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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의 길을 떠날 적에 주님께 힘을 얻은 자는 복되오니 메마른 광야를 지나면서도 상서로운 첫비에 젖게 되리이다”(시편 84,5-6)

「작은 사람아, 작은 사람아」는 성바오로 수도회의 두 수도자가 프란치스코 순례길을 걸으며 느낀 영적 여정을 글과 사진으로 엮어 낸 순례기이다. 무릇 떠남은 새로운 찾음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출발점이며, 익숙함과 안락함을 떨쳐내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아시시의 가난뱅이를 찾아간다.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고 가난의 고귀함을 선포했던 성인을 만나러 간다.’는 명징한 대의를 품은 수도자의 순례기는 플랫폼의 반대쪽에서, 기다리던 기차가 들어오는 것을 보며 허둥지둥 달려가 겨우 자리를 챙기면서 헐렁하게 시작한다. 그러나 때로 길을 잃어 헤매기도 하고, 엉뚱한 곳에서 버스를 내려 종일 땡볕을 걸어야만 했어도 뜻은 오롯하고 정갈하게 성 프란치스코를 향해 뻗어있다.


돈이 모든 것이 기준이 되는 세상에서 아주 다른 삶을 만나 보고픈 열망은 두 수사에게 성 프란치스코의 거룩한 가난의 비밀을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켰고 그분이 걸으셨던 길을 따라 걷게 했다. 그 길을 걸으며,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성 프란치스코를 만나 그분이 부르셨던 ‘태양의 찬가’를 노래하며, 눈에 닿는 모든 것 안에 깃들어 있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한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며 더욱 가난해 지려고 노력한 성 프란치스코를 따라 아시시에서 리에티로 그리고 로마와 라베르나를 거쳐 다시 아시시로 걸어가며 가난의 참 의미를 되새긴다.


그리고 마침내, 성 프란치스코의 대성당을 바라보며 ‘내가 없어진다는 것은 모든 곳에 있게 되는 것, 하느님 안에 들어가서 모든 이 안에 있게 되는 것’이며 ‘사랑이 그의 삶이 되는 것’이고 ‘이것이 아시시의 거룩한 빈자, 산토 포베렐로가 보여준 삶이며 하느님 속으로 사라져서 큰 하느님의 집으로 드러나게 된 작은 사람의 생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오래 머무르며 순례 길을 마무리 한다.

특별히 이 책의 좋은 점은 수도자의 깊은 내적 통찰을 통해 마치 살아있는 성 프란치스코를 만나고 있는 듯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는 데에 있다. 하늘에 계신 분만을 아버지로 부르겠다고 선언하며 입고 있던 옷을 벗어버리고, 나병환자와 입을 맞추는 가난한 이들의 친구를 생생히 만나게 한다. 그리고 ‘너는 누구의 친구이며, 누구와 함께 하고 있는지’를 물어온다. 맑은 수도자의 눈으로 순례길 곳곳에서 성인의 흔적을 살피며, 모퉁이마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은 참 나를 찾아 떠나는 피정의 순례길이 된다. 이렇듯 이 책은 독자들에게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알 수 있게 해 줄뿐만이 아니라 그분의 영성을 되새기도록 일깨우며 지금 여기서 어떻게 성 프란치스코를 살아낼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있다.
 
「작은 사람아, 작은 사람아」의 책장을 넘기다 보면 글은 시처럼 가슴에 잦아들고 사진은 그림처럼 온몸에 스며든다. 이 책은 한편의 좋은 영화를 본 듯한 진한 감동의 여운을 오래도록 전할 것이다.

 

 

책 속 한 구절

사람의 생은 누군가를 찾아 누군가를 떠나는 이야기라고 한다. 출가한 딸이든 마음속에 담은 성인이든 그 누군가를 찾아 우리는 부모를, 집을, 익숙한 것을 떠난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찾는 것을 만나게 된다. 단 진정으로 그것을 찾는 한에서만.


우리에게 간절한 것들, 때로 허기로 때로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들도 그것을 끝까지 따라가면 우리 속의 깊은 갈망과 만나게 된다. 그것은 구원에 대한 갈망, 사랑에 대한 갈망이다. 그리고 그 갈망을 따라 충실히 걷는 사람은 어느 순간 이웃에게 구원을 가져다주고 싶은 갈망을 느끼게 된다.


‘가난한 이들이야말로 마음으로 사람들을 맞아들일 줄 아는 이들이구나. 나의 가난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하느님께 가는 것도, 이웃에게 가는 것도 불가능한 거구나.’ 자기 가난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 또한 나와 다를 바 없이 가난한 사람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환대가 태어난다.


나를 깨뜨려 너를 살리는 것이 십자가의 사랑이다. 리보토르토에서 형제들과 첫 공동체를 이루어 살며 예수 그리스도의 책인 십자가를 늘 펼쳐 읽었던 프란치스코, “오로지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를 살았고 십자가의 감미로움을 맛보았으며 십자가의 영광을 설교했던” 프란치스코는 라베르나에서 그렇게 사랑하던 십자가를 닮게 된다. 사람은 사랑하는 것을 닮는 법이다.


내가 없어진다는 것은 모든 곳에 있게 되는 것, 하느님 안에 들어가서 모든 이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랑이 그의 삶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아시시의 거룩한 빈자, 산토 포베렐로가 보여준 삶이고, 그 삶의 결과가 아시시 서쪽 언덕에 장대하게 선 대성당이 아닐까. 하느님 속으로 사라져서 큰 하느님의 집으로 드러나게 된 작은 사람의 생이 아닐까.

