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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소녀의 아홉 살 인생... 잔잔한 풍경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삶의 중요한 덕목을 조용히 전하는 아름다운 이야기 케르시틴 요한손 이 바케의 소설 <나는 여기 없는 것처럼>을 각색한 <엘리나>는 베를린영화제에서 ‘어린이 영화 축제’의 그랑프리인 수정곰상(Crystal Bear)을 수상하고, 시카고·몬트리올 등 각종 아동 영화제에서 주목받으며 트로피를 가져갔던 작품이다. 잔잔한 풍경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엘리나>는 엘리나라는 소녀를 통해 삶의 중요한 덕목들을 전한다. 외로운 소녀 엘리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가난하며 권위적인 학교에서 버림받은 엘리나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 사이에서 조용히 성장한다. 한편 <엘리나>는 순수하고 강한 어조로 정치적·사회적 발언을 하는 영화다. 스웨덴 지역에 사는 핀란드 마이너리티의 존재를 통해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해 돌아보게 만드는 이 영화는, 인간이 한 사회에서 살아갈 때 필요한 기본적 인권에 대해 말한다. 조금은 낯설지만 그렇기에 매력적인 영화 <엘리나>는, 아이들에게 조용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작품이며 엘리나 역을 맡은 나탈리 미넨빅의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다.


자신의 양심과 가치에 따라 행동하는 정의로운 소녀 엘리나 강한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강한 메시지를 지닌 영화 <엘리나>는 일반적인 아동 영화의 관습들을 지니고 있다. 아이는 어른들의 세상에서 오해받고, 그 반대편엔 악당 역할을 하는 어른인 홀름 선생이 있으며, 여기에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젊은 교사인 비요크가 등장하고, 아이의 가난한 환경은 영화에 더욱 아련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여기에서 머물렀다면 <엘리나>는 그저 그런 평범한 영화에 머물렀을 것이다. <엘리나>은 강한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와 그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강한 메시지를 지닌 영화다. 여기서 아홉 살 소녀 엘리나는 자신의 양심과 가치에 의해 행동하는 정의로운 소녀다. 그 정의로움이 더욱 빛나는 것은, 1950년대 초 스웨덴에서 사는 핀란드 소수자들의 삶은 극도로 궁핍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겐 학교만큼이나 배급에 의해 이루어지는 점심 식사가 중요했고, 신발조차 배급에 의해 해결해야 했다. 특히 엘리나는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결손 가정에서 살아가기에 그 가난함을 더하며, 엘리나의 엄마는 학교에서 청소부로 일하며 생계를 해결해야 한다. 엘리나의 아빠인 이삭도, 아픈 몸을 이끌고 계속 일을 하다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홀름 선생은 교사의 권위와 권력을 혼동하는데, 스웨덴어만을 강요하는 그녀의 행동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화된 사회를 바라는 권위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학생들과 그 가족을 “나라에서 주는 배급을 타 먹는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홀름 선생. 엘리나가 분노를 느낀 부분은, 각자의 인간이 지닌 가치관과 그 소중함을 무시하는 어른의 폭력적인 행동이었고, ‘단식 투쟁’을 통해 홀름 선생의 생각에 저항한다. 세상 떠난 아빠와 나누는 상상의 대화로 외로움 극복 용서와 관용을 가르쳐 주는 영화 만약 <엘리나>가 홀름 선생의 악함과 엘리나의 선함을 대립시키는 이분법을 사용했다면, 이 영화는 그다지 감동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용서와 관용을 가르치며, 엘리나는 천사처럼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아빠의 존재를 느끼며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이 영화에서 엘리나가 세상을 떠난 아빠와 나누는 상상의 대화들은 매우 중요한데, 소녀는 그런 내면의 과정을 통해 성숙하고 확고한 신념을 지니며 외로움을 극복한다. 그리고 엘리나와 홀름 선생의 관계는, 진정한 사과와 용서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이 용서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홀름 선생에게 형식적으로라도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결국 거짓말일 수밖에 없음을 엘리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맨 마지막에, 진정으로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의 회개를 보여준다. 모든 학생들이 급식을 거부하고 엘리나의 곁으로 모여들었을 때, 텅 빈 급식실에서 홀름 선생은 그제서야 뉘우치고 엘리나에게 용서를 구한다. 이때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평등하게, 세상의 모든 것을 하얗게 덮어버리는 눈은 화해와 용서의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