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가'
사랑이란 말은 너무도 흔하게 쓰이고 있다. 인간 삶에서 가장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랑에 관한 영화나 드라마, 책들도 참으로 많다. 달콤하고도 슬픈 사랑 이야기,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 헌신적이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그러나 사실 사랑이란 말의 의미는 너무도 광대해서 그 본질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그 흔한 말을 웬만하면 쓰지 않으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사랑에 대한 책을 썼다.
400만 명의 독자를 사로잡은 소노 아야코의 대표적 수필집
인간의 죄와 신앙, 가족, 나이 들어가는 것 등을 주제로 한 다수의 소설과 수필을 출간해온 소노 아야코는 자신의 경험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가며 여자로서의 삶과 사랑에 대해 진솔하게 그린 수필집을 출간했다. 이 책을 통해 그녀는 400만 명이 넘는 독자들을 사로잡으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올랐고, 출간 직후 한국어로 번역되어 소개가 되자 국내 독자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변화된 일부 용어와 표현들을 반영하여 새롭게 꾸민 이 책에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사랑에 목말라 하며 보낸 어두웠던 어린 시절과 여러 번의 어려움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걸어온 작가로서의 길, 남편과의 운명적인 만남과 결혼,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삶과 여자로서의 삶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그러한 삶 속에서 깊이 있는 사색을 통해 얻은 삶의 지혜가, 명쾌한 생의 윤리와 일체의 가식을 벗어던지게 하는 생활의 진리가 묻어 있다.
* 책 속으로
사랑이란 말을 자주 쓰면서도 사실은 한평생 진정한 사랑에 대해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주로 처세술이 뛰어난 사람들이 오히려 사랑하는 일에는 서툰 경우가 많다. 사랑이란, 그 자체로도 하나의 완결된 세계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사랑은 실용품이 아니다.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다. 구하는 방법도 없거니와 그 결과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사랑은 생명, 그 자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슬프고, 그러면서도 더욱 찬란히 빛나는 것이다.
- 11쪽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포장하려 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꾸미는 일 자체가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젊었을 때는 누구나 자기를 멋지고 예쁘게 꾸미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너머의 진실을 꿰뚫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 데이트 시간을 잘 지키고, 어깨에 비듬을 떨어뜨리는 일도 없이 깔끔하며, 자기 방을 언제나 깨끗하게 정리를 잘하는 남자를 보통 좋은 남편감으로 볼 것이다. 그러나 유별나게 깔끔한 성격의 여자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런 남자와 결혼하면 실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빈틈없는 사람은 대부분 옹졸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목욕물이 조금만 뜨거워도 잔소리를 하고, 책장 구석에 먼지가 있다고 언성을 높이는 남편이 되기 쉽다.
- 17쪽
그러면서도 나는 부모님과는 다른 결혼 생활을 할 것 같은, 아버지와는 다른 사람을 배우자로 원했다. 자신보다 일 분이라도 늦게 집에 돌아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아버지 때문에 나의 소풍에 따라와서도 계속 좌불안석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지 우선은 관대한 사람이 결혼상대로는 최고라고 생각했다. 또 아버지와 마음이 맞지 않아 힘들어하던 어머니를 보아왔기 때문에 나의 배우자는 나와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이기를 원했다. 출생이라든가, 학벌이라든가 키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양말에서 고린내가 나건 춤을 못 추건 대머리건 뚱보건 상관없었다. 나는 그저 정신적인 부분만 따지고 싶었다.
- 22쪽
남이 하다가 실수한 일의 뒤처리를 해주는 사람은 아름다워 보인다. 반대로 공으로 얻는 것에 앞뒤 가리지 않고 눈을 빛내는 사람은 추해 보인다. 어떤 사람이 득을 보았는지 아닌지는 생이 끝나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물건을 공짜로 얻었다든가 싸게 샀다든가 혹은 책임을 전가했다든가 하는 것들에 그처럼 눈을 빛낼 필요가 없다. 그것은 그저 마음의 가난함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 36쪽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평범한 것을 위대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가정 또한 지극히 평범한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의 가정이라 해도 부부가 이루는 것인 이상 가정이란 것은 평범해야 한다. 만일 비범하다면 아마도 그 비범한 점 때문에 그 부부는 갈등을 겪고 파경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평범한 부부라도 20년, 30년, 아니 어쩌면 50년을 함께 살아가려면 관대함이나 연민, 체념 같은 여러 가지 것들이 필요할 것이다.
