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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정신을 이해하는 데 가장 적절한 출발점이 되는 책

세계적인 신학자 발터 카스퍼 추기경이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 신학적으로 탐구한 책입니다. 자비는 하느님의 본성이라고 여겨지면서도 그동안 신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자비’가 복음의 기본 개념이며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핵심임을 밝히며, 신학이 실제 신앙생활과 연결될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키워드는 ‘자비’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출 직후부터 자비를 강조했으며 2015년 12월 8일부터 자비의 희년을 선포했습니다. 특히 그분은 선출된 후 첫 삼종 기도 연설에서 “이 책은 제게 큰 도움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책은 자비의 희년 추천 도서이기도 하기에 자비의 희년을 맞아 이 책을 읽는다면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자비에 관한 생각을 잘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이 자비로우신 분임을 깨달아 하느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자비를 원하시고 그것을 실천하기를 바라시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성경의 핵심 주제인 ‘하느님의 자비’를 신학적으로 고찰하지 않을 경우, ‘자비’라는 개념은 ‘유약한’ 사목과 영성을 가리키는 말로 여겨지기 쉽습니다. 곧 단호함이나 뚜렷한 개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마주하는 사람을 그저 어떻게든 만족시키려고만 하는, 힘없는 유약함을 가리키는 말로 전락하고 맙니다. 부드러운 태도는 냉정하고 엄격하며 규정에 연연하는 태도에 대한 반작용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용인할 만하지요. 그러나 부드러운 태도에서 거룩하신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과, 그분의 정의와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더 이상 느낄 수 없다면, 또한 긍정하는 일이 더 이상 긍정이 아니고 부정하는 일이 더 이상 부정이 아니며, 자비가 정의의 요구를 능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요구에 못 미치는 것이라면, 그럴 때 자비는 거짓 자비가 되고 맙니다. 복음은 죄인이 의롭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할 뿐, 결코 죄를 정당한 것으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인은 사랑해야 하지만, 죄는 미워해야 합니다.

-30p ‘제1장 자비: 이 시대에 필요하지만 잊힌 주제’ 중에서


지금까지 개략적으로 살펴본 문제에서 앞으로의 탐구를 위해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는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가? 우리는 ‘공감하시는 하느님, 동정심을 지니신 하느님’에 관해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무죄한 고통’과 ‘하느님의 자비’는 서로 어긋나지 않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근거로 다음과 같은 윤리적 질문도 던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우리는 어떤 행동으로 보답할 수 있는가?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복음이 교회의 실천에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교회와 신자들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 끝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도 물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복음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자비의 문화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산상 설교에 나오는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마태 5,7)이란 말씀은 무엇을 뜻하는가?”

-45~46p ‘제1장 자비: 이 시대에 필요하지만 잊힌 주제’ 중에서


하느님의 자비는 태초부터 효력을 발휘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세상에 만연한 악에 반대하는 그분의 방식이었습니다. 하느님은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악에 반대하거나 개입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자비 안에서 인간에게 삶과 축복의 가능성을 늘 새롭게 열어 주셨습니다.

-89p ‘제3장 구약 성경이 전하는 하느님의 자비’ 중에서


오늘날 십자가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싫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은 공공장소에 십자가가 걸려 있는 모습을 더 이상 보아 넘기지 못하고, 그것을 떼어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렇게 다원화된 사회의 매우 세속화된 견해를 접할 때 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건강과 행복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고통은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일까? 우리가 고통을 의식 밖으로 몰아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모든 이들을 위한 사랑과 자비의 표지인 십자가를 더 이상 공공장소에서 볼 수 없다면, 우리 사회가 특히 고통을 겪는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잃게 되는 것일까? 우리는 더 이상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이사 53,5; 1베드 2,24)라는 말씀을 떠올려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것은, 이 세상에 사랑이 현존한다는 사실과 사랑이 미움과 폭력보다 강하고 사람들이 빠져 있는 온갖 악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믿는 것은 자비를 믿는 것입니다.”

