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티니콜라 신부님은 조선에 입국한 이후 배티를 중심으로 사목활동을 하다가 병환으로 사목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1962년 9월 휴양 차 배론의 성요셉 신학교로 가서 1866년 3월 순교하기까지 배론에서 사셨습니다. 그곳에서 건강회복을 위해 애쓰면서도 신학생들에게 라틴어를 가르치고, '라틴어-조선어' 사전을 만드는 작업을 성실히 수행하였고, 1866년 병인박해에 체포되어 새남터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신부님은 병인박해 순교자들의 시복시성 과정 속에서 탈락되어 그동안 우리 교회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다시 프티니콜라 신부의 서신을 통해, 그가 세인들의 입에 거의 오르내린 적도 없는 평범하고 소박한 선교사였을 뿐이었지만, 자신의 의무에 충실했고, 그리스도인다운 생애 안에서 숭고하고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었으며, 전적인 자기헌신, 덕행, 그리고 피를 통한 순교를 보여준, 하느님께 충실한 사목자였음을 다시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제1장 출생 - 교육 - 유년시절
제2장 신학교 - 방학 - 성소
제3장 작별 -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 생디에로 돌아가다 - 부제품 - 사제품
제4장 라블린느에서 보좌신부 생활 -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로 돌아오다 - 인도로 떠나다
제5장 보르도에서 폰디체리까지 - 여행담 - 한 선교사의 죽음
제6장 폰디체리의 체류 - 트랑크바르에서 보낸 임시기간 - 임지로 들어가다
제7장 쿰바코남에서 거둔 프티니콜라 신부의 보람
제8장 프티니콜라 신부의 아픔 - 인도를 떠나다
제9장 폰디체리에서 상해까지
제10장 상해에서 서울까지
제11장 조선 소개 - 풍물, 인구, 행정과 사회상, 종교
제12장 조선의 천주교 (1777-1856년)
제13장 조선에서의 초기 생활 - 조선어 공부 - 첫 성사사목 (1856-1857년)
제14장 광천의 은둔 생활 - 프티니콜라 신부의 사도직 활동 (1857-1858년)
제15장 두 번째 성사사목 - 여행 - 병환
제16장 세 번째 성사사목 - 박해 (1859-1860년)
제17장 사도적 위안
제18장 마지막 성사사목 - 가슴 아픈 죽음들 - 병환 - 배론의 은신 생활 (1860-1862년)
제19장 박해의 전조(1862-1865년)
제20장 1866년 - 박해와 순교
제21장 박해 이후 - 프랑스에 알려진 순교자 - 조선인 천주교
부록 병인박해 순교자들의 순교 사실 공증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