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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잿더미에서 피어난 신앙의 노래


1945년 8월 9일 미군에 의해 발사된 원자폭탄이 나가사키에 떨어져, 한 도시는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한다. 20만 인구 중 80%가 죽었고, 사랑하는 아내의 목숨도 앗아갔다.

저자 나가이 다카시는 자신도 원폭 피해자이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치료하며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모범적인 삶을 산다.

「묵주알」 책에 담긴 내용은 의학 박사인 저자의 병상 일기로서, 원폭으로 인한 폐허가 인간성마저 파멸시키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이웃의 따뜻한 손길을 통해 말하고 있으며, 백혈병으로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연구와 집필을 향한 그의 사명 의식은 그의 존재 이유처럼 느껴진다. 또한 엄마 잃은 어린 자녀들을 바라보는 슬픔이 하느님을 향한 원망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를 굳게 믿는 그의 신앙으로 한 단계 더 높아져 감을 보여 주는 감동이 전해진다.

이번「묵주알」개정판은 저자의 수필집「묵주알」과「만리무영」중에서 중복되는 내용들을 간추려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책 속으로


불씨

2월 말경부터는 가는 비가 내렸다. 밥솥은 문밖에 돌을 모아서 임시로 걸어놓은 것이므로 비가 오면 장작도 재도 모두 젖어버려 불을 땔 수가 없다. 더군다나 성냥을 얻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으므로 불씨를 꺼뜨리면 큰일이다. 뺨으로 물이 흐른다. 차가운 것은 빗물이고 따스한 것은 눈물이다. 이렇게 맥없이 비에 젖어 울고 있노라니 저 건너 방공호 속에 살고 있는 아가씨가 불이 붙은 장작개비를 횃불처럼 흔들면서 달려와 주었다. 이윽고 아궁이에서 불꽃이 일고, 판잣집 안에서는 딸 가야노가 손뼉을 치며 기뻐한다. 방공호의 아가씨는 빗속으로 목을 움츠리고 되돌아갔다.

_20쪽


십자가

우리 집터 안방이었던 곳의 한쪽을 정성 들여 파 보니 역시 우리 집 제단에 모셨던 십자가가 있었다. 물론 나무는 타버렸지만 청동으로 된 그리스도상만은 손상된 곳 없이 그대로였다. 이 십자가는 도쿠가와[德川]의 박해시대 때부터 남몰래 전해 내려온 유서 깊은 것이다. 나는 모든 재산을 잃었으나 이 십자가를 잃지 않은 것이 무척 기뻤다.

_​23쪽


5전錢

폭격을 피하기 위해 입었던 방공의防空衣 호주머니에 5전짜리 동전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것이 내 전 재산이었다. 나는 그림엽서를 한 장 얻어, 나의 전화戰禍의 상황을 써서 아마구사로 돌아가는 간호사에게 그 5전과 함께 주며 고향으로 부쳐달라고 부탁했다. 그 엽서를 받아본 사촌누이 오도미[富]가 위로 편지와 함께 100원을 보내왔다. 그 무렵 내 월급이 100원이었으므로 그 금액은 상당한 것이었다. 그때 성모의 기사 수도원의 폴란드인 수사가 연금軟禁에서 풀려 시베리아에서 돌아왔다. 나는 그 100원을 그대로 수도원에 바쳤다. 그 후 1개월이 지나 수도원도 겨우 자리를 잡게 되자 나에게 성경 한 권과 성모상 하나를 보내왔다. 십자가는 기둥에 걸려 있고 성모상과 성경도 있으니, 이밖에 또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있노라니 온 우주의 재부財富를 혼자 독차지한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오도미 누이한테는 하느님께서 대신 갚아주시리라.

_25쪽

 

서문


제1부 병상일기

묵주알 

우애 

인형을 기다리는 어린이들 

인형 문답 

가야노의 양녀문제

성년聖年의 첫날에

제2부 여기당에서 한 생각 

인형 

여기당에서 한 생각 

루르드의 기적 

만리무영萬里無影 

의향意向 

죽은 아내에게 사과한다 

마음의 상처 

호랑나비의 날개 

부모의 추억 

아버지의 낙제기 

육신肉身 

과학자의 신앙

제3부 편지

제4부 26위位 성인을 기리며

역자 후기


 

글쓴이 : 나가시다카시

이웃을 내 몸같이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자신이 머물던 방을 ‘여기당如己堂’이라고 했던 나가이 다카시는 1909년 2월 2일 마쓰에 시에서 태어나 부친이 개업한 시마네 현 한세키 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현립 마쓰에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나가사키 의과대학에서 공부했으며, 1932년 의학사 학위를 받고 나가사키 의대 물리 요법과 조수로 연구를 계속했다. 1933년 단기 군의관으로 만주사변에 종군하면서 가톨릭 교리문답을 배웠으며, 1934년 귀국하여 우라카미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결혼했다. 의대 강사와 조교수를 거쳐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1946년 1월 교수가 되었으나 같은 해 7월에 쓰러져 병상 생활을 했다. 1949년 12월 나가사키 시 명예시민이 되었고, 1951년 5월 1일 선종하여 3일에 교회장을, 14일에는 나가사키 시장市葬을 치렀다. 지은 책에 「묵주알」,「만리무영」,「사랑하는 아이들을 남겨두고」,「아버지의 목소리」 등이 있다.

 

옮긴이 : 이승우

[영원한 것을], [묵주알], 외 다수의 책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