  -154~155p ‘제4장 예수님이 전하는 하느님의 자비’ 중에서


신비주의의 여정은 순례 여정이며, 부활과 하느님과의 영원한 공동체에 대한 희망으로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이처럼 신비주의는 순례자의 삶을 의미합니다. 신비가들은 종종 골고타의 어둠 속을 살지만, 신앙과 확신 속에, 하느님 곁에, 그분의 자비 안에 자리를 잡으며, 부활의 여명이 밝아 오는 것을 바라봅니다. 신비가들은 자비가 하느님께 향하는 여정의 출발지요 목적지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182쪽 ‘제5장 조직 신학적 고찰’ 중에서


십자가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 하느님의 내적 실재는 당신 자신을 비우고 당신 자신을 나눠 주는 사랑인데, 그 사랑은 당신 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주어집니다. 하느님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우리가 당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허락하실 뿐만 아니라, 성령을 통해 당신의 마음 옆에, 또한 당신의 마음 안에 우리의 자리를 마련해 주십니다.

 -176쪽 ‘제5장 조직 신학적 고찰’ 중에서


‘예수 성심 신심’이 본질적으로 다정다감한 속성, 다시 말해 긍정적 의미에서 ‘감상적’ 속성을 지녔다고 해서, 그 신심을 반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감정과 정서는 신심에 합당하고 꼭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감정과 정서를 배제할 때, 오히려 신심은 오늘날 종종 볼 수 있듯이 난잡하고 심지어 난폭한 형태를 띠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배제하거나 부끄러워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이 ‘사랑’을 으뜸 계명으로 가르치면서 말씀하셨듯이, 하느님은 우리 인간이 몸과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당신을 섬길 것을 요구하십니다(마르 12,30; 마태 22,37; 루카 10,27 참조). 신심은 결국 ‘하느님과 우리 인간 사이의 사랑의 역사’라 할 수 있는데, 사랑은 예외 없이 열정적인 것입니다.

-217쪽 ‘제5장 조직 신학적 고찰’ 중에서


따라서 ‘자비’는 의로움뿐만 아니라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자비’는 구체적으로 마주하는 역경에 세심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비’는 다른 사람들에게 육체적·영적으로 필요한 것들에 대해 무감각하고 눈멀게 만드는 자기중심적 태도를 극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비’는 다른 사람들이 처한 역경과 마주할 때 우리 안에서 느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외면하는 냉정함을 깨부수는 것을 말합니다.

  -262쪽 ‘제6장 행복하여라,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 중에서


자비의 육체적 활동들에 관해, 우리는 앞서 언급한 가난의 네 가지 차원과 개인적 가난과 구조적 가난, 그리고 매일같이 어린이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와 수백만의 사람들이 오염되지 않은 식수 부족으로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시대의 징표요 도전인 난민 문제, 다시 말해 고국에서 빈곤에 시달리다 우리에게 수용을 요청하는 외국인들을 받아들이는 과제도 생각할 수 있겠지요. 같은 맥락에서 갈수록 커져 가는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과 적대감에 맞서야 하는 과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의 수많은 대도시에 있는 노숙자와 부랑아 문제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병든 이들을 돌보라는 요구는 오늘날 의료 기관의 경제 최우선 정책 및 그를 통한 익명화 과정과 연관 지어 볼 수 있고, 감옥에 갇힌 이들을 방문하라는 요구는 형 집행 방식을 보다 인간답게 만드는 과제와 연결 지을 수 있습니다.

-353p ‘제8장 자비의 문화를 위하여’ 중에서


이 책의 내용은 제가 수행했던 일련의 피정 강의를 토대로 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주제로 한 저의 강의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지요. 그 주제에 관한 저의 신학적 연구는 피정 참가자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후 몇 년 동안 저는 그 주제에 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숙고와 연구를 통해 하느님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과 참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오늘날 조직 신학에서 성경의 핵심 주제인 ‘자비’를 거의 다루지 않거나 푸대접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조직 신학을 포함하여 대학에서 가르치는 신학 과목들은 그리스도교의 영성과 신비주의를 훨씬 많이 다루고 있지요. 그런 까닭에, 이 책에서 저는 ‘자비’에 관한 신학적 고찰을 영성적·사목적·사회적 숙고와 연결하고자 합니다.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은 새로운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젊은 신학도들이 이 책의 내용에 고무되고, 하느님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과 그에 따른 실제적 결론을 새롭게 숙고하여, 그들에게 신학과 교회의 삶에 꼭 필요한, 하느님 중심적인 사고로의 전환이 일어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와 더불어, 이 책을 통해 학문으로서의 신학과 실제 신앙생활 사이의 괴리를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원고 교정과 편집에 도움을 준, 독일 팔렌다르Vallendar 소재 카스퍼 연구소 소장 조지 아우구스틴Dr. George Augustin 신부님과, 슈테판 라이Stefan Ley, 미하엘 비닝거Michael Wieninger 선생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책을 펴내는 데 도움을 준 헤르더 출판사에도 진심 어린 감사를 드립니다.