- 61쪽
부부 사이에 신뢰를 쌓으려면 비밀을 갖지 말아야 한다. 비밀은 무거운 짐이 된다. 하나의 거짓말을 하면 그 거짓말을 기억해두어야 하기 때문에 점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 67쪽
사람들의 결혼 전 이미지는 얼마 안 가서 퇴색하는 법이다. 미우라는 젊은 시절 머리카락이 붉고, 연한 색 옷만 입던, 장난기 가득한 청년이었다. 그러던 그가 대학 교수로 몇 년 일하더니 거무스름한 색깔의 무지나 체크무늬 옷을 주로 입게 되었다. 대학 분쟁으로 20년 가까이 근무하던 대학을 그만둔 작년(1969년) 여름, 나는 찬찬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미사키 항구 근처에서 산, 회색빛이 도는 크레이프 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매일 수영을 하고 보트를 타서 햇볕에 그을린 피부는 새까맣고 게다가 살까지 쪘다. 그런 그가 낮잠을 자고 있는데, 그의 이마에 파리가 앉았다. 그 모습을 보니 무엇인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사진으로밖에는 본 적이 없지만 영락없이 듀공(물개와 비슷한 바다 포유동물-역자 주)과 같았다. 만일 내가 그의 외모에 반해서 결혼했다면 무참한 환멸을 느껴야 할 순간이었다.
- 78쪽
요컨대 사랑과 미움은 다만 그 표현이 동전의 양면과 같은, 동질의 감정이다. 다른 말로 한다면 미움은 상대에 대한 관심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므로 아직 구원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관심이 없는 상대에게는 미움도 사랑도 가질 수가 없다. 미움은 추한 관심의 형태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것은 사랑으로 변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 반대로, 지금껏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미움과 사랑 중에 안정된 감정은 오히려 미움이라고 할 수 있다.
- 109쪽
우리 부부와 아이는 식사할 때나 식사를 마치고 난 뒤에도 계속 얘기를 이어간다. 정치, 스포츠, 만화, 역사, 여러 비화나 소문 등 부모 자식 사이에 대화가 없는 가정이란 우리 집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기에 다로는 공부가 끝나고 남는 시간에 클래식을 듣고 악기를 만지거나 책을 읽고는 한다. 책을 읽으라고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아이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책을 읽게 되는 것이다. 생활이란 분명 이런 것이어야 한다. 모든 것을 자신이 선택하고 취해야 하는 것이다. 텔레비전처럼 미리 골라서 준비해놓은 것을 떡을 얻어 먹듯 받아 먹는 것이 아니다. 문화도 학문도, 그 모든 것을 스스로 노력해서 얻어야 한다.
- 135쪽
머리말 - 그 사람을 위해 죽을 수 있는가
제1장 사랑은 무엇을 원하는가
1.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가
2. 여자가 진정으로 생각해야 할 것들
3. 남자가 여자에게 흥미를 잃을 때
제2장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할 것인가
1. 그만두어야 할 결혼
2. 멋진 부부가 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3. 함께 헤쳐나가야 할 것들
제3장 한 남자를 사랑할 때
1. 여자들이 느끼는 삶의 보람
2. 더는 뒤로 물러설 수 없을 때
3.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가
제4장 스스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수렁
1.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남편
2. 이 세상을 홀로 걸을 수 있도록
3. 마음의 가장 약한 부분
4. 운명의 열쇠
제5장 여자는 무엇에 흔들리며 괴로워하는가
1. 사랑을 받는 여자
2.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즐거움
제6장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
1. 운명의 남자
2. 운명 앞에서
역자 후기 - 무의미의 의미
-저자: 소노 아야코
1931년 도쿄에서 출생했다. 성심여자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1954년 <멀리서 온 손님>이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에 선정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그 후 인간의 죄와 죽음, 신앙, 가족,
교육 등을 주제로 다수의 소설과 에세이를 발표했다.
로마 교황청에서 성십자가 훈장(1970년), 제49회 일본 예술원상 은사상(1993년), 제46회
NHK 방송문화상(1995년), 제31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화상(1997년), 제4회 요미우리 국제협력
상(1997년)을 수상하였다.
대표작으로 <이름 없는 비석>,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소노 아야코의 계로록>, <행복하
게 나이드는 비결-소노 아야코의 중년 이후>, <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 <긍정적으로
사는 즐거움>, < 호수 탄생>, <기적>, <천상의 푸르름>, <오늘을 감사하며>, <마음에 와 닿
는 성 바오로의 말> 등이 있다.
-옮긴이: 홍윤숙
1925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수학했다. 1947년 『문예신보』
에 ‘가을’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75년 제7회 한국시인협회상, 1985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1995년 제3회 공초문학상, 1995
년 서울시문화상, 1997년 제42회 대한민국예술원상, 2001년 3.1문화상 등을 수상했으며,
1993년에는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다.
시집으로 <태양의 건넛마을>, <실낙원의 아침>, < 조선의 꽃>, <마지막 공부>, <내 안의 광야
>, <지상의 그 집> 등이 있으며, 수필집으로는 <하루 한순간>, <모든 날에 저녁이 오듯이>,
<해질녘 한 시간>, <지상의 끝에서 돌아보는 지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