. 바로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거룩한 본성을 나눌 수 있고,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 할 수 있도록 우리와 함께하신다. 우리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서가 아닌 성령에 의해 우리는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단순한 ‘내’가 아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으며 우리 안에는 하느님이신 성령이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비록 하느님처럼 되라는 부르심과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이해한다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예수님의 육화의 신비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성화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데 도움이 된다.
이 책에서 ‘육화의 의미’는 인간의 본성 그 자체가 너무나 존귀하여 하느님께서 그 본성을 통하여 인간으로 살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이 그저 모순투성이의 한계적 존재에만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인간성을 깊이 있게 들여다봄으로써 우리 자신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며, 하느님의 은총을 통하여 하느님의 가르침대로 살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 아버지 하느님이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육화의 신비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감으로써 우리도 우리 자신의 내적 신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으며 마침내는 하느님처럼 완전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예수님과 우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이것을 상호작용하는 그리스도론이라고 이야기한다. 온전히 인간적이 되고 온전히 거룩하게 되고자 하는 여정을 걸어가는 이들에게 이 책은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곳의 삶에서 아무리 무거운 죄를 지었다 해도,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결코 손상되지 않으며, 하느님 보시기에 우리의 가치가 절대로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천국에서 영원히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겪는 추락은 그것에 의하여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히 최고로 그리고 훌륭하게 깨닫게 되는 시험과 같다. 그런 하느님의 사랑은 단단하고 놀라워서 우리의 결함에 의하여 부서질 수 없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 책 속 한 구절
다른 이들을 신뢰하는 것은 해방을 얻는 것이다. 신뢰하지 못하면 나를 옭아매고 비참으로 내닫는다.
행복이란 자주 다른 사람들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다 : 지나치게 내 마음대로 주도하면 슬픔으로 갈 수 있다.
어떤 행위는 그것이 부적절한 자율성을 주장하는 수단이 될 때에 죄가 된다.
예수님의 원칙은 언제나 제외시키기 보다는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신뢰는 우리의 행위가 완전하거나 정상적이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덕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비뚤어진 선위에 곧게 쓰신다’는 우리의 믿음 덕분에 안전하다. 우리의 죄는 오로지 그 죄들이 우리의 안주와 자기 의존을 밀어내는 한 좋은 것이고, 이처럼 죄는 우리를 거룩한 자비의 영역 안으로 밀어 넣는다.
예수님은 유혹을 받았고 그래서 우리도 유혹을 받는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런 유혹의 체험이 일상적이라는 사실을 감추는 것은 유혹들의 내용이 우리의 삶이라는 옷감으로부터 짜이고 그래서 우리 자신만이 그것을 독특하게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혹에 저항하는 첫 번째 단계는 유혹에 깨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인간 존재이기 때문에 유혹이 우리의 몫이라는 사실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에만 유혹에 깨어 있게 될 것이다. 그런 후에 아마도 우리는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는 주님의 기도 속 청원을 더욱 열심히 기도하게 될 것이다.
■■ 차례
차례
서문
시토회 영성에 관한 소개
1. 거룩한 인간성
2. 완강하게 반항하는 몸
3. 요르단 강에서 세례 받으시다
4. 우리 자신과 타인들
5. 유혹을 받으시다
6. 반대되는 상상들
7.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다
8. 해독
9. 씨를 뿌리시는 예수
10. 섭리에 맡기다
11. 풍랑을 가라앉히시다
12. 평온한 마음
13. 배우시는 예수
14. 열려 있는 마음
15. 여기저기 다니시다
16. 애매모호함
17. 변모하시다
18. 체험을 넘어
19. 예언자 예수
20. 고백
21. 겟세마니
22. 위기
23. 버림받음
24. 벌거벗음
25. 영원으로
주석
글쓴이 : 마이클 케이시 Michael Caesey
호주 타라와라 트라피스트 수도원 수사 신부
루뱅 대학 교의 신학 박사
시토회 회헌 주요 초안자
많은 저서들이 있음.
옮긴이 :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여자 수도원
평화신문 ㅣ 2016년 2월 21일 ㅣ 박수정 기자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모범은 예수님이다. 그래서 신자들은 예수님을 닮은,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려 부단히 노력한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모두 예수님처럼 살겠다는 다짐의 표현이다. 대체 예수님이 누구시기에 이토록 우리는 예수님 ‘바라기’가 되는 것일까.
“나자렛 예수님에 관한 가장 명료한 신앙 선언 중 하나는 그분이 동시에 온전히 거룩하고 온전히 인간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신학자
마이클 케이시(호주 타라와라 트라피스트 수도원) 신부는 5세기 후반 사용된 라틴어 신경의 한 대목을 빌려 예수님을 소개한다.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은 단 하나의 인격체 안에 일치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행위는 인간의 행위이면서도 동시에 하느님의 행위가 된다.
저자는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신비를 명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육화를 기쁘게 이해하고 감사하지 못한다면 건전한
영성을 세울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19쪽).
이와 함께 저자는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의미를 인간 본성 그 자체가 너무
귀해 하느님께서 그 본성을 통해 인간으로 살고 행동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인간이 모순투성이자 한계를 지닌 존재가 아님을 명확히 한 것이다.
저자는 예수님의 인간성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서, 예수님과 같은 인간인 우리가 하느님 은총을 통해 하느님 가르침대로 살 수 있다는 용기를 전해
주고 있다. 세례받는 예수님, 씨 뿌리는 예수님, 배우는 예수님, 예언자 예수님, 유혹받는 예수님 등 다양한 삶의 순간마다 드러나는 하느님의
모습과 인간의 모습을 함께 통찰하며,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비춰준다.
“우리는 자신들의 경험을 인지하고 성찰함으로써
예수님을 날로 더 이해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삶에 드러나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더 깊이 깨달으면서 그 빛으로 우리 자신의 삶도 의미가
풍성해진다”(7쪽).
책을 관통하는 영성은 시토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저자가 속한 트라피스트회가 시토회의 한 수족이기 때문이다.
시토회는 11세기 프랑스에서 베네딕토 성인 규칙을 따르며 수도 생활 개혁과 쇄신에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