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선교 사제 신분으로 한국에 온 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소 알로이시오 신부가 죽음을 앞두고 써 내려간 마지막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57년 한국에 온 소 알로이시오 신부는 6.25 동란의 후유증으로 거리를 떠돌던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해 실로 엄청난 사업을 벌였다.
자체 교육기관(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을 가진 어린이 보육 시설인 <소년의 집>을 세워 가난하고 버림받은 아이들 수천 명을 돌보고 교육시킨 것을 비롯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무료 병원(서울의 도티병원과 부산의 알로이시오 기념병원)과 성인 부랑인 시설, 미혼모 보호 시설 등을 운영하면서 평생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았다.
그렇게 의욕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업을 펼치던 소 알로이시오 신부는 1989년, 그의 나이 59살 되던 해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진단을 받았다. 일명 루게릭병으로 알려진 이 병은 온몸의 근육을 천천히 마비시키며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무서운 병이다.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소 알로이시오 신부는 그때부터 자신의 육체적 변화와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영혼의 생각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그 녹음은 죽기 9일 전까지 계속되었고, 이 책은 그때의 녹음을 글로 옮긴 것이다.
감사의 글┃우리 삶의 본보기,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
옮긴이의 말┃하느님과 나누는 러브스토리
1장 조용히 다가오는 나의 죽음
강을 건너는 방법은 강을 건너는 것입니다· 18
춤추는 나의 오른팔· 30
내 이름을 가진 병· 36
섭리의 하느님· 45
나의 기도· 52
밤으로 가는 긴 낮 여행· 60
2장 나의 미완성 교향곡
지체하지 말고 멕시코로 오십시오· 76
총 천연색 옷을 입은 사제· 88
멕시코를 방문하다· 99
두 번째 멕시코 여행, 자체 추진력을 갖게 된 멕시코 사업· 107
세 번째 멕시코 여행, 성모님이 부르시니 주저 말고 가십시오· 117
두 번의 회갑 잔치· 128
계속된 멕시코 여행· 137
3장 고통의 성사
아름다운 선물을 주고 간 빈첸시아 수녀님· 154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167
내가 아버지에게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178
인간의 고통을 짊어지신 예수님· 186
내 친구, 루게릭병· 195
만남의 하느님이 맺어주신 인연, 성녀 젤뚜르다· 211
마지막 1.5킬로미터를 남겨 놓고· 223
소 알로이시오 슈월쓰, 여기에 눕다· 239
추모의 글┃고통 속에서도 언제나 행복했던
알로이시오 신부님을 기억합니다
마치는 글┃그의 사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글쓴이 : 소 알로이시오
마리아수녀회 창설자. 본명은 ‘알로이시오 슈월쓰 Aloysius Schwartz’이며, ‘소’는 그의 한국 성이다. 1930년 9월 18일 워싱턴에서 태어난 소 알로이시오 신부는 어릴 때부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선교 사제’를 꿈꾸었다. 그리고 1957년 사제 서품을 받은 그해 12월,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한국으로 들어와 부산 교구 소속 신부가 되었고, 스스로 허름한 판잣집에 살면서 평생을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사제’로 살았다.
그가 30여 년 동안 한국에서 한 일은 셀 수 없이 많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소년의집’사업이다. 전쟁 직후 한국은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고아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당시 한국 사회는 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은 겨우 먹이고 입히는 수준이었고, 그마저도 운영자들의 부정부패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목격한 소 알로이시오 신부는 직접 보육시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좀 더 체계적으로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마리아수녀회를 창설하였고, 수녀들로 하여금 아이들의 엄마가 되게 했다. 더욱이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자체 교육기관을 가진 보육시설을 만들어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이것이 ‘소년의집’이다. ‘소년의집’은 1969년 부산을 시작으로 1975년에는 서울로 확대되었고, 1985년 필리핀으로, 1990년에는 멕시코까지 확대되었으며, 지금은 브라질과 과테말라, 온두라스에도 소년의집이 세워져 가난한 아이들에게 돌봄과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평생을 아주 작은 사제관에서 가난하게 살았던 소 알로이시오 신부는 1989년 루게릭 병 진단을 받은 뒤 3년 동안 고통스런 투병 생활을 하다가 1992년 3월 16일 마닐라 소녀의집 사제관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1983년 막사이사이상을 받았고, 1984년과 1992년 두 번에 걸쳐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으며, 1990년 2월 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소 알로이시오 신부에게 교회 안에서의 공로를 인정해 명예 고위 성직자를 뜻하는 몬시뇰 칭호를 수여했다
옮긴이 : 김규한
그리스도 수도회, 마리아수녀회 영성지도 신부.
1956년에 태어나 1991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92년 소년의 집 지도 신부를 시작으로 소 알로이시오 신부가 시작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 뒤 그리스도 수도회 원장, 서울 시립 갱생원 원장, 파주 자활의 집 원장, 서울 시립 은혜로운 집 원장을 맡으면서 소 알로이시오 신부의 사업을 이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