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마지막으로 정화되는 곳, 연옥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연옥이라는 개념이 낯설지 않다. 교리에서도 가르치며, 미사에서도, 우리가 매일 바치는 묵주기도에서도 계속 언급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묵주기도를 한 단 바칠 때마다 마지막에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라고 ‘구원을 비는 기도’를 바치곤 한다. 그런데 신자들에게 ‘과연 연옥이란 어떤 곳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설명하지 못하곤 한다. 특히 다른 종파에서는 연옥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어려워하곤 한다. 그렇다면 연옥은 어떤 곳이며, 누가 가는 곳이기에 우리는 미사 때도, 기도할 때도 연옥 영혼을 기억하는가?
이 책 《연옥실화》는 교회사에 널리 알려진 성인과 성녀,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 속 인물들이 직‧간접적으로 겪은 연옥 체험을 정리한 책이다. ‘내세는 있는가?’에 대한 논쟁에서 시작해서 연옥의 존재, 연옥에서 받는 벌의 종류, 연옥 영혼이 느끼는 기쁨, 연옥 영혼을 위로하는 방법 등 우리가 연옥에 대해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내용들을 속속들이 설명하고 그와 관련된 생생한 체험을 전한다.
연옥은 존재하는가?
교황청에서 펴낸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규범집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는 ‘연옥’을 우리가 믿어야 할 교리로 인정하면서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으려면 죽은 다음에 정화를 거쳐야 한다.(가톨릭 교리서 1030항)
이처럼 가톨릭 교회에서 연옥을 인정하는 이유는 성경 곳곳에서 내세와 연옥을 암시하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마태오 복음서에는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마태 12,32)라는 말씀이 나온다. 여기서 우리는 내세에서도 용서받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천국과 지옥이라는 말은 익숙하게 생각하면서 연옥이라는 말은 이에 비해 어렴풋한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우리가 어떻게 연옥에 가는 이유는 무엇이며, 연옥에서 어떻게 정화되는지와 같은 문제들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기 때문이다.
성인과 성녀의 체험을 통해
생생하게 만나는 연옥
《연옥실화》는 연옥의 존재를 증언하는 증언들을 소개한 뒤 널리 알려진 성인들의 체험과 어록을 통해 연옥에 대해 알려 주는 책이다. 예를 들어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연옥에서 받는 찰나의 고통이 석쇠 위에서 순교한 성 라우렌시오의 고통보다 더 무섭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처럼 연옥의 고통은 현세의 우리로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이러한 고통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종류별로 알려 준다. 혹심한 불로 정화되는 고통, 하느님을 갈망하지만 뵐 수 없는 고통, 현세에 남기고 온 가까운 이들에게서 버림받는 고통, 칠흑 같은 어둠에 갇혀 빛을 볼 수 없는 고통 등 구체적인 연옥 벌의 실상이 생생하게 소개되는 것이다.
그러나 연옥 영혼이라고 해서 오로지 고통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현세의 우리들과 달리 연옥 영혼은 ‘상존 은총’을 지니고 있다. 이는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뜻을 분명하게 아는 은총이다. 그로 인해 연옥 영혼은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이 현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그래서 그들은 연옥에서 빨리 잠벌을 치르고 구원을 통해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기를 더욱 갈구한다. 물론 그러한 갈망 때문에 연옥 영혼은 더욱 고통스럽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연옥 영혼은 기쁨을 느낀다.
이처럼 이 책을 읽으면 연옥에 대해 소상히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연옥 영혼을 위로하는 방법들과 연옥 영혼이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러한 방법으로 연옥 영혼을 구한 사례들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연옥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었다면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데레사 수녀는 또다시 그녀 앞에 나타나 엄숙하게 말했다.
“…나는 내가 다른 수녀에게 잘못된 행동을 한 것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으로 40년 동안 연옥에서 무서운 불의 고통을 받도록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여러분의 기도 은혜로 하느님께서 제 영혼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또 제 영혼에 아주 큰 위로가 되는 일곱 성시(聖詩)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 63쪽, ‘제2장 연옥에서 받는 고통과 벌’ 중에서
연옥, 연옥 영혼
그리고 그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
피할 수 없는 시련을 만나 하느님께 간절하게 매달리며 생활했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연옥이 존재한다면, 그래서 지금 이 순간 그곳에서 고통받는 연옥 영혼이 있다면 그들은 우리가 그 시절에 품었던 절박한 믿음과 뜨거운 기쁨을 매순간 절절하게 느끼고 있을 터이다. 죽음 이후 우리가 그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될지, 우리의 세상 끝 날이 어떠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 느끼고 있을 통절한 고통과 기쁨은 하느님을 통해 현세의 우리가 느끼는 고통, 기쁨과도 연결되어 있다. 연옥 영혼도, 현세의 우리들도 모두 그 뿌리는 하느님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이 하느님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연옥 영혼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연옥 영혼에 대해 들으면서 우리의 믿음을 다시금 굳건하게 세울 수 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더욱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할 수 있게 된다.
