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에는 기쁨을 더해 주는 말씀을
슬픔에는 위로를 전해 주는 말씀을
칠백 년도 전의 이야기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첫 제자를 데리고 사제에게 갔답니다. 주님이 무엇을 하기를 바라시는지 답을 듣고 싶어서 사제에게 복음서를 무작위로 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완전한 자가 되려거든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에게 주고 나를 따르시오.”라는 말씀이 나왔습니다. 한 번 더 펼쳤더니 “길을 떠날 때 아무것도 지니지 마시오.”라는 말씀이 나왔고, 세 번째로는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라는 말씀이 나왔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와 그의 첫 제자 베르나르도의 일화입니다. 말 그대로 복음을 삶의 지침으로 삼고 살았던 옛사람들의 이야기지요.
요즘 이야기도 하나 있습니다. 어떤 신부님이 목사님과 여행을 떠나게 되었답니다. 둘이서 기차를 탔는데 얼마쯤 가다가 입이 궁금해진 신부님이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턱 하니 빼 물었습니다. 불을 붙여서 한 모금 맛있게 빨아들이려는 찰나, 아까부터 그 모습을 노려보던 목사님이 담배를 홱 낚아채더니 차창 밖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황망해진 신부님은 놀라서 외쳤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짓입니까?” 목사님이 천연덕스럽게 대꾸했습니다. “성경을 펴 보세요. 담배 피우라는 말이 어디에 있습니까?” 신부님은 화가 났지만 꾹 참았습니다. 이러구러 기차가 다음 역에 도착한 순간, 갑자기 신부님이 목사님을 잡더니 기차 밖으로 밀어내려고 합니다. “아니, 왜 이래요, 지금?” 목사님이 놀라 물었습니다. “성경을 보세요. 기차 타라는 말이 어디에 나옵니까?” 신부님의 대꾸였습니다.
성경은 일점일획도 바꿔서는 안 되며 쓰인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담배도 기차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게 되겠지요. 하지만 말씀 너머의 영을 살피고 따르는 사람들은 참으로 복음을 살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이 그것을 말해 주지요. 복음서를 쓰도록 저자를 이끌었던 성령이 읽는 이의 마음에도 들어와 살면서 매일의 삶을 통해 “나의 복음”을 쓰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이는 옛사람이 말했듯 “성경을 쓰신 분도 그것을 이해하시는 분도 같은 분, 곧 성령”(성 대 그레고리오)이시기 때문입니다.
올 초까지 마산교구의 호계 본당에서 사목하시다가 지금은 덴버에서 미국 교포들을 섬기고 있는 신은근 신부님의 책 「말씀으로 걷는 하룻길」은 매일의 복음을 짧지만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이 책은 2008년 「매일 미사」에 실려 널리 호평을 받았던 묵상 글을 하나로 묶은 것입니다. 하루 한 편씩 그날 복음과 해당하는 묵상을 읽으면서 ‘예수님의 삶은 말씀이 되었고 그 말씀이 오늘 나의 삶에 지침이 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신 신부님의 간략하면서도 자상한 안내가 적지 않은 도움이 되는 것을 봅니다.
“구원은 삶의 결과입니다. 세상 사는 것이 끝난 뒤에 주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아직 살아 있는데도 구원받았다고 떠드는 것은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더구나 감정이나 기분에 치우쳐 구원받았다고 외치는 것은 유치한 행동이랍니다. 저 역시 구원에 대해 잘 모릅니다. 성경에 대해서도 많이 부족합니다.”(‘머리말’에서)
“그분의 계명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실천은 용서였습니다. 그러니 용서하며 살아야 그분의 사랑에 머무는 것이 됩니다. 용서는 어렵습니다. 단순히 잊는 행위가 아닙니다. … 미워한 세월만큼은 아니더라도 시간을 갖고 노력해야 합니다. 용서는 끊임없이 닦아야 하는 덕이기 때문입니다.”(4월 24일; 요한 16,9-11)
복음서와 함께 신 신부님의 책을 폅니다.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도, 하루를 마무리하면서도 펴 읽습니다. 기쁘고 즐거운 날은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즐거워하시는 주님을 뵙고, 힘들고 어려운 날에는 “성한 이가 아니라 병든 이를 위해 왔다.” 하신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기쁨에는 기쁨을 더해 주는 말씀을, 슬픔에는 위로를 전해 주는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신은근 신부님의 구수한 설명이 그 독서를 도와줄 것입니다.
황인수 수사 (성바오로출판사)
신은근 : 글쓴이1951년 부산에서 태어나 1969년 서울 성신고등학교(소신학교)를 거쳐 1976년 광주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사제품을 받으신 후 마산 교구에서 사목생활을 하셨으며, 현재 미국 덴버 한인 성당의 주임 신부로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