 

 


미리보기

 

 

 

 

 

 

 

 

 

 

차례

여는말 순례의 길을 떠날 적에 _08

아시시의 거룩한 빈자를 찾아서 _13

아시시와 그 주변

우리 곁에 있는 하느님 나라 _ 레스투오이에 _21

프란치스코, 집을 떠나다(1) _ 키에사누오바 _26

프란치스코, 집을 떠나다(2) _주교관 광장 _33

나의 집을 재건하여라 -산 다미아노 _41

돌아오기 위해 떠나다 - 카르체리 운둔소 _49

너는 누구의 친구인가 - 성녀 막달라 마리아경당 _55

사랑은 형제들 속에 사신다 - 리보토르토 _63

두 개의 꿈 사이에서 - 페루지아의 감옥 터 _73

성 프란치스코의 늑대 - 굽비오_81

성 프란치스코의 작은 나무 - 성녀 클라라대성당 _90

리에티 주변

그레치오는 항상 성탄입니다 - 그레치오(1) _101

내 손에 맡겨진 하느님 - 그레치오(2) _109

하느님의 법, 인간의 법 - 폰테 콜럼보 _117

여행자 프란치스코 - 리에티 가는 길 _123

용서의 동굴 - 포지오 부스토네(1) _131

시인과 나귀 - 포지오 부스토네(2) _137

노래가 익어가는 길 - 포레스타 _145

로마

사람의 집 - 라테라노대성당 _159

작은 사람아, 작은 사람아 - 트레폰타네의 작은 자매들 _165

라 베르나

사랑을 카피하다 - 아레쪼_175

잠들기 싫은 밤 - 라 베르나 (1) _181

나를 깨뜨리다 - 라 베르나(2) _189

고별과 축복 - 라 베르나를 떠나면 _197

다시 아시시

가난의 집 - 포르치운쿨라 _205

프란치스코의 영광 - 성 프란치스코대성당 _215

에필로그 복되어라, 가난한 사람들! _220

찾아보기 _224

성 프란치스코 연보 _229

 

 

글쓴이 : 황인수 수사

성바오로수도회 수사, 저서로 「깨어나는 기도」(공저)와 번역서 「파스카」등이 있다. 성바오로 수도회 출판사 전 편집장이며 수도회에서 양성을 담당하고 있다.

 

사진 : 김선명 수사

성바오로수도회 수사로 살아가고 있는 그린 이는 나무를 좋아하고, 나무처럼 살고 싶어 합니다. 요즈음 그는 능수버들이 강가에 머리를 적시듯 그림을 그릴 수는 없을까 고민하고, 고요한 숲 속에서 하얗게 마음을 밝히는 나무처럼 하늘을 향할 수 있기를 또한 소망하고 있습니다. 나무는 하늘에 가까워질수록 땅속으로도 깊이 내려간다지요. 언젠가는 그도 나무 같은 깊이를 호흡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평화신문 ㅣ 박수정 기자 ㅣ 2015년 10월 18일

 

 

 

 

 

“돈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된 세상, 아니 ‘물신’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돈이 하느님 노릇을 하고 있는 세상에서, 아주 다른 삶을 만나보고 싶어서였다. 가난을 부인이라 여기고 자신보다 더 가난한 이를 보면 부러워하셨다는 성 프란치스코. 우리도 그분이 걸으셨던 길을 따라 걸으면서 그 삶의 비밀을 알아보고 싶어서였다.”(9쪽)

두 수도자가 프란치스코 성인의 가난의 영성을 찾고자 길을 나섰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활동했던 지역에 만들어진 ‘성 프란치스코의 길’(이탈리아 중부)을 걸으며 끊임없이 욕망을 덜어내고 누구보다 작아지려 했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되새겼다. 책은 성바오로 수도회 황인수 신부와 김선명 수사가 2011년 7월 보름간 다녀온 성 프란치스코의 길 순례기다. 황 신부는 펜을, 김 수사는 카메라를 들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고향 아시시에서 황 신부는 성인에겐 ‘가난한 성자(聖子)’보다는 ‘거룩한 빈자(貧子)’ ‘거룩한 가난뱅이’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파티의 왕’으로 불리던 프란치스코가 어느 날 하느님 부르심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가난한 사람으로 사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성인은 가난이 하느님의 거룩함을 모시는 집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은 평생 비워내는 삶이었다.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면서도 회원들에게 아무것도 가지지 말기를 강조했다. 오죽하면 아시시의 주교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니 생활이 너무 어렵고 힘들지 않느냐”며 걱정할 정도였다.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가 재물을 소유하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무기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다툼과 문제가 생기는 것은 부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형제를 사랑하는 것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도 방해를 받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물질적인 부도 원치 않습니다.”(36쪽)

성인의 삶은 모든 것이 차고 넘치는 우리네 삶을 돌아보게 한다. 아시시뿐만이 아니다. 성인이 처음으로 성탄 구유를 만든 그레치오, 작은 형제들 규칙서를 기록한 장소인 폰테 콜롬보, 죄에 대한 용서에 확신을 얻고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한 포지오 부스토네 등 성인의 발자취가 남겨진 곳곳마다 가난과 비움의 영성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황 신부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복음 말씀이 이 세상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프란치스코의 길을 다녀오고 변화된 점이 있다면 내가 고백하는 하느님이 내 삶과 하나임을 더 깊이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순례기가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을 알리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책에 담긴 풍성한 순례지 사진은 성인의 정신을 한층 가깝게 느끼도록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