2012년 사순 시기, 로마에서

발터 카스퍼 추기경

  -5~6쪽 ‘머리말’ 중에서

 

 

 

 

머리말

제1장 자비: 이 시대에 필요하지만 잊힌 주제
1. 자비를 갈망하는 목소리
2. 자비: 21세기의 기본주제
3. 자비: 무책임하게 경시된 주제
4. 이념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자비
5. 공감과 '컴패션compassion': 자비의 새로운 이해

제2장 자세한 고찰
1. 철학적 사고의 출발점
2. 종교사적 자취 찾기
3. 공동 기준점인 황금률

제3장 구약 성경이 전하는 하느님의 자비
1. 성경의 언어
2. 혼돈과 죄로 인한 재앙에 대한 하느님의 대응
3. 하느님 이름의 계시는 그분의 자비를 드러낸 사건
4. 하느님의 고유한 신비와 절대성을 드러내는 자비
5. 하느님의 자비와 거룩함, 저의, 신의
6. 생명과 가난한 이들을 우선시하는 하느님
7. 시편이 전하는 찬미

제4장 예수님이 전하는 하느님의 자비
1.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리라
2. 성부의 자비를 전하는 예수님의 복음
3. 자비로운 성부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 말씀
4. 우리와 모든 이를 위한 예수님의 현존
5.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 우리의 삶

제5장 조직 신학적 고찰
1. 하느님의 기본 속성인 자비
2. 삼위일체의 반영인 자비
3. 하느님께 가는 여정의 출발지이자 목적지인 그분의 자비
4.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
5.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예수 성심
6. 자비로운 마음에서 함께 고통을 겪으시는 하느님
7. 무죄한 고통과 관련한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희망

제6장 행복하여라,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
1. 그리스도교의 으뜸 계명인 사랑
2. 원수 사랑의 계명, "서로 용서하여라."
3. 자비의 육체적·영적 활동
4. 자유방임하는 거짓 자비를 조심하기
5. 가난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기
6. 그리스도교적 대속 실존인 자비

제7장 자비를 잣대로 삼는 교회
1. 사랑과 자비의 성사인 교회
2. 하느님 자비의 선포
3. 자비의 성사인 고해성사
4. 교회의 실천과 자비의 문화
5. 교회법상의 자비

제8장 자비의 문화를 위하여
1. 현대 복지 국가의 중대성과 한계
2. 교회의 사회 교리의 속행
3. 정치적 관점에서 바라본 사랑과 자비
4. 영감과 자극의 원천인 사랑과 자비
5. 자비의 활동들이 지닌 사회적 의미
6. 자비와 하느님에 관한 질문

제9장 자비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1. 복음서에 나오는 마리아에 관한 증언
2. 교회의 신앙에 나오는 증언
3. 자비의 전형인 마리아

미주
약어 표시
인명 색인 

 

 

글쓴이 : 발터 카스퍼 추기경

신학 박사. 1933년 독일에서 태어났으며 1964년부터 1989년까지 뮌스터·튀빙겐 대학교 교의 신학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부터 1999년까지 독일 로텐부르크-슈투트가르트 교구장을 지냈으며 1999년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사무총장으로 임명되었다. 2001년 추기경에 서임되어 2010년까지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의장으로 재직했으며, 교황청 신앙교리성과 종교간대화평의회 등의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신학에 관한 책을 다수 집필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정신과 가장 잘 맞는 신학자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일치의 성사: 성체성사와 교회》, 《예수 그리스도》 등이 번역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