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축소가 가능합니다.



 "당신이 저에게 바라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 주십시오.
  저는 저의 뜻을 버리고
  당신의 뜻에 저의 뜻을 맞추겠습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하느님을 원망한 순간이 있겠지요.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고 느껴진 때도 있겠지요.

그럴 때마다 ‘하느님은 나에게만 왜 이리 잔인하실까’ 라는 생각을 하며 하느님을 멀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에 선하다고 하시는데 그 선함에서 제외된 것일까요. 아니면 아직 다가오지 않은 것인가요.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갑니다. 걸을 때, 잠잘 때, 밥 먹을 때 모두 그렇습니다. 제 나름의 방식으로 모든 것을 대합니다.

나에게 맞게, 나에게 편하게 그리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에게 편한 것에서 벗어났을 때, 나에게 불공평하다고 생각될 때 하느님 사랑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아이가 바른 길로 가도록 훈육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사랑이 하느님의 마음과 사랑이 아닐까요.

그저 아이가 원하는 대로, 아이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이끈다면 아이는 좋아할지 모르지만 아이가 바르게 성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도 우리를 당신께로 이끄시기 위해 훈육하십니다. 우리가 좀 힘들고 어렵더라도 더 잘 성장하기를 바라시며 당신의 뜻을

따르도록 초대하십니다.  제련사는 풀무불로 금덩이를 제련하여 왕관을 만듭니다.

우리의 제련사이신 하느님! 우리는 당신 손 안에서 당신의 뜻에 따라 빚어지길 원합니다.


■■책 속 한 구절 


◇우리 구세주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려고 이 세상에 오시고

   그것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우리에게 본보기를 보여 주셨다.


◇모든 것은,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사실상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늘 행복하다. 이런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을,

   즉 그것이 불행한 일이건 행복한 일이건 간에, 행복 그 자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무한히 지혜로우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무엇이 좋은가를 다 알고 계신다.


◇하느님의 섭리에 모든 사건을 맡겨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실수를 면하게 되고

   완덕의 길로 한 발자국 앞서게 된다.


◇영혼이 암흑현상에 들어간다 해도 바로 그때가 하느님의 뜻을 조용히 찾아야 하는 때이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섬기는 데에 중요한 것은 그분이 나에게 허락하시는 환경 속에서,

   그분이 나에게 주시는 방식대로 섬겨야 한다는 점이다.


■■ 아마존 서평
- 삶의 의미와 목적을 이해하기 위해서 추천합니다. 이 책은 모든 것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충분합니다.  (ID:Gregory B. Houston)

-이 책을 통해서 세상에서 평온함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평온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 ID:Ken J)

-성 알폰소 데 리구오리의 이 작은 책은 하느님의 뜻을 따름의 중요성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해 줍니다.

                                         모든 사람이 읽어야할 것입니다. (ID:Cindy)



머리말

1. 성덕의 우수성
2. 모든 일에서 하느님의 뜻에 합치는 일
3. 완전히 일치되는 삶에서 오는 행복
4. 하느님의 뜻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을 주시는 데 있다
5. 하느님의 뜻에 합치는 구체적인 방법
6. 영혼의 황폐
7. 결론




글쓴이 : 성 알폰소 데 리구오리
이탈리아의 가톨릭 주교이자 영성가, 신학자, 구속주회의 창립자이다.
나폴리 출신으로 귀족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법률가의 길을 걷다가 그만두고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초기에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활동을 하였으나
가난한 이들을 위해 활동하는 구속주회를 설립하며 슬럼가와 빈민가에서 설교했다.
또한 1762년에는 주교품을 받고 산아가타데이고티의 교구장으로 봉직하였다.
교구장으로 지내는 동안 성체와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 장려 강론집과 책, 논문들을 집필하였다.

1755년에는 교구장에서 은퇴하여 파가니의 수도공동체로 돌아가 생활하다가 1781년 8월 1일 선종하였다.
교황 비오 7세에 의해 1816년 시복되었으며 1871년에는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1839년에는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1950년에는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고해사제들과 윤리 신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언되었다.


옮긴이 : 남용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