《연옥실화》를 읽고 나면 연옥에 얽힌 실화들을 새롭게 알게 되고 교회 안에서 죽음을 맞는 일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예전과 다른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 깊은 곳에는 하느님께 바치는 선한 기도의 힘이 얼마나 강하고도 따뜻한 것인지에 대한 깨달음이 새겨질 것이다.
책 속에서
이 무대 위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맨 처음 사람부터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까지, 모든 사람들은 죽은 후에 어떻게 되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될 것인가? 인간은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머지않아 닥칠 운명이니 말이다. 우리는 내세(來世)에 어떻게 되는가? 아니, 내세란 것이 과연 있기나 한가?
-8쪽, 서론 내세는 있나 없나
하느님께 많은 환시의 은총을 받아 ‘연옥 박사’라고 불리는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는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 없이 우리는 연옥의 불티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 또 그것을 깨달을 지식도 없다. 나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것을 보았지만 이를 표현할 말이 없다.”
- 58쪽, 제2장 연옥에서 받는 고통과 벌
어머니한테서 억지로 떼어 낸 아이는 한사코 어머니를 부른다.” … 사랑이 완전하면 할수록 이를 채울 수 없는 고통이 더욱 심하다. 연옥에 있는 영혼은 한마음으로 하느님을 부르고 그분을 향해 두 손을 들지만 보속을 다 하기까지 하느님께서는 저 멀리 계셔서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 75쪽, 제3장 하느님을 뵐 수 없는 고통과 벌
영혼은 자진하여 연옥으로 간다.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듯 보속을 해야 하는 영혼을 하느님께서 연옥에 보내시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흠 없으심과 제 자신의 더러움을 보고서 스스로 온전히 깨끗해지려고 슬퍼하면서도 제 발로 달갑게 연옥에 가는 것이다.
- 76쪽, 제3장 하느님을 뵐 수 없는 고통과 벌
연옥 영혼은 자신이 잊히고 있음을 알고 그것을 섭섭해 한다. 자기를 구해 주기 위해 바친 기도나 선행을 알면 기뻐하듯이 잊히고 있음을 알면 몹시 슬퍼한다. 이 잊힌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제2의 죽음’이다. 즉 물질적 죽음에 정신적 죽음이 더해지는 것이다.
- 88쪽, 제4장 버림받음의 고통과 벌
사실 은혜를 잊는 일은 우리 삶에서 늘상 있는 일이다. 병 고침을 받은 열 사람의 나병 환자 중에 예수님께 감사드리러 온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 사는 동안 의리로 교류했던 사람들마저도 은인이 연옥에서 무서운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은인의 죽음은 잊어버리고 현세만을 살아간다.
- 90쪽, 제4장 버림받음의 고통과 벌
세상의 어버이들 중에는 예닐곱 살 난 귀여운 어린이의 천진스러움을 보고 이들은 천사처럼 바로 천당에 갔으리라고 생각하고 기도를 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어린이들도 연옥에서 고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린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그들에게 도움이 되며 부모에게는 의무이다.
- 101쪽, 제5장 연옥에 대한 네 가지 흥미로운 문제
로마의 성녀 프란치스카는 말한다. “한 영혼이 연옥에 내려가면 그 수호천사가 안에까지 안내한다. 그리고 영혼이 깨끗해질 때까지 문 밖에 서서 가끔 그를 찾아보고 위로해 준다. 하느님의 의노를 풀기 위하여 살아 있는 이의 기도와 선행을 모아서 하느님께 바치고 또 괴로워하고 있는 영혼에게 베푸는 것이다.”
- 133쪽, 제6장 연옥 영혼의 기쁨
“인간의 목적은 이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현세에서 우리에게 만족을 주시지 않는다. 현세에서는 갖가지 공로를 쌓게 하여 우리가 그 공로를 영원한 천국에서 즐기게 하시려는 것이다.”
- 145쪽, 제7장 연옥 영혼에 대한 믿음
신자의 본분을 다하는 것은 시간이 있건 없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많은 이들이 하느님께 대한 본분을 채울 겨를은 없다면서 이를 거스르는 짓을 할 시간은 많다.
- 215쪽, 제9장 연옥 영혼을 위로하는 방법
교회는 밤낮없이 죽은 이를 위하여 기도하며 또 진실한 신자는 모든 죽은 이, 특히 가장 사랑하는 이를 언제나 기억한다. 일생을 그들과 함께 살며 매일의 노고와 걱정들을 그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바치고, 또 선업이나 자선을 죽은 이를 위하여 스스로 실천하며 또 남에게도 권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죽은 이는 참으로 복되다.
-287쪽, 결론
지은이 : 막심 퓌상
한국 순교복자 수녀원 :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