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트위터’로 전하는 짧지만 뜻깊은 메시지를, 이해인 수녀가 묵상하고 기도하여 한 권의 소박한 책으로 엮었다. 교황은 트위터를
통해 한두 문장의 짧은 메시지로 많은 이들에게 직접 다가간다. 지난 4월, 우리가 겪은 아픔에 대해서도 트윗을 남긴 바
있다.
“한국에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이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기도에 여러분도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황의 ‘팔로워’는 현재 1,411만 명이고, 교황은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인용(RT)되는 지도자이기도
하다. 이토록 많은 이들의 마음에 가 닿는 교황의 트위터 메시지에, 『민들레의 영토』를 시작으로 순결한 신심과 투명한 서정으로 40년 가까이
사랑받아 온 이해인 수녀가 ‘묵상글’과 ‘기도글’을 더했다. 어느새 가난한 이들의 교황, 프란치스코를 ‘팔로잉’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목자,
교황 프란치스코의
탄생
2013년 3월 13일,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르헨티나
출신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이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베르골료 추기경이 선택한 교황명은 가난과 평화의 성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였다. 가난한 이들의 교황을 자처한 것이다. 며칠 지나 3월 19일, 새 교황은 트위터에서 이를 분명히 했다. “참된 권력은
섬김입니다. 교황은 모든 사람을, 특히 가난하고 미약하고 상처받은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이후 교황은 오랜 관례를 깨고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 종교가 다른 무슬림에게, 사제가 아닌 병자와 노인에게 세족식을 거행했고, 성 베드로 광장에서는 신경섬유종증이란 질환으로 머리가 온통
혹으로 뒤덮인 남자를 감싸 안아 입을 맞췄으며, 또한 베들레헴을 방문해서는 예고 없이 팔레스타인 분리장벽 앞에 멈춰 서서 평화의 기도를 바치기도
했다. 파격적 행보였다.
일 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교황 프란치스코는 겸손하고 소박한 모습,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실천적
사랑,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해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갈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용기로 참된 목자의 모범을 보여 주며, 세계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 이른바 ‘프란치스코 효과’다.
교황의 트위터,
짧지만 힘 있는
메시지
말로만이 아니라 당신 행동으로도 직접 보여 주는 것. 그 때문에 교황이 외치는 ‘사랑’과 ‘평화’와
‘정의’가, 그 ‘해묵은 주제’가 더없이 살아 있는 메시지로 많은 이들에게 와 닿는 것이다. 또한 이는 종교의 벽을 넘어서는 보편적 가치이기도
해서 종교가 없는 이들과 종교를 달리하는 이들에게도 회자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려운 신학, 난해한 신학을 말하지 않는다.
지극히 쉬운 말, 단순하지만 본질적인 말로 이야기한다. 그 도구 가운데 하나가 트위터다. “한 사회가 얼마나 위대한가는 그 사회가 가장 궁핍한
이들을, 가난밖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을 어찌 대하는지에 따라 알 수 있습니다.” “정치적 책임이 있는 모든 분에게 부탁드립니다.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 이 두 가지는 기억해 주십시오.” 이처럼 교황은 한두 문장의 짧은 메시지로 많은 이들에게 직접 다가간다. 또한 교황
프란치스코는 지난 4월 우리가 겪은 아픔에 대해서도 트윗을 남긴 바 있다. “한국에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이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기도에
여러분도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로 다른 9개 언어로 운영되는 교황의 트위터는 팔로어가 벌써 1,411만 명에 이른다. 교황은 전
세계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많이 인용(RT)되는 지도자다. 그만큼 교황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많은 이들이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작은 이들’의 교황 프란치스코와
작은 기쁨을 노래하는 수녀
이해인
이해인 수녀도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출간한 이후 단순하고 일상적인 시어로,
그러면서 소박하고 아름다운 시어로 일찍부터 종교의 벽을 넘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 왔다. 수도자로서의 체험과 시인으로서의 통찰이 거기에 녹아든
까닭이다. 이해인 수녀는 조심스레 고백한다. “교황님의 짧은 말씀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조금이라도 더 잘 헤아리려고 저는 제 ‘생각 주머니’
속에 그 말씀을 넣고 만지작거렸습니다.” 이해인 수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교황의 메시지에 비추어 자신의 지난
행동을 되돌아보고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볼 뿐이다. 그리고 그 산물을 시인이 되어서는 투명한 언어로 풀어내고, 수녀가 되어서는 무구한 신심으로
다짐할 뿐이다.
여기에 어줍은 조언이나 위로는 없다. 진실한 고백만 있다. 이해인 수녀는 반백 년 가까이 수도생활을 한 수도자지만
자신의 허물까지 감춤 없이 내보인다. 때로는 암투병의 고통을, 때로는 동료 수녀와의 다툼을 토로한다. 그래서 더 독자들의 마음에 진실로 가 닿을
것이다. 교황의 트위터 메시지는 너무나 쉬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해인 수녀의 ‘묵상글’과 ‘기도글’과 함께 읽으면 또 달리 맛볼
수 있다. 그러면 어느새 이해인 수녀와 함께 가난한 이들의 교황, 프란치스코를 ‘팔로잉’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교황님께 부치는 해인 수녀의 편지
▪교황님의 말씀과 해인 수녀의 묵상
▪지은이 소개
지은이 : 교황 프란치스코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JORGE MARIO
BERGOGLIO)다.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의 오 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철도회사 회계원, 어머니는 전업주부였다. 중학교 때는 아버지의 권유로 양말 공장에서 청소와 사무보조를 했고, 이후 공업학교에 들어가서는 공장에서
노동하며 식품화학을 공부했다. 1953년 5월 21일, 한 젊은 사제를 만나 영적으로 큰 감동을 받고 고해성사를 보며 처음으로 사제 성소를
깨달았다.
1958년에 예수회에 입회하여, 1969년에 사제품을 받고, 1973년에는 36세의 젊은 나이로 아르헨티나 예수회 관구장이
되었다. 1992년에 주교로 서품되며, 지금까지도 추구하는 사목 표어인 “자비로이 부르시니”를 선택했다. 1998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으로, 2001년에는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2013년 2월 11일,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건강상의 사유로 교황직을 사임할 것을
발표했고, 콘클라베 이틀째인 3월 13일에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이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베르골료 추기경이 선택한 교황명은
가난과 평화의 성인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였다.
지은이 : 이해인
1945년 강원도 양구에서 ‘해방둥이’로 태어났다. 1964년 스무 살에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하여, 1968년 첫서원을 하고, 1976년 종신서원을 했다. 필리핀 세인트 루이스 대학에서 영문학을,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종교학을 전공했다.
1970년 잡지 『소년』에 동시 「하늘」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76년 『민들레의 영토』를
시작으로 『내 혼에 불을 놓아』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시간의 얼굴』 『엄마와 분꽃』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네』 『작은 위로』 『작은 기쁨』 『엄마』 『희망은 깨어 있네』 『작은 기도』 등의 시집을 출간하고, 산문집으로 『두레박』 『꽃삽』
『사랑할 땐 별이 되고』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기쁨이 열리는 창』 『풀꽃 단상』 『사랑은 외로운 투쟁』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등을 출간하며, 수녀이자 시인으로 종교를 넘나들며 사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