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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원전(Fonti Ricciane)』은 순찰사 알렉산드로 발리냐노(Alessandro Valignano, 1539~1606)의 마지막 명령에 따라, 마태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 1552~1610)가 사망하기 전 3년 동안(1607~1610), 중국선교를 시작한 1583년부터 일자별로 상세한 활동을 기록한 “그리스도교의 중국 진출기”다.


본서는 당시 중국 관련 정보는 물론 근대 초, 최초 서양인의 눈에 들어온 극동 아시아의 상황과 국제정세 및 동서양이 먼저 무엇을 주고받았는지 등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원전에 각주를 꼼꼼하게 넣어 정리, 기록한 예수회 중국학자 델리야(Pasquale M. D’Elia S.I., 1890~1963) 덕분에 책이 유럽으로 전해진 17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유럽 사회의 지식층과 사회 전반에서 아시아에 관한 관심과 영향을 알 수 있다.

목차

참고도서 약어표_24

일러두기_40


2책 I. 조경(肇慶) = 소흥 수도원(1583년 9월 10일부터 1589년 8월 초순까지)


제1장 우리가 어떻게 중국에 처음 들어가게 되었는지에 대해(1552년부터 1582년까지) 45

제2장 1년이 채 안 되어 3명의 신부가 중국으로 들어갔으나 체류 허가를 받을 수 없었던 것에 대해(1582년 3월 9일부터 1583년 8월 10일경까지) 90

제3장 신부들을 어떻게 조경으로 불렀는지에 대해, 수도원을 지을 작은 땅을 얻고 중국에 체류할 수 있는 허가를 얻다(1583년 8월 15일 즈음에서 1583년 9월 말까지) 120

제4장 신부들이 서서히 중국인들에게 성교회에 관해 말하기 시작하다(1583년 10월부터 대략 1584년 11월 25-29일까지) 148

제5장 미켈레 루지에리 신부가 마카오에 가고, 마태오 리치가 조경에 오다. 청동으로 된 시계와 중국어로 표기한 지구본을 통감에게 주다(1583년 12월부터 1584년 10월까지) 166

제6장 신부들이 어떻게 스페인 왕의 대사 자격을 획득하여 중국에 왔는지, 그리고 프란체스코 카브랄 신부가 어떻게 조경에 왔는지에 대해(1584년 5월 2일부터 1584년 11월 26일경까지) 187

제7장 이 사업을 위해 두 명의 신부가 어떻게 인도에서 왔는지에 대해: 한 사람은 두아르테 데 산데 신부로 선교회의 원장으로 있다가 조경 체류 허가를 받았고, 다른 한 사람은 안토니오 달메이다 신부로 미켈레 루지에리 신부와 함께 절강성으로 가다(1585년 4월 1일부터 1586년 4월까지) 201

제8장 신부들이 절강성으로 돌아오고 루지에리 신부가 광서에서 나가다: 그 밖에 이 시기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1586년 7월부터 1587년 7월까지) 217

제9장 신부들이 조경에서 나쁜 일에 연루될까 두려워 두아르테 데 산데 신부를 마카오로 돌아가게 한 영서도; 이 일이 있고 난 뒤 신부들이 겪은 큰 어려움에 대해(1587년 7월 27일부터 1587년 12월까지) 230

제10장 미켈레 루지에리 신부가 어떻게 마카오에 가서 그곳에 남게 되었는지에 대해; 두아르테 데 산데 신부가 조경에 온 경위, 백성을 위해 그 집에서 겪은 또 다른 어려움(1588년 1월부터 1588년 7월까지) 242

제11장 알렉산드로 신부가 미켈레 루지에리 신부를 로마로 보내 교황이 신부들을 중국 황제에게 보내는 대사로 임명해 달라고 청하고, 안토니오 알메이다 신부는 조경으로 가는 길에 새로운 여러 난관에 부딪히다(1588년 8월부터 12월까지) 249

제12장 조경 수도원에서 우리가 거둔 성과에 대해(1583년 9월 10일부터 1589년 8월 초순까지) 266

제13장 조경 수도원에서 우리가 겪은 마지막 난관과 도당 유절재(劉節齋)에 의해 쫓겨난 이유에 대해(1589년 4월부터 8월 초까지)276


3책 제1부(제1장~제9장) II. 소주(韶州) 수도원(1589년 8월 26일부터 1595년 4월 18일까지)


제1장 소주 수도원을 어떻게 지었는지에 대해, 중국선교에 대해 새로운 계획을 세우게 된 것에 대해(1589년 8월 초부터 10월 초까지) 297

제2장 새로 부른 신부들이 마카오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그들이 모두 기뻐하게 된 일에 대해, 중국에 있는 신부들의 도움으로 순찰사 알렉산드로 발리냐노 신부가 두 명의 중국인 청년들에게 예수회 입회를 허락하고 중국선교에 투입하게 된 일에 대해(1589년 9월부터 1590년 6월 20일쯤까지) 319

제3장 구태소가 어떻게 소주에 거주하게 되었고 마태오 신부의 제자가 되었는지에 대해, 이후 구태소 덕분에 소주에 자리를 잡게 된 경위에 대해(1590년 말부터 1591년 9월까지) 334

제4장 우리가 소주에서 겪은 어려움과 두아르테 데 산데 신부가 소주에 가고, 마카오로 돌아가는 길에 생긴 일에 대해(1590년 말부터 1591년 9월까지) 349

