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빛을 향해 나아가는 영혼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어둔 밤.
<어둔밤>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과의 거룩한 일치 안에서 충만한 사랑과 기쁨의 영광을 맛보게 될 것이다. <어둔밤>은 하느님과의 일치를 갈망하는 영혼이 겪게 되는 영적 여정을 펼쳐 보이고 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 여정의 힘겨움, 유혹, 위험, 아픔들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여정 곳곳에 징검다리를 놓아주고 있다. 동료 수사들과 교회가 진정으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 그 일치의 충만함 속에서 사랑의 기쁨을 누리길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이 깊은 사랑으로 가득한 <어둔밤> 안에서 그 충만한 일치의 길을 만나게 될 것이다. 어떤 영혼이든 하느님과의 사랑을 통한 일치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어두운 밤. 이 어두운 밤을 통해 우리는 정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먼저 쓰여진 <가르멜의 산길> 에서는 인간의 '능동적 정화, 감각의 정화'를 위한 방법들을 다루었다면, <어둔밤>에서는 '수동적 정화,정신의 정화'가 강조되고 있다. 이 '정신의 정화'라는 수동적인 어두운 밤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느님의 배려, 즉 성령의 이끄심뿐이다. 밤이란 어두움을 일컫는 말이다. 밤과 어두움은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는 말이며, 단순히 빛이 없음을 의미할 뿐 아니라 안전하지 않으며, 집중되는 주의력도 떨어지기 쉬운 때이다.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좋은 좋은 기회를 맞이할 수 있는 시간, 즉 쉼이 있고, 고요함이 있으며, 아주 작은 불빛이라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결국 '수동적 밤'이란 젖은 나무에서 습기를 밖으로 내뿜게 하고 나무에 배어 있던 수분을 밖으로 나오게 하고, 어둡고 검고 보기 흉한 색깔로 변화시킨 다음 고약한 냄새까지 나게 하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밖에서부터 나무를 태워 열을 올리고 불 자체와 같이 아름답게 만드는 뜨거운(어두운) 불이라고 할 수 있다. 밝은 빛을 내기 위해 고통스러운 순간을 거쳐야 하는 것처럼, 밤은 영광을 위한 고통과 성숙의 과정이다. 감각의 밤에 들어가 능동적으로 자신의 정화(<가르멜의산길>에서 다루고 있다)를 위해 애썼던 이들은 희미하게나마 하느님의 사랑을 맛보았기 때문에 하느님과 함께하는 감미롭고 행복한 사랑의 생활을 그리며 철저한 제욕으로써 자기와 일체의 모든 것에 죽기도 다짐한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영혼을 '수동적 정화의 밤'으로 끌어주시는데, 이 여정에서 영혼은 마치 하느님이 안 계신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하느님의 부재체험이란 영혼에게 지옥과 같은 것이라서 영혼을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만든다. 하느님의 사랑을 한번 맛본 영혼이 하느님의 부재체험을 한다면 반드시 하느님을 찾아 나선다. 하느님을 찾는다는 것은 영혼에게는 매우 커다란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이 고통은 영혼이 겸손해지고 유순해지고 정화되기까지 견뎌내야 할 고통이다. 그래서 영성생활을 갈망하며 나아가는 이들에게 정화란 고통이며, 고통이란 밤이며, 이 밤은 관상이고, 하느님의 도우심 안에서 헤쳐 나가야 할 어두움이며, 견뎌내야 할 과정인 것이다. 하느님께서 이 모두를 어두운 관상기도를 통하여 이루시므로, 이 밤의 정화를 통하여 수동적으로 이끌어 주시지 않는 한 인간이 스스로는 아무 것도 정화시킬수 없는 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