제5장 안토니오 데 알메이다 신부의 사망과 그가 있던 소주로 프란체스코 데 페트리스 신부가 투입된 것에 대해(1591년 10월 11일부터 1591년 12월 말까지) 359

제6장 마태오 리치가 남웅(南雄)으로 어떻게 갔는지에 대해, 그 지역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한 일(1591년 말부터 1592년 중반 즈음까지) 369

제7장 밤에 강도들이 수도원을 침입하여 두 신부에게 상해를 입히고 재판에 넘겨졌으나 신부들에 의해 풀려나다(1592년 7월부터 1594년 6월까지) 379

제8장 프란체스코 데 페트리스 신부의 사망과 소주에서 그의 자리를 대신할 라자로 카타네오 신부가 입국하게 된 경위에 대해(1593년 11월 5일부터 1594년 11월까지) 396

제9장 마태오 리치가 처음으로 남경 황궁에 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1594년 11월 부터 1595년 5월 31일까지) 409


제2부(제10장~제14장) III. 남창(南昌) 수도원(1595년 6월 28일부터 1598년 6월 25일까지)


제10장 마태오 리치 신부가 어떻게 남경에서 쫓겨났는지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강서의 중심도시로 가게 되었는지에 대해(1595년 6월 1일부터 29일까지) 436

제11장 남창 지역 통감이 거주하는 강서의 도읍에 어떻게 거주지를 마련하게 되었는지에 대해(1595년 7월부터 9월까지) 450

제12장 황가(皇家)의 두 친족과 리치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에 대해, 남경에서 그들에게 한 설교(1595년 8월 20일경부터 10월까지) 464

제13장 교섭이 성공한 사실을 어떻게 알렸는지에 대해, 두아르테 데 산데 신부가 조반니 소에이로 신부를 남창으로 보내고 거기서 우리가 집을 어떻게 매입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1595년 12월부터 1596년 7월까지) 478

제14장 소주에서 라자로 카타네오 신부가 겪은 큰 봉변과 니콜로 론고바르도 신부와 요안 데 로챠 신부의 입국(1596년 9월 부터 1597년 12월 말까지) 492

글쓴이  : 마테오 리치
이탈리아 마르케주 마체라타에서 태어나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공부했고, 로마로 가서 현(現) 로마대학교 전신인 콜레지움 로마눔에서 당대 최고의 과학자며 교황청 학술원장으로 있던 예수회 소속 아나스타시우스 키르허 교수 밑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했다.
예수회에 입회하여 신학을 공부하던 중 아시아 선교사로 발탁되어 고아, 코친을 거쳐 당시 동인도지역 예수회 순찰사 알렉산드로 발리냐노의 명으로 아시아선교의 베이스캠프인 마카오에서 중국선교를 준비했다. 중국어와 중국문화에 관한 체계적인 공부를 했고, 중국 내륙으로 파견되어 발리냐노가 수립한 “적응주의 선교정책”을 실천했다.
1610년 5월 11일 북경에서 58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28년간 중국인 리마두로 살았다. 그가 보여 준 삶을 통한 대화의 방식은 ‘긍정적인 타자 형상’으로 각인되었고, 학문을 매개로 한 대화는 동서양 문명의 가교가 되었다. 도덕과 이성, 양심에 초점을 맞춘 인문 서적과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실천학문으로서 과학 기술서의 도입이 그것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유럽에서 꽃을 피운 예술(藝術)도 대화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 덕분에 절벽으로 표현되던 폐쇄적인 중국 사회에서 대화가 가능한 길을 찾아 동서양 화해를 모색한 방법은 역사의 현시성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가 되었다.

역자 : 김혜경
로마에서 선교신학을 전공하였다. 가톨릭대, 서강대, 성신여대 등에서 강의했고, 현재 부산가톨릭대 연구교수로 있다. 연구과제와 관련하여, 이탈리아에 머물며 피렌체대학교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 『예수회의 적응주의 선교』(2013년 가톨릭학술상 수상), 『인류의 꽃이 된 도시, 피렌체』(2017년 세종우수교양도서), 『모든 길은 로마로』(2024), 『세계평화개념사: 인류의 평화, 그 거대 담론의 역사』(공저: 서울대학교 평화통일연구원 편) 등 전공 및 일반교양 도서가 10여 편 있고,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프란체스코 교황 저), 『바티칸 박물관, 시대를 초월한 감동』(2023) 등 약 20편의 역서가 있다.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선교와 서학서 중심의 문서선교의 상관성에 관한 고찰」(『선교신학』 제27집, 2011), 「실천하는 영성가 요한 바오로 2세의 평화의 관점에서 본 가난의 문제」(『인간연구』 제21호, 2011), 「선교사들이 직면한 토착언어 문제: 선교역사를 통해 보는 몇 가지 사례」(『신학전망』, 2015), 「왜란 시기 예수회 선교사들의 일본과 조선 인식―순찰사 알렉산드로 발리냐노의 일본 방문을 중심으로」(『교회사연구』 49호, 2016), 「마태오 리치의 세계지도에 대한 선교신학적 고찰」(『신학전망』 제198호, 2017), 「발리냐노의 덴쇼소년사절단(天正遣少年使節)의 유럽 순방과 선교 영향」(『선교신학』 제52집, 2018)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